동백나무 2

꽃숲에서 동박새를 만나다

꽃숲에서 동박새를 만나다 권영상 4월, 꽃이 지천이다. 겨울을 견뎌낸 목숨들을 위해 자연이 보내는 찬사가 아닐까 싶다. 작은 미물에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겨울이란 누구에게나 혹독하다. 목숨을 위협하는 추위와 미물들에게 물 한 방울 내어주지 않는 건기의 목마름은 잔인하다. 먼 바다 건너 남지나 반도에 사는 각시메뚜기는 바람을 따라 북상해 우리나라에서 어른벌레로 겨울을 난다. 그들은 다른 곤충들이 알을 낳고 떠나는 것과 달리 낙엽더미나 돌틈에서 맨몸으로 추위의 강을 건넌다. 추위가 한계점에 이르면 몸안의 체액이 얼어 죽고 마는 각시메뚜기의 눈 밑에는 지워지지 않는 슬픈 눈물자국이 있다. 4월에 피는 꽃은 그들의 아픔을 달래주는 축복의 선물이다. 마을마다 꽃이 한창이다. 매화가 피더니 산수유가 피고, 살구꽃..

다랑쉬 오름에서 돌아오다

다랑쉬 오름에서 돌아오다 권영상 다랑쉬오름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가 오후 2시. 하늘이 무너질 듯 눈이 내렸다. 눈도 눈도 참 어마어마하게 내렸고, 바람도 바람도 참 소문난 제주 바람답게 불었다. “이런 날씨론 난 못 올라가. 가려면 당신이나 가.” 아내가 차창 밖으로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바라보며 손사래를 쳤다. 혼자라면야 바람에 날려 산비탈에 쳐박힌다거나 눈길에 미끄러져 변고를 겪는다 해도 오른다면 오르겠다. 근데 곁에 아내가 있다고 생각하니 망설여진다. 한낮인데도 점점 어두컴컴해지고, 지금으로 보아 눈 그칠 기미는 없어 보였다.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아니 험한 날씨를 진정시키기 위해 숙소에서 타온 커피 한 잔을 따랐다. 바람과 바람 사이를 틈타 문을 열고 근방에 계실 천지신명께 커피 한 모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