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싶은 이름들 권영상 짬 좀 내어 논벌에 나가 봐야지, 했는데 여태껏 그 일을 못했다. 집에서 조금만 나가면 벼가 익는 논벌이다. 그런데도 뭐가 바쁜지 내일, 내일, 하다가 오늘에야 틈을 냈다. 요기 대여섯 집을 지나면 언덕이 나오고 언덕을 넘으면 논벌인 벽장골이 펼쳐진다. 신발 끈을 조일 겸 따가운 가을볕을 피해 나무 그늘에 들어섰다. 거기 앉아 풀린 운동화를 조이고 일어서며 보니 나를 가려준 나무가 뽕나무다. 논벌을 내다보는 밭둑에 커다란 뽕나무 한 그루. 가끔 이 길을 지나다녔지만 여기에 뽕나무가 서 있는 줄은 몰랐다. 괜히 뽕나무를 한 바퀴 빙 돌아본다. 예전 딸아이가 어렸을 때다. 나무만 보면 아빠랍시고 나무 이름을 가르쳐주던 때가 있었다. 밭 가생이에 선 뽕나무를 보자, 이게 뽕나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