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가을 운동장의 이어달리기

권영상 2015. 10. 28. 11:44

가을 운동장의 이어달리기

권영상

 

 

 

 

지난 토요일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10월 24일. 충주에서 전국 동시인대회가 있었습니다. 전국에서 동시 쓰시는 시인들이 모였습니다. 나는 그날 개인적인 일이 있어 조금 늦게 충주공용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모임 장소인 교현초등학교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는 교현천 변의 풍물시장을 지나고 중앙시장을 거쳐 커브길을 돌아 교현초등학교 앞에 내려주었습니다. 학교를 떠난 지 3년, 그 나이에 다시 교정에 들어서려니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고풍한 교사, 가을물이 들고 있는 교정의 느티나무들, 그리고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는 운동장.

 

 

 

한창 행사가 열리고 있는 운동장에서 이안 시인과 응원을 하고 있는 수많은 시인들과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늦게 도착한 벌일까요. 악수의 온기가 채 식기도 전에 진행자가 나를 운동장으로 이끌어냈습니다. 이어달리기 경주를 하라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이 행사도 벌써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부르는 대로 운동장에 나섰습니다.

청팀과 홍팀, 팀마다 16명, 양팀 모두 32명. 운동장이 워낙 커 한 팀을 4개조로 나누었고, 나는 그 세 번째 조에 들었습니다. 세 번째 조의 위치는 조례대 맞은편입니다. 주자들은 중년의 남녀 시인, 엄마를 따라온 중학생 아들, 나처럼 나이든 이까지, 그야말로 비빔밥들이었습니다.

 

 

 

모두들 구령에 맞추어 준비운동을 했습니다. 달리기가 단순해 보이지만 급하게 박동수를 올리기 때문에 간단치는 않습니다. 대부분 직장에 매달려 살거나 글을 쓴다고 방에 박혀 사는 글쟁이들이고 보면 결코 만만한 운동이 아니지요.

준비운동이 끝난 뒤에도 나는 제자리 뛰기를 하고, 심호흡을 하고, 나름대로 익힌 스트래칭을 하고, 내 몸 걱정으로 이것저것 되는 대로 몸을 놀렸습니다.

 

 

 

 

드디어 저쪽, 출발선이 있는 조례대 쪽에서 출발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출발선에서 튕겨 나왔습니다. 출발부터 속도가 달랐습니다. 앞서 가는 이와 그 뒤를 쫓아가는 이의 거리가 확연히 벌어졌습니다. 그때입니다. 쫓아가는 뒷사람의 몸 상태가 이상해 보였습니다. 허방다리를 찧는가 싶더니 아뿔싸, 트랙에 고꾸라졌습니다. 바닥에 부딪힌 몸이 튕겨 오르더니 다시 고꾸라졌고, 급기야 완전히 쓰러졌습니다.

“아니!”

우리는 비명을 질렀고, 경기는 중단됐습니다.

이쪽에 서 있는 우리들은 더 어찌하지 못한 채 물끄러미 그가 빨리 일어나주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응원을 하던 두 사람이 급히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어쩐 일인지 그를 부축해 교문 쪽으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심각한 모양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장아무개 시인이었습니다.

 

 

 

그를 병원에 보내고 장시인이 쓰러진 자리에서, 그리고 앞서 달려나간 자리에서 경주는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모르기는 해도 장시인은 옆 사람보다 잘 달려서 잘 달린 만큼의 거리를 다음 사람에게 물려주고 싶었을 테지요. 누구나 이어달리기 트랙에 서면 그런 부담쯤은 가질 겁니다. 옆 사람을 앞서지는 못할망정 뒤쳐진 거리를 다음 주자에게 넘겨주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요. 그러니 좀 욕심을 내어 달리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지요. 그건 세상을 좀 살아본 사람이라면 다 알지요.

욕심은 그렇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욕심대로 되지 않는 법. 마음은 저만큼 앞으로 달려가나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여 마음과 몸이 어그러지는 순간 몸은 균형을 잃다가 쓰러지는 겁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내 앞의 주자가 벌써 두 명이나 달려 나갔습니다. 세 번째, 그러니까 우리 팀 전체의 11번째는 내 차례입니다. 내 뒤의 15번째 주자인 어린 중학생이 내게 당부했습니다.

“우리는 빨간색 바통입니다. 빨간색이요.”

행여 내가 다른 바통을 받아 달려 나갈까 걱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걱정은 없었습니다.

앞서 달리고 있는 편은 우리 홍팀이었으니까요.

 

 

 

 

드디어 나는 바통을 받으러 트랙에 나섰습니다. 나는 나를 향해 달려오는 주자를 보았습니다. 서아무개 여류 시인입니다. 그와 일직선상에 서 있어 그렇겠지요. 그가 총알처럼 빠르게 달려왔습니다. 이제 나는 저 바통을 받아 다음 주자에게 넘겨주어야 합니다. 그게 이 트랙에 나와선 나의 임무입니다. 나는 적어도 추월당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척추를 다친 적이 있고, 지금도 척구관절에 문제가 있습니다. 거기다가 내 상대주자인 백시인은 나와 나이는 비슷하지만 그는 소년처럼 몸이 가볍습니다.

 

 

 

마침내 나는 빨간색 바통을 이어받았습니다. 나는 우리 팀의 마지막 주자인 어린 중학생을 위해 구두를 신었지만 힘껏 달렸습니다. 어린 그가 얼마간의 여유 있는 거리를 가지고 결승라인에 들어설 수 있도록 일조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한 사람의 시인이기보다 한 사람의 자본주의에 젖은 아버지인 듯 했습니다. 남보다 더 여유 있게, 넉넉하게 이기기를 바라는 경쟁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나. 결국 나는 내 부실한 몸도아랑곳 하지 않고 달려 다음 주자에게 바통을 넘기고 트랙을 내려섰습니다.

 

 

 

 

마침내 나의 자본주의는 이겼습니다. 아니, 우리 홍팀은 나의 뜻대로 여유있게 이기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 댓가로 공책 두 권과 잘 익은 모과를 하나씩 먼저 받았고, 진 팀은 공책 두 권과 남은 모과를 나중에 받았습니다.

그 무렵, 병원에 갔던 장시인이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가벼운 찰과상이었고, 병원에서 치료해준 테이프가 얼굴에 붙어있었습니다.

그가 병원에 다녀오는 사이, 내 마음에서 일어난 고민을 그가 알 리 없겠지요.

이것으로 이어달리기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이어달리기는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