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오래된 만년필을 쓰다

권영상 2014. 6. 17. 11:34

오래된 만년필을 쓰다

권영상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가 만년필을 발견했다. 늘 여닫는 게 책상 서랍인데 오늘에야 만년필이 내 눈에 띄었다. 수첩과 주소록 밑에 숨죽이듯 누워있다. 모두 여섯 개다. 국내 제품도 있고, 누구나 한두 개씩은 가지고 있음직한 잘 알려진 몽블랑과 파커 만년필도 있다. 모두 선물로 받은 것들이다. 문학상을 받을 때나 근무지를 옮길 때 가까운 친구나 동료들로부터 받았다. 아내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것도 있다.

 

 

 

 

받을 때는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을 테다. 그 마음이 고마워 한두 번 가지고 다니기도 했겠다. 그러나 실은 만년필은 무게감이 있어 소지하기가 좀 불편하다. 겨울 동복을 입을 때는 재킷 안주머니에 꽂고 다니면 되지만 점점 겉옷이 가벼워지면 윗주머니에 꽂고 다니기엔 좀 무겁다. 들고 다니는 가방에 넣어도 다녔지만 그마저 손이 먼저 가는 것은 볼펜이나 수성 펜이다. 결국 이 고마운 선물의 마지막 행은 서랍 속이다.

나는 만년필 중에서도 검정색 만년필을 집어 들었다. 내 손이 금방 무게감을 느낀다. 만년필의 캡을 열었다. 닙에 잉크 흔적이 없다. 노란 금빛 그대로다. 바디를 열어 피스톤 필러를 돌려봤다. 잉크가 나올 리 없다. 내 손에 한번 잡혔다가 그냥 잊혀지고만 만년필이다.

 

 

 

 

오래전부터 만년필은 우리 손에서 멀어졌다. 이제 그 누구도 글을 쓰기 위해 만년필을 사는 이는 없다. 입학과 졸업, 취업 선물로 주고받는데 쓰이거나 아니면 서명용으로나 가끔 쓰일까. 그러나 요즘은 전자결재 시대라 딱히 서명할 곳도 없다. 가끔 하는 서명을 위해 만년필을 기억해내는 서명자의 여유도 없는 시대다. 그냥 주고받고, 그러고는 잊혀지고 마는 어떻게 보면 마음 아픈 존재가 됐다. 그런데도 고가의 만년필이 계속 만들어지는 것은 아직도 인류가 잉크로 쓰는 글씨에 향수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잉크로 쓰는 글씨가 가장 고귀하고, 가장 품격 있고,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잉크 글씨에 대한 믿음.

 

 

 

 

 

단 한번이 되고 말지라도 만년필로 글을 써 보고 싶었다. 잉크를 찾았다. 책상 위에서 책장으로 옮겨간 잉크가 있었다. 검정과 청색 파일럿 잉크병. 잉크병 두 개가 아주 오래전에 옮겨놓은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있었다. 청색 잉크병을 열었다. 그 안을 들여다봤다. 잉크가 그대로 있다. 만년필의 닙을 잉크 속에 푹 담그고 피스톤 필러를 돌렸다.

잉크를 채워들고 종이 한 장을 내놓았다.

 

 

 

 

일흔이 넘은 고향 선배 시인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만년필을 잡고 앉으려니 나도 모르게 몸이 단정해진다. 휘갈겨 쓰던 연필의 속도를 줄여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글자를 세듯 편지를 써나간다. 바디 속 잉크가 하트 홀에서 공기와 만나 모세혈관으로 흐르는 피처럼 슬릿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려 펜 포인트에 이른다. 글자를 쓸 때마다 펜 포인트가 종이에 닿아 사각거리는 소리, 하얀 종이를 파랗게 적시며 나가는 기호들, 그 기호 속에 담기는 약간의 엄숙함과 문자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평소 이상의 선배 시인에게 바치는 의례와 격식.

나는 마치 처음 익힌 이국의 문자로 글씨 연습을 하듯 편지를 써나갔다. 안부를 여쭙고, 만년필이 눈에 띈 것과 그 만년필로 선배 시인에게 편지를 쓰게 된 사연을 적고,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날짜를 적고 서명을 했다.

 

 

 

 

동료들의 시집을 받으면 전에는 꼭 손으로 편지를 써서 그 고마움을 전했다. 그런데 그 일마저 간편한 이메일이나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대신해 온 지 오래다. 그 바람에 내 첫 번째 서랍에는 한 묶음의 편지봉투가 그대로 있고, 오래 된 220원짜리 우표 십여 장이 그대로 있다.

나는 봉투 속에 편지를 접어 넣고 주소와 이름을 반듯하게 썼다. 요즘 우표 값을 몰라 우표 두 장을 붙였다. 조금 후, 나가는 길에 가져가기 좋도록 눈에 잘 띄는 식탁 위에 놓았다.

닙은 정교해 수공으로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글씨는 수공으로 만든 만년필에서 태어나야할 것 같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느 기능공의 땀이 있어 나는 오늘 편지다운 편지 한 통을 썼다. 수십 년 전, 글씨를 사모하던 시대를 잠깐 살다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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