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권영상
크리스마스의 새벽이 기다려졌다.
괘종시계가 자정을 넘기는 종을 치면 그때부터 어린 우리들은 잠을 잘 수 없었다. 산타할아버지가 머리맡에 선물을 두고 가실 거라는 기대감 때문에? 아니다. 우리 같은 시골 농가엔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 아니 있긴 있었는데 내가 태어나 살던 곳이 너무도 고전풍의 농촌이어서 없었을지 모른다. 백부님들이나 아버지는 유교풍을 숭상했고, 백모님들이나 어머니는 집에서 꽤 먼 절에 태연히 다니셨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눈을 뜨면 윗마을 예배당의 첨탑이 보여도 감히 거기에 갈 생각을 못했다.
그런 마을로 크리스마스의 새벽이 오면 어김없이 ‘새해 복 많이’가 왔다. 지금으로 말하면 성가대다. 이때를 위해 어머니는 그 ‘새해 복 많이’에게 내줄 선물을 준비하셨다. 어머니는 정초에 쓸 과즐을 잘 만드셨는데 ‘새해 복 많이’를 위해 조금 더 만드셨다. 선물은 과즐 말고도 곶감, 과자, 때로는 떡도 마련하셨다. 우리 식구 중 교회에 다니는 이가 한 명도 없었지만 어머니는 각별하셨다. 그건 이웃에 사시는 백부님댁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사는 마을은 앞서도 말했지만 시골 농촌이다. 백여 호가 사는 마을이다. 윗마을은 집단 부락을 이루어 살지만 내가 사는 아랫마을은 밭과 논을 따라 띄엄띄엄 서너 집씩 모여 사는 전형적이 농가였다.
크리스마스의 첫 새벽에 대한 내 기억은 이렇다. 시계가 자정을 치면 어둠속 먼 어디에서 컹컹컹 개가 울고, 추운 어둠을 타고 아득히서 성가가 들려왔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아니면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였다. 여간해서 잠을 깨지 않는데도 내 잠결에 그 성가가 은은히 울려왔다. 마을 교회의 성가대가 마을 백여 호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새해 복 많이’를 나누어주는 복음이었다.
그 노래를 따라 부르며 잠속에 빠져들 때다. 그제야 그 ‘새해 복 많이’가 달콤한 내 잠을 깨우며 우리 집 안마당으로 걸어 들어온다. 그때면 내 귀가 긴장한다. 가만히 누운 어머니도 긴장하신다. 그들의 걸음소리가 마당 한가운데서 멈춘다. 순간 밤이 고요해진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이윽고 성가대의 성가가 울려퍼진다. 사위가 고요한 밤, 안마당에서 부르는 그들의 성가소리는 우리를 황홀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남자들의 굵은 목소리와 여자들의 고운 목소리가 한데 어울려내는 조화로움은 겨울밤을 신비롭게 했다. 노래는 안마당을 풍부히 울리고, 울려난 소리들은 담장에 반향 되어 창호문 안으로 밀려들었다. 그 소리는 다시 방안을 가득히 채우며 조용히 끝났다.
그리고 잠시 뒤 성가의 마지막 소절 끝으로 앳된 여자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러면 어머니는 단정히 일어나 미리 준비하신 선물을 가득히 쟁반에 받쳐 경건히 그들에게 내 주셨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에 대한 답례이며 성인의 탄생에 대한 감사의 인사였다.
안마당에 남았던 성가대의 맨 마지막 발자국이 사라지고 나면 ‘다들 자거라.’ 어머니는 그 말을 남기고 이불 속에 드신다. 성가대가 떠나간 마당은 빈 듯 하지만 왠지 모를 기쁨으로 충만해 있었다. 다시 새벽잠에 드는 우리들 마음도 기쁨으로 충만했었다.
그 시절의 종교를 대하는 마음은 다들 그랬다. 너의 종교와 나의 종교를 금 긋듯 그어 대하지 않았다. 그때의 어른들은 그런 식으로 다른 종교와 서로 어울려 살았다.
올 새해에는 많이 가진 이와 덜 가진 이, 행복한 이와 슬픈 이의 삶이 서로 평등하게 나뉘어지기를 빌어본다.
(교차로신문 2011년 11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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