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 연재 칼럼

붕어빵 한 봉지

권영상 2013. 9. 10. 17:16

 

 

붕어빵 한 봉지

권영상

 

 

 

 

 

건널목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다.

붕어빵 굽는 냄새가 퇴근길의 내 출출한 코를 자극했다. 돌아다보니 길 뒤켠에 붕어빵 장수가 있다. 마흔 후반의 부부다. 여자는 앞치마를 하고 서서 기계를 돌리고 있고, 남자는 수레 위의 아라비아 문양 비닐천막을 손보고 있다. 나는 실없이 다가가 붕어빵 한 봉지를 사고 말았다. 사기는 했지만 사람들 오가는 길목에서 이걸 먹을 만큼의 용기가 내게는 없다. 건널목을 서둘러 건너며 붕어빵 봉지를 가방 안에 넣었다.

 

 

 

몹시 춥던 재작년 겨울이다.

어느 날, 아내가 퇴근길에 붕어빵 한 봉지를 사왔다. 아파트 정문 앞에서 샀단다. 나는 아내가 저녁밥 짓는 걸 빤히 보면서 식탁 위에 놓인 붕어빵을 홀홀 불어가며 먹었다. 하나만 먹고 말 수 없는 게 붕어빵이다. 두어 번 더 손이 갔다.

그 얼마 후, 이번에는 딸아이가 정문 앞에서 샀다며 또 붕어빵을 사들고 왔다. 나의 출퇴근길 방향은 전철역이 가까운 후문이다. 그런 까닭에 주로 후문을 이용한다. 가끔 내가 찾는 미용실이며 술집 방향도 그쪽이다.

그 일이 있고 며칠 지나 딸아이가 또 붕어빵을 사들고 왔다. 나는 맛있네, 하고 먹었다. 그 얼마 뒤 이번에는 아내가 또 사들고 왔다. 저녁 먹기 전에 뭘 좀 먹으면 타박을 하는 게 아내다. 그런데 어짜자고 벌써 몇 번이나 붕어빵이다. 배고픔을 잘 참지 못하는 나로서는 붕어빵을 그냥 온전히 둘 수가 없다. 그 따끈한 팥맛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는가.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마음을 먹고 정문으로 빙 돌아 퇴근을 했다. 정말이지 정문 담장 곁에 비닐로 사방을 두른 붕어빵 장수가 있었다. 부부였다. 앞치마를 두른 말끔한 여자는 붕어빵 기계를 다루고 있고, 남자는 바깥에서 바람 단속을 하고 있었다.

“붕어빵 한 봉지 주세요.”

내가 다가가자, 여자가 웃으며 나를 맞았다.

갓 구워낸 붕어빵을 종이봉지에 담아 여자가 내게 내밀었다.

“얼마지요?”

내 물음에 여자가 손가락 한 개를 펴 보였다. 그러더니 얼른 작은 종이판을 들어올렸다.

<네 개에 천 원입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죄 지은 사람처럼 종이판에다 얼른 인사를 하고 천 원을 드렸다. 그러자 여자가 내게 고개 숙여 웃으며 답례를 했다. 청각장애를 가진 분이었다. 뜨거운 붕어빵 봉지를 외투 안에 넣고 집으로 돌아오며 아내와 딸아이가 붕어빵을 사들인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나도 한 봉지 샀어.”

뭐 대단한 일이나 한 것처럼 집에 와 붕어빵 봉지를 식탁 위에 내놓았다.

붕어빵 하나를 호호 불며 먹어주던 아내가 나를 봤다.

“남편도 청각장애를 가진 분이야.”

아내는 붕어빵 장수에 대해 많은 걸 벌써 알고 있었다.

“당신 오늘 운 좋아 샀던 거야. 그 부부가 수요일만 우리 아파트에 오거든.”

그러고 보니 그날이 수요일이었다.

 

 (교차로신문 2011년 12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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