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이야기 동시 연재>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다
12. 유화부인
압록강 가의 봄
강물엔 신이 살았다.
물을 다스리는 신, 하백.
수선화가 피는 하백의 집엔 예쁜 딸이 셋 있었다.
하유화, 하위화, 하훤화.
“봄볕이 고우니 어디든 나가 놀다 오렴.”
아버지 하백은 딸들에게 파랗게 흐르는 압록강의 봄을 보여주고 싶었다.
유화는 동생들을 데리고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강가로 나갔다.
치마를 걷고 강물에 들어서서
발을 씻고 있을 때다.
건장한 청년 하나가 수선화 피는 강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강을 건너와 유화 앞에 섰다.
금방 꺾은 수선화 꽃묶음을 건넸다.
“나는 천제의 아들 해모수요.”
청년의 말소리가 봄풀 같이 풋풋했다.
“알고 있다오. 북부여의 가장 멋진 남자라는 것도.”
유화의 말에 청년 해모수가 빙그레 웃었다.
유화가 자기 소개를 했다.
“아시겠지만 저희는,”
청년이 유화의 말끝을 멈추게 하고 자신이 그 말을 이어 나갔다.
“당신들이 물의 신 하백의 따님들이시며 당신의 이름이 유화라는 것도 나는 안다오.”
말을 마친 청년 해모수가 유화의 손을 붙잡아 이끌었다.
“따라와 보시오. 여기에 풀꽃으로 지은 집이 있소.”
유화는 동생들을 두고 그를 따라 강둑을 넘어갔다.
거기엔 풀꽃으로 지은 집이 있었다.
“당신에게 주겠소.”
유화는 그 풀꽃집에서 사흘을 보냈다.
유화가 알을 낳다
사흘이 바람처럼 지나갔다.
그 날 아침, 청년 해모수는 풀꽃집을 떠났다.
홀로 남은 유화는 집으로 돌아왔다.
“사내에 홀려 동생들을 버려두고 이제야 돌아오다니!”
아버지 하백은 장맛비에 불어난 강물이 성을 내듯 딸에게 성을 냈다.
“집을 나가라!”
유화는 태백산 우발수 아래로 쫓겨났다.
달팽이처럼 풀숲에서 잠을 자고, 바위 밑에서 비를 피하고,
배고프면 강가에 나가 물고기를 잡거나
조개를 잡았다.
“가여운 처자로구나!”
말을 타고 근방을 지나가던 금와왕이 유화를 보았다.
왕은 유화를 궁으로 데려가 방 한 칸을 내어주었다.
어쩐 일인지 햇빛이 유화의 몸에 닿자, 유화의 몸이 뜨거워졌다. 유화의 배가 천천히 불러왔다. 유화의 뱃속에서 풀잎만한 숨소리가 새근새근 들렸다.
그 뒤 유화의 방을 다시 찾은 금와왕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방에 닷되들이만한 커다란 알이 뒹굴고 있었다.
“간밤에 제가 낳았나이다.”
유화가 부끄럽게 말했다.
금와왕은 그 말에 유화가 누군가와 정을 통했음을 알고 화를 냈다.
“이 알을 그 아비가 있는 곳에 내다 버려라!”
고구려의 어머니
신하들은 알을 안고 그의 아비가 살만한 마을 길가에 버렸다.
지나가던 소와 말이 알을 보고 비켜갔다.
풀숲에 내다 버렸다.
새들이 날아와 품어주었다.
돌덩이로 알을 깨뜨리려 했지만 깨뜨릴 수 없었다.
신하들은 그 알을 안고 다시 궁으로 돌아가 왕 앞에 내려놓았다.
사정 이야기를 다 들은 왕이
유화를 불렀다.
“네가 낳은 알이니 네가 가져가려무나!”
왕은 유화의 치맛폭에 알을 던졌다.
그날 밤.
치맛폭으로 감싸안은 알에 금이 돌기 시작했다. 별빛 무늬처럼 금이 돌더니 알 속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고구려를 연 동명성왕 주몽이다.
그를 낳은 분은
고구려의 어머니 유화부인이고.
찾아든 젤로
세상이 고즈넉한 저녁 무렵
열린 창문으로 초록풍뎅이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탁자 위에 살짝 내려앉았다.
“예쁜 아기가 태어나셨네요. 축하합니다.”
그 말에 유화부인이 가볍게 인사를 받았다.
“말씨가 곱구나. 어디서 온 누구냐?”
“미래의 나라 서울에서 온 젤로입니다.”
“어떻게 이 먼 곳까지 왔느냐?”
유화부인이 곁에서 새근새근 잠든 아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궁금한 게 있었다오. 부인께서는 알을 낳으셨고, 그 알에서 방금 아기가 태어났지요. 이 일이 모두 사실인가요?”
“사실이다. 나는 실제로 알을 낳았고 아기는 알에서 나왔다.”
“사람이라면 알이 아니라 아기를 낳아야 하는 법 아닌가요?”
젤로가 정색을 하며 물었다.
“그것이 궁금했구나. 내 생각도 그렇긴 하다. 하지만 해모수는 사람이 아니라 신의 아들이다. 가장 높은 하늘에서 세상을 다스리는 태양신을 아느냐?”
유화부인이 물었다.
“혹시, 다리가 셋인 검은 새 삼족오를 말하시나요?”
고구려 군사들의 깃발에 그려진 검은 새 삼족오가 떠올랐다.
“그렇다. 우리는 삼족오의 종족이다.”
“그러니까 알을 낳으셨다는 거군요?”
“그렇다.”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고맙습니다.”
젤로가 붕 날아올랐다.
“잘 가렴.”
유화부인이 잠깐 손을 들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