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만남: 이 시대 대표 동시인에게 듣는다>
각 세대를 대표하는 세 분의 시인에게서 자신만의 고유한 시 세계와 동시의 매력에 대해 듣는다. (사전접수)
사회: 송선미
출연: 권영상, 김륭, 김개미 단행본용 최종원고 5월 말까지 수합
[0작가 소개] “작가와의 만남, 이 시대 대표 동시인에게 듣는다” 사회를 맡은 송선미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심의 바다, 부안 한국동시축제”의 자리에 이 시대를 대표하는 세 분 동시인을 모신 자리에 사회를 진행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세 분 선생님, 건강하시죠?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권영상: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대표 동시인’에 저를 끼워 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키 큰 대표 동시인’ 하면 금방 수긍이 갈만한데 아직 ‘이 시대 대표 동시인’에 끼기는 좀 이른 것 같습니다.
내소사, 곰소, 채석강, 줄포, 직소폭포 등 변산반도를 끼고 있는 부안군에서 한국동시축제가 열리고, 이곳에서 여러분들을 뵙게 되어 감동적입니다. 변산반도는 살아오면서 늘 꿈꾸어오던 곳이었는데 오늘 생애 두 번째로 찾아왔습니다.
부안군민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함께 자리하게 된 김륭 시인, 김개미 시인, 그리고 사회를 맡으시는 송선미 시인, 모두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행사가 동시 쓰는 동시인들의 기쁨과 감격의 자리가 아닐까 합니다.
김개미: 귀한 자리에 함께 하게 되어 기쁩니다. 저는 그냥 있어요. 1월에 동시툰, 3월에 시집이 나왔는데요. 책을 낸 해에는 이상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책이 나왔으니 뭐라도 한 것처럼 쉬어도 된다는 무의식에 작용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완전히 놀지는 못하고 책과 콩나무 인스타와 블로그에 동물동시를 월2회 연재하고 있어요. 이게 일정이 빡빡해서 그나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합니다.
김륭: 한마디로 죽은 듯 지내고 있어요.(웃음) 주석을 달자면, 죽은 듯 사는 일이 참 힘든 일이란 걸 새삼 깨우치며 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문제는 죽은 것 같은데 내 안에 살아있는 아이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가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아직 건강하다고 말해도 되겠죠?
[들어가기_동심이란?: 공통질문] “동심의 바다, 부안 한국동시축제”는 동심으로 하나 되는 잔치의 자리입니다. “눈사람 셋이 모였다/ 흰 눈사람/ 검은 눈사람/ 붉은 눈사람// 누가 더 깨끗한 눈사람인지/ 서로 따지지 않았다/ 모두 추운 나라에서 왔다” 송찬호 선생님의 동시 <눈사람>입니다. 한때 우리 모두는 눈사람이었지요. 한때 우리 모두는 어린이였어요. 그래서 동심으로 하나되어 “만세!” “하얀 독립군 눈사람” 동심의 나라로 함께하는 동시 공동체의 자리가 가능하지 않은가 생각해 봅니다. 세 분 선생님께 여쭙고 싶어요. 권영상 선생님, “동심으로 하나되는 독립군의 나라”. 가능할까요?(동심이 뭔가요?)
권영상: 매우 낭만적인 생각인 듯한 데 동시 공동체, 가능하겠네요.
동심은 신분과 능력, 학력, 종교, 경제적 능력 등의 권위와 권력을 부정하는 긍정적이며 또한 낭만적인, 인간의 원형적인 고향 심리가 아닐까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김요섭 선생님의 동화 ‘꽃잎을 먹는 기관차’에 슬며시 나타난 무정부주의, 그러니까 아나키즘이 지향하는 세계와 통하지 않나 하겠습니다.
문학 장르 중에서도 가장 동심이 잘 반영된, 동시를 사랑하는 0살에서부터 100살까지의 모든 인류를 저는 감히 ‘동시 공동체’ 인류라고 말하고 싶네요.
아무리 나이를 먹고, 세상사에 지친다 해도 그 영혼의 바탕에 동시를 사랑하는 동심이 깃들어 있다면, 그게 곧 동시 공동체가 아니겠습니까.
김륭: 점점 빠르게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요즘은 그동안 살았던 세상을 ‘잊거나 잃어버리기 위해’ 애를 쓰는 나를 자주 만나요. ‘오르한 파묵’은 아이처럼 세상을 잊는 것, 익숙한 세계의 규칙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것(『다른 색들』) 등을 글쓰기의 가장 멋진 부분으로 꼽았죠. 그렇다면 가능할 것 같아요. 내 안에 숨어있던 아이를 불러내는 일로부터 동심은 시작되고 구체화되는 거니까요.
김개미: 저는 이 질문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진 못하는 것 같은데, 그냥 이 자리를 빌어 하고 싶은 말을 한다면요. 코로나 때문에 몇 년간 우리에겐 잔치다운 잔치가 없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얼굴을 마주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설레고,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살아남아 동시를 가지고 함께 걸어가는 동지의식이 더 각별해진다고 할까요. 보다 솔직하고 담백할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아요.
[김륭_1] 가장 최근에 동시집을 내신 김륭 선생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동시는 왜 쓰시나요?^^
김륭: 이런 질문은 너무 무지막지한 거 아니에요?(웃음) 불쑥 심장에 칼을 들이대는 느낌이 들거든요. 암튼 질문은 질문이니까 답을 하자면 ‘없던 마음’이 혹은 그동안 ‘가질 수 없던’ 마음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지금까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게 마음이다, 하고 살았는데 글쎄요,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거죠. 돌이켜보면 제게 동심은 언제나 나의 밤이었고 동시에 언제나 나의 낮이었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시공간화 될 수 없는 게 마음의 형태이고 그게 마음이 가진 힘인데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엊그젠 문득 아이들은 모든 어른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눈만 내리면 만들 수 있는 눈사람처럼 말이에요. 제가 동시를 쓰는 이유는 이 때문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김륭_2] “아이를 만드는 눈사람을 본다. … 모르는 눈사람이다. … 시가 그렇듯 모든 아이는 모두 다르게 태어나고, 언제 어디서든 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김륭 선생님께서는 최근 동시집 《내 마음을 구경함》(문학동네 2022)에서 아이를 만드는 눈사람과 “또 혼자 놀러” 가는 마음에 대해 적어주셨어요. 선생님의 작품에선 ‘눈사람’이 동심과 동시, 마음과 사랑으로 도처에서 새롭게 태어납니다. 왜 눈사람인가요? 최근 동시집에 담으신, 또는 평소 생각해오신 눈사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히 부탁드립니다.
김륭: 어쩌면 이렇게 콕콕 피하고 싶은 질문만 골라 꺼내는지 모르겠어요.(웃음) 《내 마음을 구경함》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가식덩어리’ 눈사람쯤 될까요? 알려고 하면 할수록 더 모르겠다 싶은 내 마음을 담은 거니까요. 어쩌면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고 눈사람이 아이들을 만든다는, 다소 황당한 생각에서 출발했는데 이상하게도 쓰는 내내 내가 아직도 따뜻하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말씀드리는 건데요 평소 생각해온 눈사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히’ 부탁한다고 하셨는데, 불가능해요. 왜냐하면 내가 가진 인생의 전부를 탈탈 털어내라는 말이거든요.(웃음) 어쨌든 질문에 대한 답은 있어야 하니까 그야말로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눈사람이 곧 사랑이고 사랑이 곧 눈사람이다, 라고 하면 될 것 같아요. 보다 ‘동시’스럽게 부연하자면, 눈사람이 막 태어날 땐 눈과 코와 입과 귀가 없잖아요. 그걸 아이들이 숯이나 나뭇가지 등으로 만들어 붙여주는데, 그 순간순간 아이들이 가진 마음이 궁금했어요. 그리고 사랑이란 게 이런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요. 참고로 제가 가진 눈사람의 이미지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불멸’이에요. 좀 상투적이지만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잖아요. 사랑이 그렇듯이……. 암튼 난 모르는 눈사람이 그리고 모르는 이야기가 좋은 것 같아요.
[권영상_1] 권영상 선생님, 반갑습니다. 일전 서울에서 선생님과 함께 걷던 정동길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제작년에 출간된 《실 끝을 따라가면 뭐가 나오나》(국민서관 2021)이 리커버링되어 재출간된 동시집이니까 《고양이와 나무》(상상 2020)가 최근작이 되는 거지요? 김륭 시인도 김개미 시인도 작품 활동을 왕성히 하고 계시지만 선생님을 따라가려면 더 분발하셔야 할 것도 같은데요. 선생님, 지금까지 몇 권이나 동시집을 내신 거지요? 동시집 말고도 정말 많은 책을 내셨어요.
권영상: 부끄럽습니다만 여태 살면서 동화집, 그림책 산문집 등 70여권을 출간했습니다. 그 중에 동시집은 21권 정도 됩니다.
대충 시대별로, 삼국유사를 동시로 쓴 <동트는 하늘>, 독재정치에 저항하는 색깔을 띤 <밥풀>, <버려진 땅의 가시나무>, 이야기 동시집 <신발코 속에 새앙쥐가 산다>,<월화수목금토일별요일>, IMF로 붕괴되는 가정을 지키려고 쓴 <구방아, 목욕가자> 등의 유형이 있고, 그 중엔 중국 광서사범대학출판부에 2권의 판권이 가 있는 동시집도 있습니다.
최근작 <고양이와 나무>는 대체로 자연지향적 동시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권영상_2] 외람된 말씀이지만 제가 처음 선생님 작품을 읽었을 때 젊은 동시인의 작품이라 생각했어요. 선생님을 알게 되곤 깜짝 놀랐습니다. 감각적이면서도 단단한 위로와 믿음이 있는 작품, 선생님 작품에는 한발짝 뒤에 의자 하나가 놓여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의 작품 <작은 의자>나 <오래된 의자>도 그렇지만 ‘잘 커다오, 꽝꽝나무야’의 세계나 ‘아, 너였구나’의 세계처럼 믿음으로 지켜주고 알아봐주는 세계가 의자 하나를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아요. 제가 개인적으로 진짜 궁금한 건데요, 선생님께서는 365일 시만 생각하시나요? 선생님께선 어떻게 시를 만나고 시작업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권영상: 어려운 질문이네요. 시만 생각하며 산다 하면 ‘시에 미친’ 사람이 될 것 같고요.
시에 대한 생각없이 문득 한 편씩 쓴다고 하면 좀 천재적인 시인으로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능력도 안 되면서 척하는 꼴을 저는 또 못 봐줍니다.
가방을 들고 출근할 때는 책상에 앉아 폼나게 시를 썼죠. 그러다가 어깨에 메는 가방을 이용하면서부터 잃어버린 두 손을 찾게 되었고, 그때부터 버스에서 길에서 메모를 통해 시를 얻어갔지요. 당연히 시에 땀과 현장성이 묻어났지요.
그후 퇴직을 하면서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침대 위에 누워 시를 씁니다. 누워서 시를 쓰다 보니 볼펜이나 만년필을 안 돼요. 연필로 시를 씁니다. 하하.
[김개미_1] 김개미 선생님, 반갑습니다. 동시와 시는 말할 것도 없고 산문이면 산문, 그림이면 그림, 뜨게질이면 뜨게질, 그림책에 직접 그리신 그림을 포함한 에세이집에 만화까지 그리신다니, 신은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선생님의 놀라운 아이디어와 도전정신이 동시단에 엄청난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가장 최근에 출간하신 책이 문학동네 시인선 190 《작은 신》이시죠? 출간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두달 간격으로 동시툰 《오늘의 투명 일기》(스푼북 2023)을 내셨고요. 《티나의 종이집》(천개의 바람 2021)도 그렇고요. 사실 여성 동시인 오인이 함께 펴 낸《미지의 아이》(문학동네 2021)도 선생님의 제안으로 가능했던 작업이잖아요. 동시만도 충분히 개성적인 목소리를 통해 대중적으로도 평단쪽으로도 큰 인정을 받고 계십니다. 아참, 이 자리를 빌어 김개미 시인께 여태껏 못 전한 말씀 하나 전해요. 일전 송현섭 시인의 인터뷰 때 김개미 시인께 꼭 감사의 말씀을 전해달라셨거든요. 김개미 시인의 <상장>을 읽고 어떤 어린이 화자를 얻었다고요. 송현섭 시인께 꼭 오백원 받으시길요. 아무튼. 다양한 도전을 멈추지 않으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개미: 송현섭 선생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니 영광이에요. 오백원은 제가 드려야겠어요. 이것저것 하는 이유는 도전이라는 의지적 차원은 아니고요. 욕망 때문인 것 같아요. 사람이 자꾸 해보고 싶은 건 해보자는 쪽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일단 올해는 동시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해로 정했어요. 잘하자는 생각은 없고요. 그냥 하자고 생각해요. 도전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씀드리자면, 근사하게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그림책이에요. 그림책 쓰기는 어려워서 신기루 같아요. 쓸 수 있을 것 같은 마음만 가득해요.
[공통질문_1] 세 분 선생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음이 가는 자신의 동시집과 자신의 작품 하나를 꼽아주신다면요?
권영상: 10쇄를 넘긴 동시집도 몇 권 있고, 다들 좋다고 하는 동시집도 있지만 제가 특별이 좋아하는 동시집은 <밥풀>이지요. 강자의 발바닥에 밟힐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밥풀처럼 그 당시 나는 좀 권력을 무서워하지 않았어요. 시인은 좀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과 상관없이 좋아하는 동시가 있지요. ‘모란’ 입니다. 한번 외어 보고 싶네요.
뜰앞 모란이 핀 걸 보니
밤사이 누군가 뜰을 지나가셨나 보다
소리없이 오시어 머무른 자국이
저리 탐스런 것은
아마도 누군인가 고운 님이
달을 보고 웃으시다 두고간 얼굴인가 보다.
김개미: 최근에 나온 것일수록 애정이 가는 증상이 있어서요. 동시집은 『티나의 종이집』(천개의 바람, 2021), 동시는 「민들레를 봅니다」를 고르겠습니다.
티나와
민들레를 보았습니다
벌을 보았습니다
벌에 쏘이지 않으려고
혼자서 보는 것처럼
조용히 보았습니다
혼자서 민들레를 보았습니다
둘이서 보는 것처럼
웃으면서 보았습니다
2연과 3연 사이에 시간차가 많이 나요. 사랑, 혹은 관계에 대해 생각하곤 하는데요. 이 동시에 그것에 대한 제 생각을 비교적 잘 반영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김륭: 아직 없는 것 같아요. 이건 정말 진심이에요. 굳이 말을 해야 한다면, 《내 마음을 구경함》? 가장 최근에 나온 동시집이니까요. 많이 부족한 만큼 나라도 사랑을 많이 줘야하니까요.(웃음) 작품은 《엄마의 법칙》에 수록된 「콩―변신」이나 「눈사람」 정도?
나는 손이 없어 나를 꼭 껴안아 줄 수는 없지만
새로 태어날 수는 있습니다.
추운 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나는 발이 없지만 걸어서 왔습니다.
하늘을 꼭꼭 밟고 왔습니다.
[공통질문_2] 세 분 선생님께 다른 두 분 선생님의 작품 하나를 골라주십사 부탁드렸습니다. 권영상 선생님께선 김개미 시인과 김륭 시인의 작품으로 어떤 시를 골라오셨을지 무척 궁금합니다.(+그 이유)
권영상: 김륭 시인도 김개미 시인과 마찬가지로 다작을 하는 시인이 아닌가 합니다. 그건 저도 그렇네요.
김륭 시인의 시는 때로 은유의 원관념을 깊숙이 숨겨두는 경향이 있어 한두 번 되새겨 읽어야 하는데 그게 김시인 시의 매력이 아닌가 해요. 아무리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라 해도 한번 읽고 마는 동시집이라면 그건 너무 아쉬운 일이지요.
지난해 나온 동시집 「내 마음을 구경함」이 그런 점에서 좀 차분하게 읽히면서도 나름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 동시집인데 거기서 ‘두꺼비’를 골랐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할머니가 읽던 책도 어두워졌다.
할머니의 세상이 고요해졌다.
할머니의 책 위에 놓여 반짝거리던
할머니의 두꺼운 돋보기도
할머니의 빈방처럼
깜깜해졌다.
할머니의 돋보기는 지금
아기작아기작 두꺼비처럼 할머니를
찾아가고 있다.
김개미 시인의 문학동네에서 나온 동시집 『어이없는 놈』의 표제작 「어이없는 놈」을 골랐습니다.
어이없는 놈은 한 번도 자신에 대한 타인의 말을 인정하지 않는 ‘자의식이 강한 아이’입니다. 어쩌면 가장 김개미 시인다운 동시가 아닌가 합니다. 그 이후 많은 동시집이 나왔지만 이름만 다를 뿐이지 ‘어이없는 놈’의 캐릭터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이웃과 사회와 늘 불화하고 엄마와 늘 갈등하면서 자신을 지켜가는 어찌보면 자기애가 투철한 시가 김개미 시인의 특성이 아닐까 합니다.
102호에 다섯 살짜리 동생이 살고 있거든
오늘 아침 귀엽다고 말해 줬더니
자기는 귀엽지 않다는 거야
자기는 아주 멋지다는 거야
키가 많이 컸다고 말해 줬더니
자기는 많이 크지 않았다는 거야
자기는 원래부터 컸다는 거야
말이 많이 늘었다고 말해 줬더니
지금은 별로라는 거야
옛날엔 더 잘했다는 거야
102호에 다섯 살짜리 동생이 살고 있거든
자전거 가르쳐 줄까 물어봤더니
자기는 필요 없다는 거야
자기는 세발자전거를 나보다 더 잘 탄다는 거야
김륭: 권영상 선생님과 김개미 시인의 작품은 다 좋은 것 같아요. 솔직히 제가 쓴 작품도 제대로 기억을 못하는 주제에 곤혹스러운 일이에요. 게다가 이른바 제가 등단할 때 심사위원이었던 권영상 선생님의 작품을 고른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웃음) 굳이 골라야 한다고 협박을 해도 불가능할 지경이에요. 그래서 그냥 가볍게 권영상 선생님의 「창문」(《아, 너였구나!》국민서관 2015)과 김개미 시인의 「상장」(《어이없는 놈》문학동네, 2013) 등을 제 기억 속에 콕 박혀있는 작품 중의 하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 이유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저보다 더 많이 알고 계실 것 같아요. 사회자께서도 말씀해주셨지만 권영상 선생님은 어디서 그 깊고 넓은 시적 품과 에너지가 나오는지 신비할 정도예요. 김개미 시인의 작품은 자연스러운 서사에 장착한 언술이 유쾌함을 넘어 발칙할 때 가장 멋진 것 같아요. 권영상 선생님과 김개미 시인 그리고 지금 여기, 부안에서 뜻깊게 열리는 제1회 한국동시축제에 참여하신 모든 시인들과 한 시대를 함께 걷고 있다는 게 영광스럽고 감사할 뿐입니다.
창문/ 권영상
나비들이
소 발자국에 고인
빗물에 모인다.
나비 날아간 뒤에
가 보니
거기 하늘이 있다,
파란.
그쪽 나라로 가는
창문인 줄 알았나 보다.
⟪아, 너였구나!⟫ (국민서관 2015)
상장/ 김개미
아빤,
으스러지게 나를 껴안고
흔들어 댈 테지
내 코에 침을 바르며
끽끽거릴 테고
머리통을 물어뜯으려고
달려들 거야
내 등을 북처럼
두드려 댈 테고
숨이 넘어갈 때까지
발바닥을 간지럽힐 거야
결국 나를,
사냥한 짐승처럼 거꾸로 들고
집 안을 뛰어다니겠지
이걸 내밀기만 하면
《어이없는 놈》 (문학동네 2013)
김개미: 권영상 선생님 작품으로는 『고양이와 나무』(상상, 2020)에서 「편지」를 가져왔어요. 잘하고 싶은 마음이 강할 때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사용하려는 오류를 범할 수 있잖아요. 자기 것은 자기가 가장 잘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어요.
‘아빠께’로 시작하는
편지를 쓴다.
태어나 처음 써본
아빠께, 라는 글자를 앞에 놓고
아빠께, 읽어 본다.
아빠 안녕! 할 말을
아빠 안녕하세요, 라고 쓴다.
그럼, 아빠 잘 있어, 할 말을
그럼, 아빠 안녕히 계세요, 라고 쓴다.
이렇게 바꾸어 쓰기 어려워
나는 아빠에게 편지를 못 썼는지 모른다.
아빠, 사랑해요.
이 말을 겨우 써놓고 읽어 본다.
숨 막힐 것 같다.
김륭 선생님 작품으로는 『내 마음을 구경함』(문학동네, 2022) 에서 「비장의 무기」를 골랐어요. 내향적인 사람들은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좀처럼 일치하지 않아요. 계속해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게 무기예요. 쉽게 해결하거나 쟁취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생각하고 꿈꾸고 상상하며 내부에 담아두죠. 담아두다 보면 뭐가 되긴 되니까요.
싸움을 잘 못해요
사랑도 그래요 잘 못해요
잘해야 하는 것들을 잘 못해요
그래서 아프거나 슬픈 건 잘해요
정말 놀라울 정도죠
비장의 무기가 있죠
난 싸울 때도 사랑할 때도
몸이 아니라 마음을
사용하거든요
바보 같죠? 이런, 진짜
바보 같으니라고
그러나 나한테 함부로
까불다 잘못 걸리면 끝이죠
내 마음속에서 영원히
추방되거나 죽을 때까지
살게 되는 거죠
[공통질문_3] 최근 창비어린이 특집호로 동시를 다룬 일이 있고 그 지면에서 읽은 이상교 선생님의 글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권영상 선생님께서도 《동시마중》 지면을 통해 젊은 동시인에게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두 분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내가 동시가 아니라 시를 썼다면 이런 응원과 보살핌, 순정하고 진정한 마음에 접속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였더랬어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자리에 어린이뿐 아니라 동시를 쓰려는 분들이 많이 와 계실텐데요, 동시를 쓰고 있고, 동시를 쓰려는 분들께 한 말씀 해 주신다면요.
권영상: 시를 쓰기 전에 먼저 많은 경험을 하실 것을 주문합니다. 경험보다 더 가치있고 공감할 수 있는 시는 없지요.
김개미: 많이 읽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음악을 듣듯, 그림을 보듯 좋아하는 것부터 읽다보면 넓게도 깊게도 확장될 거예요. 쓰고 싶으시다면 용감하시라고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과 느낌과 상상을 커다랗게 키워보세요. 자기를 다 들킬 수도 있는데, 부끄럽더라도 들켜보세요. 책을 읽는 사람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의 인간을 만나고 싶어하니까요. 내면의 인간이 결박을 풀고 밖으로 걸어 나오게 하세요.
김륭: 아이처럼 마음껏 놀고 즐기면서 내가 모르는 아이, ‘모르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동시는 내가 알고 있는 말(언어)의 영역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마음의 영역이니까요.
[마무리_1] 곧 나올 책이나 앞으로의 계획이나 관심사를 말씀해 주세요.
김개미: 연작동시집 『드라큘라의 시』가 올해 나올 예정이에요. 화가님이 스케치 중이에요. 그밖에 몇 권의 책이 예정되어 있는데, 그건 시일이 좀 걸릴 것 같아요. 특별한 계획이라면 올 가을에 이사를 할 계획인데, 『레고 나라의 여왕』에서처럼 또 이사한 내용을 쓰게 될까 걱정이에요.
김륭: 여름에 동시집이 나올 예정인데, 언제나 그랬듯이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요즘 많이 힘들어요. 마음이 좀 설레야하는데 쪼그라드는 느낌이어서 다가오는 여름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지난해 말부터 반성을 좀 많이 했죠. 최근 몸이 좀 시원찮은 건 그 때문인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최근의 관심사를 그동안의 나를, 내 인생을 어떻게 지우냐가 관심사인 것 같아요.(웃음) 새 마음 새 뜻으로 새 시집과 동시집 작업에 나름 최선을 다하려고 애쓰는 중인데 이게 마음대로 되지 않아 골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권영상: 곧 나올 동시집이 있습니다. <동시몰>이라고. 웃음이나 그림자 같이 몰에서는 팔지 않는 것을 파는, 상상력에 방점을 둔 동시집입니다. 지금 계간지 <동시먹는 달팽이>에 약간 시맛을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일단 이 작업이 모두 끝나면 다음 계획을 생각해 볼 겁니다.
[마무리_2] 마지막으로 부탁드립니다. 동시란, ____________이다. 왜냐면 __________________
권영상: 동시란, 일상이다. 왜냐면 일상을 연주하는 노래니까.
김륭: 심장으로 와 닿는 눈송이 혹은 피낭시에. 왜냐면 인간에게 주어진 최초의 말이자 최후의 말이기 때문이다.
김개미: 동시란 “출애굽”이다. 실제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이상적인 동시를 찾아 끝없이 헤매야 한다.
엔딩]
권영상, 김륭, 김개미 세 분 시인을 모시고 동시에 대한 말씀을 들어보았습니다. 세 분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시인이란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행성을 만드는 존재들이구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면의 인간이 결박을 풀고 밖으로 걸어 나오게 하세요.”라는 말씀이나 “동시는 내가 알고 있는 말(언어)의 영역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마음의 영역”이라는 말씀은 제 밤하늘의 별자리로 남게 될 것 같아요. 특히 “동시란, 일상이다. 왜냐면 일상을 간추린 노래니까.”라는 말씀은 매일 먹는 비타민처럼 챙겨 먹고 싶어요. 귀한 세 분 선생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말씀 들을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세 분 선생님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작가와의 만남, 이 시대 대표 동시인에게 듣는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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