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속에 피는 웃음
권영상
‘코로나19’로 사람들 통행이 부쩍 줄었다. 동네 가게들 역시 한눈에 보아도 휴업 상태다. 손님이 없다. 그렇다고 문 닫을 수도 없는 가게 주인의 애타는 심정을 알겠다.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바이러스가 심하게 나돌았는데 이젠 아니다. 온 나라가 그렇고 세계가 코로나19로 앓고 있다. 한 때 이러다 끝날 일이 아니라는 말엔 섬득하기까지 하다. 이 상황에서 기껏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집안에서 조용히 지내는 게 전부다. 잔뜩 위축되어 살던 어느 날쯤 단톡방에 카톡이 왔다.
‘긴급 속보’ 였다. ‘물 마실 때 너무 빨리 마시지 말라고 합니다. 너무 급히 마시면 물이 ‘코로나’ 온답니다.’
나는 웃었다. 처음엔 ‘에이, 싱거운!’ 하다가 이렇게라도 한번 웃어보자며 아내에게 보였다. 아내도 슬쩍 웃었다. 그 무렵 또 여기저기서 카톡이 왔다. 같은 내용들이다. 빠르기도 하네! 하다가도 섬처럼 갇혀 사는 내게 웃음을 보내준 친구들이 고마웠다. 나도 내게 온 ‘긴급 속보’를 멀리 나가있는 딸아이에게 보내고, 또 길 건너 형님에게 보냈다.
2월 중순을 넘어서면서부터다. 멈춤, 하던 확진자가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휴대폰을 열면 예방 수칙 메시지가 2,3개씩 와 있었다.
그 무렵쯤 단톡방 카톡이 또 울었다.
‘제목: 확찐자. 우리 모두 조심해야겠어요. 우리 동네 아줌마가 코로나 바이러스 무서워 아무데도 안 나가고 집안에서 밥만 먹고 운동도 안 하고 일주일 지났는데 확찐자로 편명났다네요. 살이 확 찐 자.’
나는 또 한 번 웃었다. ‘우리 동네 아줌마’ 이야기가 내 이야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 동네 아줌마처럼 코로나가 무서워 집안에 갇혀 살만 찌고 있었을지 모른다.
나는 이 에피소드를 아내에게 그럴 듯 하게 말했다. ‘그 거, 나도 봤어’ 하며 이번엔 아내가 누군가부터 받은 글을 내게 보여줬다.
‘제목: 확찐자 동선 나옴. 살이 확 찐 자 이동경로에요. 식탁 ⟨ 소파 ⟨ 냉장고 ⟨ 소파 ⟨ 식탁 ⟨ 침대 ⟨ 냉장고 ⟨ 침대’
나는 또 웃었다. 보여주는 아내도 우리랑 똑 같다며 웃었다. 똑 같다고 웃었지만 똑 같을 리야 없다. 하지만 이동 동선이 다르다 해도 그 내면에 숨어있는 이동 심리는 서로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아내의 글을 받아 또 내가 아는 몇몇 이들에게 이 웃음을 전했다. 혼자만 웃고 말 일이 아니었다. 이 위중한 시기를 건너느라 낙담해하는 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더구나 우리에게 웃음을 보내준 이의 고마움을 생각해서라도 이웃에게 전하고 싶었다.
우리는 모두 흥부를 사랑한다. 가진 게 없는 흥부는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우리에게 끝임없이 웃음을 안겼다. 밥을 굶으면서도 자식을 열둘이나 낳는 일도 그렇다. 기껏 매품을 팔러가는 일도 우습다. 어찌어찌 쌀 말을 얻어 마당에 솥을 걸고 밥을 하였는데 밥이 산더미 같았다. 이때에 열두 자식을 불러놓고 양껏 밥을 먹이는 장면은 비록 참혹하지만 해학적이다. 고작 제비 다리를 고쳐주고 금은보화를 바라는 흥미진진한 장면에선 웃음이 절로 난다. 조선 시대를 통틀어 흥부전이 없었다면 조선 문학은 또 얼마나 싱거웠을까.
우리에겐 유머를 만들어 한번쯤 웃고 넘어갈 줄 아는 DNA가 있다. 그리고 그 웃음을 나눌 줄도 안다. 그것이 바로 숱한 고비마다 다시 일어서온 우리의 저력이 아닐까 싶다.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수지의 봄 (0) | 2020.03.27 |
---|---|
나도 어서 봄의 행렬에 들어서야겠다 (0) | 2020.03.18 |
우리는 모두 곰스크를 그리워한다 (0) | 2020.03.01 |
지금은 휴관 중입니다 (0) | 2020.02.23 |
시계와 함께 살다 (0) | 2020.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