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보내는 설 연휴
권영상
설 연휴가 코앞이다. 어쩌면 이번 연휴는 고향이 아닌 제주여행 중에 있을 것 같다. 여행을 가자고 강력 주장한 사람은 바로 나다. 제주에서 조용히 설을 맞고 싶었다. 붙박여 살던 자리가 아닌 낯선 곳에서 설을 맞는 일도 새로운 경험이 아닐까 싶다. 지난해에도 고향을 찾는 대신 설 무렵 제주에서 2박 3일을 보냈다.
몇 년 전만해도 명절에 여행을 떠나는 이들을 보면 좀 별나 보였다. 실은 별나 보일 것도 아닌데 괜히 언론이 여행을 떠나는 이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아왔던 게 문제라면 문제다. 조상 모시는 일을 두고 하필이면 너희들만 좋자고 떠나냐는 일종의 계몽적 획일주의 사고와 편견 때문이다. 그런 언론과 함께 오랫동안 살아왔으니 나 또한 설 여행자들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런데 지금 내가 고향을 찾는 대신 그 대열에 자청해 들어섰다.
그 가장 큰 이유가 촌수다. 촌수가 멀어지면 자연히 고향과도 멀어진다. 부모님 계실 때에는 부모님 뵙는 그리움으로 달려갔고, 돌아가신 뒤엔 또 그 분들께서 남기신 생의 여운이 그리워 힘든 줄 모르고 고향을 찾았다. 한 해라도 거르면 불효인 줄 알고 가족을 거느리고 기나긴 귀성 행렬에 뛰어들었다.
귀성 전쟁은 힘들고 고단했지만 부모님과 고향 친지 분들을 뵙는다는 설렘이 고단함보다 더 크고 깊었다. 그러나 부모님 가신지 오래 되면서, 부모님이 남기신 여운조차 희미해지면서 서서히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명절에 대한 설렘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설 명절에 귀성하는 일은 분명 기쁘고 설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누구에겐 그리운 일일지 몰라도 또 누구에겐 번다한 일이고, 누구에겐 즐거운 일일지 몰라도 또 누구에겐 성가시고 귀찮은 일이다.
가끔 만나는 친구들 역시 고향 찾는 일이 점점 힘들어진다고 한다. 그중 가장 큰 고충이 자녀들의 취업 문제이다. 미취업은 당사자의 아픔이기도 하지만 부모에게도 큰 고민이다. 거기에 또 하나, 자녀의 결혼 문제다. 적령기를 넘기고도 결혼이 지체될 때 부모의 마음 또한 말할 수 없이 힘들다. 그런 저런 일들이 집안 어른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 참여하는 일을 불편하게 한다. 이런 일들은 과거엔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요 몇 년 사이 누구도 바라지 않는 아프고 흔한 현실이 되고 말았다.
나는 과감하게 설 연휴 제주 여행을 택했다.
지금도 여행지에서 맞았던 1999년 12월 31일과 2000년 1월 1일은 정말 감격적이었다. 그때 우리는 제주 남원리 넓은 대양이 바라보이는 숙소에 있었다. 숙소 마당 광장엔 숙소를 찾은 이들이 모두 나와 촛불을 들고 새 천년 첫 해 첫 시간을 기다렸고, 시보가 자정을 알리자 우리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축포를 터트리고 어깨를 겯고 노래를 불렀다. 그것도 모자라 숙소 앞 큰엉길을 새벽이 오도록 걷고 또 걸으며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느라 잠을 설쳤다.
올해는 그때와 달리 설 연휴를 제주에서 보내게 됐다. 고향을 찾지 못하는 일에 대한 죄의식은 갖지 않기로 했다. 나름대로 우리 가족에게 맞는, 새로운 설 문화를 만들어볼 계획이다. 마침 해외에 나가있는 딸아이가 잠깐 귀국했다. 가족을 탄탄히 묶는 일에 가족여행만한 것이 또 없을 성싶다. 그것만으로도 벌써 마음이 설렌다. 이번 설 여행이 의미있고 괜찮은 시간이 된다면 해마다 찾아오는 설은 여행지에서 맞고 싶다.
<교차로신문> 2020년 1월 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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