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두 친구

권영상 2019. 8. 31. 20:23

두 친구

권영상





아내가 볼일이 있어 집을 나간지 한 달이 가까워온다. 밥 해 먹는 일에 나름대로 재미를 붙여가고 있다. 하지만 내가 해 먹는 음식이 다양하지 못해 내 밥에 내가 지칠 때가 많다.

일을 보고 집으로 돌아올 때 부쩍 음식점에 눈이 갔다. 입에 맞는 음식을 찾겠다며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지만 발길 닿는 곳은 늘 가던 그 집. 진순대국 가게.

넓은 음식점 안이 텅 비었다. 식사하는 팀은 두 팀뿐.



나는 그들 사이에 있는 빈 탁자 앞에 앉았다. 물 한 컵을 따라 마시는데 내 건너편에서 식사를 하던 두 젊은이가 식사를 마치고 나간다. 그들이 나갔는데도 주인장은 모르는지 식탁 위엔 가스불이 그대로 파랗게 살아있다.

그때쯤 주인분이 몇 가지 반찬과 음식을 내 앞에 내어왔다.

“저기, 가스불 꺼야겠어요.”

나는 밥 좀 해 먹는다고 건너편 탁자를 가리켰다.

“아니, 안 갔어요.”

주인이 손사래를 쳤다.

그 말에 남의 일에 끼어든 내가 좀 부끄러웠다.

그러고 보니 뚜껑 열린 밥그릇도, 반쯤 술잔에 찬 술도 먹다가 잠시 중단한 모습 같았다.



한참 후에 그들이 돌아왔다.

그들은 그들이 앉았던 자리에 서로 마주 하고 앉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의자를 뒤로 젖힌 채 휴대폰을 꺼냈다. 다리를 꼬고 묵묵히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그들은 지금 그들 앞에 앉은 실제의 친구보다 휴대폰 안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일에 빠져 있는 모양새다. 그들은 우연히 마주앉은 남남인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게 상대를 의식하지 않았다.

“안 마실래?”

그들은 남남이 아니었다.

한 사내가 한참만에 몸을 당겨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르다가 상대에게 물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그들이 서로 친구인지, 아니면 내가 여기 들어오기 전까지 손님이 가득차 같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할 수 없이 앉은 남남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사내는 음악을 듣는지 구두발을 까닥대고 있었고, 나와 등을 지고 앉은 사내는 누군가와 통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무심했다. 술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냄비 속 음식을 건져먹고, 벽에 걸려있는 텔레비전을 보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그도 마땅찮으면 의자에 등을 대고 휴대폰을 응시한다.

혼자에 익숙해진 젊은 친구들의 모습이 저럴까. 혼밥과 혼술을 먹고 마시듯 그들은 마주 앉아도 여전히 노는 건 혼자다. 저러다가도 뇨의가 느껴지면 그때는 함께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온다.

나는 저녁 식사를 마쳤다. 그러도록 그들은 그렇게 혼자 놀듯 술인지 저녁인지를 아직 그치지 못하고 있다.



음식값을 치르러 계산대에 가자, 주인장이 나를 보고 웃는다.

“요즘 애들 술 먹는게 보통 저래요.”

그런 모습에 낯설어 하는 나를 느낀다. 먹을 때는 먹는 일에 집중하든지, 친구를 만나면 없는 이야기도 찾아내어 대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 편견이 나를 더욱 낯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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