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소박함을 즐길 줄 아는 사람

권영상 2019. 5. 12. 13:35

소박함을 즐길 줄 아는 사람

권영상




“내려오셨네요!”

생강밭에 물을 주고 있을 때다. 누가 등 뒤에서 인사한다. 뒷집 총각이다. 목소리가 여성스럽고 나긋나긋하다. 

“아, 좀전에 왔어요. 오늘도 헬기 날리고 오시나보네?”

뒷집 젊은이가 어깨에 모형 헬기 가방을 메고 집으로 막 들어서는 중이다.

“원주서 돌아오느라 좀 늦었습니다.”

헬기 날리기가 기분대로 잘 되었는지 꾸벅, 인사까지 하며 자신의 집으로 들어간다.



뒷집 총각은 혼자 산다. 나이를 물어본 적은 없지만 대략 40대 중반. 혼자 산다지만 실은 반디라는 고양이와 둘이 산다.

우리 집 뒤에 오래도록 빈터가 하나 있었는데, 이태 전 그가 거기 살러왔다. 원통 쇠파이프를 박고 그 위에 컨테이너 박스 두 개를 얹었다. 그러고는 나름대로 외장을 한, 뭐랄까. 젊은 사람답게 그럴 듯한 집을 짓고 산다.

젊은이가 시골에 와 뭘 하며 살까 궁금했는데 '만물트럭' 일을 한다. 읍내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시골사람들에게 소소하면서도 꼭 요긴한 것들을 트럭에 싣고가 순회하며 파는 일이다.



“먹고 살 만큼만 합니다.”

그의 말 대로 그는 월, 수, 금 딱 3일 일한다. 주말엔 물론 쉰다. 월 수 금이 국경일이나 임시휴일과 겹치면 물론 그 날도 쉰다. 쉬는 날엔 노쇠한 어머니를 모셔온다. 평생 농사일을 하며 사신 어머니를 위해 텃밭을 만들어 놓았고, 모임이 있을 때면 모형헬기 동호회에 나간다. 가끔 그를 볼 때면 오늘은 아산에, 오늘은 원주에, 오늘은 미사리에, 그런 말을 듣곤 한다. 주로 개활지나 공터, 강변 등이 동호인 활동을 하기 좋은 곳이란다.



저녁이면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뒷집에서 가끔 들려올 때가 있다. 그에겐 노모 말고 누이동생 둘이 있다. 텃밭에 나오시는 그의 노모를 통해 들은 말이다. 노모는 고향 어머니 같이 소박한 분이다. 크게 몸치장을 하신 분은 아니어도 나름대로 연세에 어울리는 인품이 있다. 내가 인사를 드리면 상추나 쪽파 이랑에 앉아계시다가도 인사를 받으시느라 잠시 일어나는 듯 해보이거나 외간 남자인 나와 이야기할 때면 약간 고개를 외로 돌려 조신조신 말씀하시는 모습이 그렇다.



나는 주로 그분의 건강이며 계절 안부를 여쭙는다. 그때에 보면 따님들 집에서 따님들 가족과 함께 사시는 이야기를 가끔 하신다. 그런 가족 내막을 얼핏 알기에 가족들이 온 모양이구나 하다가도 실수를 한다. 이야기 상대는 고양이다. 반디. 그에겐 반디가 가족이다. 퇴근하면 반디의 외로움을 달래주거나 반디와 함께 장난치며 놀아준다. 때로는 잔소리를 들어주는 가족이다.

“일에 매여 사는 게 싫었어요.”



20대에 다닌 회사는 밤 10시가 넘어야 퇴근하는 곳이었고, 그 일에 시달리는 게 싫어 결국 회사를 그만 두고, 만물트럭을 하게 됐단다. 만물트럭은 내가 사장이고 사원인 이동 영업장인 셈이다. 처음엔 그의 사는 법이 좀 낯설어 보였지만 조금씩 이해가 되고 있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만큼 하고, 취미를 즐기며 간소하게 사는 삶. 컨테이너 박스 지붕엔 판타지 영화에나 나옴직한 지붕 없는 나무 서까래를 손수 설치해 멋을 부린다. 그의 삶이 색다르다. 작지만 나름대로 행복이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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