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나무 추억
권영상
아침 산길을 오를 때다.
노란 낙엽 한 장이 발 앞에 떨어져 있다. 한 눈에도 알아볼 수 있는 세모꼴 미루나무 잎이다. 간밤 비에 떨어진 모양이다. 미루나무 잎을 주워들고 위를 쳐다본다. 그 옛날 고향의 개울둑에서 손을 흔들어주던 그 미루나무다.
늘 다니던 길에서 조금만 비켜서도 이런 뜻밖의 나무를 만난다. 나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서서 미루나무를 쳐다본다. 두 아름드리는 족히 되겠다. 높은 우듬지 이파랑이들이 바람에 잘잘잘 소리를 내며 반짝인다. 마치 고향 동무를 만난 듯 반갑다.
미루나무를 못 보고 산 지 오래다. 30 여년 전만해도 내가 살던 서울 변두리엔 미루나무가 제법 있었다. 그 무렵, 나는 휴일이면 딸아이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미루나무 가로수 그늘 길을 따라 말죽거리까지 다녀오곤 했다. 그땐 마을 골목에도 한두 그루쯤 미루나무가 서 있었다. 봄물이 오를 때면 파릇한 어린 가지를 꺾어 호드기를 만들어 불어보기도 하고, 그 잎으로 동네 아이들과 모자를 만들기도 했었다.
그 좋던 미루나무 가로수들도 남부순환로가 만들어지면서 톱날에 다 잘려나가고, 전신주 노릇을 하던 골목 미루나무들도 자동차에 찢기고 긁히다가 끝내는 상처투성이로 베어져 사라지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그 나무들이 사람들의 모진 손에 상처받으며 살아가던 미루나무 최후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앞에는 미루나무 밭이 있었다. 실개천으로 가는 길목이었는데 거기엔 미루나무 수십 그루가 서 있었다. 구름에 닿을 듯이 키가 컸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미루나무 잎 잘잘거리는 소리가 심해 공부를 할 때면 창문을 닫아야 할 정도였다. 가끔 개천으로 고기를 잡으러 갈 때면 우리는 꼭 그 미루나무 밭을 지났다. 유독 미루나무 밭에 들어서면 바람이 심했다. 여자애들은 바람에 머리채를 빼앗길까봐 미루나무 그늘 밑을 발이 재게 달아났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곳을 벗어나면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했다. 애들은 미루나무에 바람을 불러들이는 요정이 산다고 말했다.
읍내로 가는 신작로 양쪽엔 키가 큰 미루나무가 나란히 서 있었다. 신작로 한가운데 서서 보면 신작로 소실점이 가물가물했다. 선생님을 따라 교실 바깥에 나와 풍경화를 그릴 때면 미루나무가 선 신작로를 곧잘 그리곤 했다. 미술시간에 배운 원근법이라는 기법을 표현해내는 데엔 미루나무 신작로만 한 게 없었다.
그 시절, 미루나무가 어린 우리의 눈을 사로잡은 건 그 높이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 고층빌딩이라는 게 없던 시절이었다. 나무로 만들어 세운 전봇대나 마을의 종각 보다야 미루나무의 위용이 훨씬 대단했다. 미루나무 우듬지엔 언제나 까치집이 있었다. 바람이 불 때에 보면 까치들은 그 높은 나무 꼭대기 까마득한 하늘에서 바람을 타고 놀았다. 그러다가도 해질 무렵이면 모두 제 집을 찾아들었다.
‘저렇게 높은 곳에서 어떻게 까치가 살까? 거기 공기는 있을까?’
어린 나는 그게 또 궁금했다. 그러면서 나는 미루나무를 통해 높이라는 것을 천천히 배워나갔다. 가끔 큰 도시에 나갔다온 아이들이 제가 보았다는 높은 건물을 말할 때면 나는 ‘학교 앞 미루나무만큼 높아?’ 하고 물었다. 그 옛날 나는 미루나무의 높이를 부러워했다.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미루나무를 쳐다본다. 나무는 그 옛날의 나무인데 나는 이미 그 옛날의 순진했던 내가 아니다. 세상의 높고 낮은 것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린 때 묻은 내가 되었다. 교실 창에 턱을 괴고 미루나무를 바라보며 높이를 배워가던 순정한 내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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