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래 없이 50대를 살았다
권 영 상
일전에 모 언론사에서 개인정보를 수정한다는 메일이 왔다. 2008년 이후 변화된 신상 정보를 요구하면서 그때에 적어보냈던 기록도 함께 보내왔다. 4년 전에 내가 적었던 정보를 흥미있게 읽어나갔다. 공개해도 될만한 것들을 끄집어 내 본다.
나는 남자다.
신장 181센티미터, 몸무게 81킬로그램, 혈액형 A형, 취미 여행하기, 특기 술 먹기가 적혀 있다. 다른 건 다 변해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내가 남자라는 거다. 이 나이 먹도록 나는 남자다.
그러나 그 동안 변한 게 있다. 취미다. ‘유선텔레비전 보기’로 바뀌었다. 그간에 텔레비전 채널이 늘었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편리할 때 찾아보는 시청 방식도 생겼다.
취미라고 적은 해외 여행도 변했다. 다 한 때다. 한 때 즐겨 나갔지만 딸아이의 학비가 비싸지면서 그 일도 어려워졌다. ‘술 먹기’라던 특기도 달라졌다. 이렇다할 특기가 없는 내가 되었다.
기억에 남는 영화엔 “아웃 오브 아프리카”. “파 앤 어웨이”. “미션”, “흐르는 강물처럼”, “쇼생크 탈출”. “파워 오브 원”, “와호장룡” 등 꽤 많은 것들이 적혀 있다. 나는 그 끝에다가 “태양의 제국”,“화양연화”를 다시 적어 넣었다.
주량을 묻는 질문에 ‘2홉들이 소주 4병’이 적혀 있다.
그 시절 나는 한 자리에서 그 정도의 술을 마시며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소주 4병’을 지우고 그 자리에 ‘탁주 2병’을 적었다. 요 3년 전부터 우리 막걸리 맛에 내 몸이 길들여졌다. 소주보다는 내 몸이, 부드러운 막걸리를 원했다. 취하는 게 두려워졌다. 흡연 칸에 적힌 ‘2일에 한 갑’도 지우고 ‘1주일에 한 갑’으로 바꾸어 적었다. 흡연을 범죄 취급하는 시대다. 나라고 뻗댈 수 없다. 요즘 심각하게 금연을 고민중이다.
탁구와 등산이라고 적힌 ‘좋아하는 운동’도 바뀌었다.
직장에서 만든 탁구장이 강당과 함께 학생 급식실로 바뀌었다. 50대 후반 좌골신경통이 찾아온 바람에 등산도 뜸해졌다. 나는 그 자리에 ‘걷기’를 적었다. ‘기억에 남는 책’에는 ‘간디 자서전’이 적혀 있다. 4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텐보로경이 만든 영화 ‘간디’를 잊지 못했다. 인도 여행을 위해 인도사, 인도불교, 우파니사드, 힌두교에 관한 서적을 탐독했었다. 그리고 인도에 갔을 땐 간디의 고향과 델리에 있는 간디의 묘소도 찾았다. 그 무렵에 내가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은 함석헌옹이 번역한 ‘간디 자서전’이었다. 그러나 그 후 나는 독일의 민중미술가 ‘캐테 콜비츠’에 빠져 있다.
선호하는 음식도 변했다.
‘생선회’라 적힌 자리에 나는 ‘보신탕’을 적어넣었다. 보신탕은 20년 전에도 즐겨 먹었고, 2008년대에도 즐겨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 적은 것은 사회적인 눈 때문인 듯 싶다. 그걸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쓸 자신이 내게 없었던 게 분명하다. 솔직하지 못했다. 지금 내가 ‘보신탕’이라고 쓰는 건 솔직한 측면도 있지만 내가 많이 뻔뻔해졌다는 뜻도 되겠다.
4년 전, 나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있었다.
산다는 핑계로 4년 전이 아니라 1년 전의 나도 돌아다볼 겨를이 없다. 시간없다, 시간없다, 시간타령이나 했다. 그런데 이 일로 병원의 전문의가 내 건강상태를 체크하듯 달라진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본다.
마지막 질문이 있다.
‘즐겨 부르는 애창곡’이다. 조용필의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가 적혀있다. 나는 그 노래를 지웠다. 그리고 그 자리에 적을 애창곡을 생각했다. 아쉽게도 적을 노래가 없다. 그러고 보니 이렇다하게 부를 노래도 없이 외롭고 힘들었던 지난 4년을 살았다. 나의 40대 무렵 나는 ‘그대 그리고 나’, ‘킬리만자로의 눈’, ‘솔개’, ‘울릉도’,‘ 인생은 미완성’, ‘우리는’, ‘담뱃가게 아저씨’, ‘무기여 잘 있거라.’등 즐겨 부르던 노래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노래 없이 일만 하면서 50대를 살아왔다. 암만 바빠도 이미 닥쳐온 60대엔 좋은 노래 몇 곡으로 나를 위안하며 젊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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