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물
김달진
숲 속의 샘물을 들여다본다.
물속에 하늘이 있고 흰 구름이 떠가고 바람이 지나가고
조그마한 샘물은 바다같이 넓어진다.
나는 조그마한 샘물을 들여다보며
동그란 지구의 섬 위에 앉았다.
날마다 샘을 보러 집에서 가까운 동네 산에 갑니다. 거기엔 나만의 샘이 있지요. 산골짜기를 따라 조조조 흐르는 물길에 손으로 파놓은 접시만한 웅덩이 물을 나는 샘이라 부르지요. 가늘게 흐르는 골짝물이라 하루 이틀 거르면 샘은 메워지기 일쑤입니다.
샘에 당도하면 나는 맨 먼저 샘을 칩니다. 낙엽을 걷어내고 메워진 흙은 손으로 긁어 올립니다. 그러느라 샘물은 흙탕물이 되지만 잠시만 기다리면 이내 맑은 물로 바뀝니다. 나는 흙탕물이 맑은 물로 바뀌는 그 잠시만의 시간을 기다리는 게 좋습니다.
그 기다림 뒤에 샘물을 들여다보면 거기엔 맑은 하늘이 와 있습니다. 하얀 구름이, 하얀 낮달이 들어와 있지요. 비록 접시만한 샘이지만 거기엔 또 하나의 큰 우주가 있습니다. 그 우주를 지켜보는 내 얼굴도 있지요. 흙탕물이 맑은 물로 바뀌는, 그 잠시의 시간을 기다려줄 줄 아는 나입니다. 나는 그 나에게 안녕, 하고 인사를 합니다. 그러면 물속의 나도 안녕, 해주지요. 나는 샘물 속의 나와 이야기하다가 일어나 산을 내려옵니다.
산을 내려오지만 나는 내일 아침 또 이 산에 돌아올 겁니다. 유리창을 말갛게 닦아주듯 샘을 깨끗하게 쳐야합니다. 이 산 속에 숨겨둔 나만의 하늘과 구름과 낮달과 맑은 나를 간직하고 싶거든요.
(소년 2017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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