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료하고 심심할 때 권영상 되게 할 일 없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렇다. 무료하다. 사는 의미가 좀 묘해진다. 이런 날이 길어지면 술을 찾게 되고, 술이 길어지면 우울해진다는 말이 남 말 같지 않다. 살다가 이런 변고도 다 겪는다. 무씨 넣은 밭이 가물어 무씨 안 날까봐 엊그제다, 안성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소낙비에 무씨는 잘 났다. 그 주된 걱정이 해결되어 그런가 보다. 심심해도 혼자 잘 놀았는데 도무지 의욕이 없다. 비는 하루 종일 한 줄금씩 한 줄금씩 내려 무밭에 물 줄 일을 제가 알아서 다 해버린다. 그래서 나는 무료하고 심심하고 갑갑하다. 심심한 내 눈에 방바닥을 기는 개미가 보인다. 머리카락 한 올이 보이고, 식탁 꽃병에 꽂아놓은 꽃에서 파란 벌레 똥이 톡톡 떨어진다. 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