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그림 권영상 창고에서 꺼낸 등산배낭을 푼다. 그 안에 40여 년 전에 쓰던 내 그림도구들이 있다. 나는 폐광 속에 묻힌 불빛을 꺼내듯 내 오래된 청년을 꺼냈다. 이젤과 화구통과 20호짜리 캔버스 두 개가 나왔다. 꾹 닫힌 화구통을 열었다. 테레핀 오일 냄새와 함께 방금 짜다가 둔 것 같은 유화물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 오랜 청년의 한 모퉁이 편린이다. 여기 앉아 그림을 그리면 좋겠구나! 다락방이 있는 집을 구하면서 나는 직장생활에 지친 나를 그렇게 달랬다. 그러나 그 후 10년을 흘려보내면서 나는 한 번도 캔버스 앞에 앉지 못했다. 시골은 시골대로 또 바빴다. 어디에 가 머물든 나는 바빴고, 그림은 늘 뒷전으로 밀려났다. 캔버스 앞에 앉는 일은 그림을 업으로 하는 화가가 아니면 실은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