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고향 할머니 가게

권영상 2016. 9. 13. 15:35

고향 할머니 가게

권영상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거나 아마 그 이전 쯤 일이다. 명절이 지나면 내게도 가끔 돈이란 게 생겼다. 주로 먼데 출가를 하신 누님이 오실 때면 막내인 내게 돈을 쥐어주고 가셨다. 어린 내게도 돈이란 게 필요했다. 캐러멜이라든가 사탕도 사먹고 싶고, 누가 5장짜리 색종이 묶음을 가진 걸 보면 나도 사고 싶었다.



주머니에 캐러멜 사먹을 만 한 돈이 생기면 나는 가게를 향했다. 가게는 집들이 많은 윗마을에 있었다. 거기엔 마을 일을 보는 동회, 그 건너에 술집, 방앗간, 자전거포, 옷 수선가게 등이 있었다. 내가 찾아가는 동부네 가게는 동회 앞 술집과 음식점 사이에 있었다. 동부는 쉰은 됨직한 그 가게 아저씨 이름이다. 그런데도 애들이나 어른들이나 동부네, 동부네! 했다. 그 집엔 아들이 둘 있는데 둘 다 서울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있어 돈을 많이 벌어야한다고 했다.



“동부아저씨!”

동부아저씨네 가게에 들어설 때면 다들 그렇게 부르며 문을 열었다. 일종의 노크인 셈이었다. 그렇게 들어서면 어떻게 그 작은 목소리를 알아들었는지 얼굴이 검으스레한 동부 아저씨가 방문을 열고 “뭐?” 하며 나왔다. 진열대에 있는 캐러멜을 집으면 아저씨는 “300원!” 그러며 내가 내민 동전을 받아 돈 통에 짤랑 던졌다. 어린 내 귀에도 그 동전 떨어뜨리는 소리가 슬펐다. 이런 애들 동전 받아 언제 큰돈 버나, 그렇게 들렸다.

아저씨는 내가 가게를 나가기도 전에 “문 꼭 닫고 가!” 그러고는 뭐가 바쁜지 방으로 쏙 들어가 문을 닫았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동부 아저씨는 나를 배웅해 줄 수 없을 만큼 바쁜 것 같았다. 캐러멜을 사들고 가게를 나가다가도 가끔은 사탕 하나 더 사고 싶은 마음이 불현 생길 때가 있다. 그런데 동부아저씨는 그런 마음을 몰라주었다.



아마 그때쯤이었을 거다.

윗마을 지리를 조금씩 알아가던 내게 마을 이쪽 좀 외진 곳에 가게가 하나 또 있다는 걸 알았다. 할머니 가게였다. 내가 언젠가 어머니 심부름으로 무명실 한 타래를 사러갔을 때 그분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부엌에서 나왔다. 얼굴에 주름이 많고, 머리칼은 반쯤 하앴고 머리는 어머니처럼 은비녀 머리였다.내가 어머니 심부름을 이야기하자, 할머니는 그걸 내게 찾아주시고는 “누구집 도련님이신고?” 하고 물었다. 내가 우리 집의 택호를 대자, “아, 그 말로만 듣던 오동나무댁 막내도련님이시구먼.” 그러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 후부터 할머니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가게 일을 보셨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며 “할머니, 캐러멜 주세요.” 하면 할머니 목소리가 엉뚱하게도 뒤란에서 났다. “오동나무댁 도련님이시구먼. 300원!” 그러시면 나는 진열대에 놓인 캐러멜을 한 갑 집어 들고 300원을 동전 통에 넣고는 가게를 나왔다. 할머니 목소리는 부엌이 아니면 마당가 우물 뒤에서도 났다. ‘오동나무댁 막내도련님이시구먼. 200원.’ 그러면 나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 몇 번이고 십 원짜리 동전 스무 개를 어김없이 세어서 돈 통에 넣었다. 어린 나이에도 나는 그 일이 재미있었다. 물건을 사는 사람은 나인데 내가 마치 그 가게 주인이 된 듯 한 느낌이었다.



그때로부터 나는 주로 할머니가게를 찾았다. 갈 때마다 내가 원하는 물건을 집고, 물건 값에 맞는 돈을 세어 그 댁 둥근 플라스틱 돈 통에 넣어드렸다. 지금으로 말하면 시험감독 없이 양심껏 시험을 보는 그런 형국이었다.

결국 동부아저씨네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가게를 술집으로 바꾸었고, 할머니가게는 그 후에도 오래, 그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하셨다.

가끔 고향에 갈 때면 그때 그 할머니가게 옆을 지나곤 한다.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그 집은 그대로 있다. 오늘따라 그때 그 할머니 목소리가 그립다.

“오오, 오동나무댁 막내도련님이시구먼.” 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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