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무 다섯 단
권 영 상
강릉으로 갈 때엔 대관령보다 진고개 길을 택한다. 대관령 아흔아홉 구비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그런 탓에 서울로 돌아올 때에도 나는 굽이굽이 진고개길로 돌아온다.
후둑거리는 비를 보고 강릉에서 출발했는데 차가 진고개 어귀에 다다르자 안개로 변했다. 굽잇길을 오를수록 안개가 가득가득 차올랐다. 앞서 가는 차의 비상등이 보이지 않을 만큼 시야가 막혔다. 창을 열면 안개가 소금물처럼 뽀얗게 찬다. 더는 갈 수 없어 간신히 진고개 휴게소에 찾아들었다.
금방 걷힐 안개가 아니었다. 나는 아무 할 일도 없으면서 점퍼를 꺼내입고 안개 속을 나섰다. 떼어놓는 발끝조차 보이지 않는다. 공중전화대 곁을 간신히 돌아설 때였다. 두어 사람 움직이는 모습이 안개 속에서 어룽거렸다. 쌓아놓은 달랑무를 사려고 무단을 들추고 있었다. 한 단에 천 원이라는 거였다. 천 원이라는 말에 괜히 마음이 움직였다. 나는 달랑무 단을 팔고 있는 50대 후반의 키가 작은 남자 곁으로 다가갔다.
“나도 두 단만 주세요.”
천원이라는 말에 무심코 말했다.
머리에 들꽃처럼 하얀 안개를 인 남자가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집에다 전환 했수?”
괜히 사들고 가 야단이나 맞지 말라는 투였다.
“뭐 그만한 일로 전화까지…….”
두 단이래 봐야 2천원인데 그런 일로다 전화까지 하냐는 투로 대꾸했다.
“그럼, 안 팝니다.”
짙은 안개에 가려 자세히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남자는 안개를 훅 뱉어내며 뚝 잘라 말했다. 듣고 나니 기분이 언짢았다. 장사가 잘 돼 배부른 모양이군, 그러며 얼핏 쌓아놓은 달랑무더미를 봤다. 이제 막 밭에서 캐내온 것 같이 무청도 싱싱하고 무도 알맞게 통통했다. 그렇지만 달랑무를 사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신 뒤였다.
나는 그길로 휴게소 매점에 들러 커피를 한잔 뽑아 들었다. 내 눈앞에 있던 달랑무 파는 남자도 달랑무도 안개에 묻혀 보이지 않는다. 800미터 오대산 줄기에 자리 잡은 진고개는 늘 안개에 묻혀 산다. 지난해에도 휴게소 근처에서 안개를 만나 차를 세우고 안개가 걷힐 때까지 기다린 적이 있다. 안개가 걷히면서 뽀얀 안개 속에서 드러나던 요란한 단풍빛깔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생각을 하며 집에다 전화를 넣었다. 안개 사정 이야기를 하다 나도 모르게 달랑무 이야기를 꺼냈다. 아내의 말인즉 고랭지에서 큰 달랑무일수록 김치 맛이 향기롭다는 거다. 길 건너 언니네도 줄 거라며 아주 다섯 단을 사오라 했다. 달랑무 곁에 그냥 무도 있댔더니 무 세 개도 함께 사오란다.
계면쩍기는 했지만 전화를 끊고 안개 속 달랑무더미로 갔다.
“기분 내킨다고 툭 사시지 말라는 말이었수.”
남자가 안개를 헤치며 다가간 나를 금방 알아봤다.
“전화를 했습니다.”
나는 말을 잘 듣는 어수룩한 아이처럼 그렇게 말하고는 달랑무 다섯 단과 무 세 개를 청했다. 남자는 목장갑을 낀 손으로 달랑무 단 속에서도 좋게 보이는 다섯 단을 골라냈다. 그리고는 무청을 툭툭 다듬어낸 세 개의 무와 함께 검정 비닐 봉투에 넣어 내놓았다.
“이렇게 가져가셔야 좋은 말 듣지요.”
8천원을 건네는 내게 남자가 씩 웃어보였다. 안개 묻은 눈썹이 너무도 하얘서 마치 가정불화 없이 인생을 잘 사신 분 같아 보였다.
“고맙습니다. 많이 파세요.”
인사를 하고는 한 자루나 되는 무를 차에다 실었다. 트렁크가 그득했다. 달랑무 단을 보고 좋아할 아내의 얼굴이 떠올라 내 마음도 그득해졌다. 핸들을 잡기 전에 그분이 있던 공중전화대 쪽을 돌아다 봤다. 조금씩 풀리는 안개 속에서 그분이 내 쪽을 보고 섰다. 나를 보는지 어쩐지는 몰라도 나는 창밖으로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휴게소를 떠났다. 고개를 내려올수록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이왕 칭찬받을 거면 몇 단 더 살 걸…….’
괜히 또 분수에 넘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으로 내려오는데 무슨 무슨 부녀회라는 현수막을 쳐놓고 무를 파는 데가 정말이지 나타나 주었다. 나는 얼른 차를 세우고 달랑무 단 곁으로 다가갔다.
“세 단에 이천 원입니다.”
돈만 주면 금방이라도 팔 것 같았다.
휴게소보다 값이 더 싸긴 하지만 나는 돌아서고 말았다. 사는 사람의 입장을 배려해 주는, 휴게소에서 만났던 중년 남자의 고마움을 금방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권영상 산문집 <뒤에 서는 기쁨>의 글을 <좋은 생각> 2016년 8월호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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