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티즈의 생존을 위한 울음
권영상
밤골에 내려오자, 길건너 파란 지붕 할머니 댁에서 강아지가 울었다. 강아지를 분양받으신 모양이구나 했다. 요기 벽장골에서 연세가 제일 많은 분이 파란 지붕집 할머니다. 연세에 비해 부지런하시다. 이른 아침에 나가 보면 벌써 호미를 들고 밭김을 매신다.
우리가 사는 벽장골 가구수는 할머니댁을 중심으로 빙 둘러 일곱 집이다. 남의 집 사정을 그야말로 다 안다.
저녁을 먹고, 별을 보러 나왔는데 낮에 한번 울던 그 강아지가 다시 울었다. 햇강아지니까 밤이 무서워 저럴 테지 했다. 에미 품에 살다 혼자 떨어져 나오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외롭고 서러울 테다.
이번엔 울음소리가 길었다. 들어볼수록 밤이 무서워 칭얼대는 울음은 아니었다. 절박함을 호소하는 울음이었다. 강아지는 자정이 넘도록 할머니네 마당, 강아지집에서 그렇게 울었다.
오늘은 외롭겠지만 내일이면 너도 외로움을 이겨낼 거라며 속으로 그를 위로했다. 예전에는 강아지를 얻어오면 부엌 따스한 부뚜막에다 잠을 재웠다. 그런 밤에도 강아지는 꿈 속에서 끙끙 어미를 찾으며 울었다. 그러나 어미 곁을 일찍 떠나야하는 강아지들은 숙명처럼 금방 외로움과 친숙해졌다.
새벽에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3시. 강아지는 계속 울고 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목소리가 이제는 쇠어버렸다. 운다기 보다 할딱대고 있었다. 그 할딱대는 숨소리가 나를 깨운 듯했다.
건너편 할머니는 저 울음을 못 듣고 주무시는 모양이다. 할머니는 귀가 좀 어둡다. 내가 이쪽에서 집앞을 지나가시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네면 대답 대신 “내가 귀가 좀 안 좋아서.” 그렇게 말하시고 마는 분이다. 그러니 못 듣고 주무실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책을 뒤적이다 다시 잠 들어 아침에 깨었다. 이제는 안 울겠지, 했는데 여전히 울었다. 목청은 오히려 새벽보다 좀 더 크고 거칠어졌다.
마당에 나가니 옆집 김형이 잠을 못 잤다며 강아지 얘기를 했다.
“마티즈라나 뭐 말티즈라나 하는 애완견이에요. 딸이 키우던 걸 맡기고 갔다네요. 그걸 마당 개집에다 매어놓았으니.”
그러고 보니 시골에서 키우는 누렝이 강아지가 아니고 성숙한 애완견이었다.
애완견 말티즈란 말을 듣고부터 강아지 울음소리가 내 귀에 다르게 들렸다. 나를 사랑해줘요. 나를 안아줘요. 나를 이 불결한 개집에서 구해주세요. 어서 빨리 청결한 방안 침대로 데려가주세요. 아,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나요. 나를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나는 당신의 사랑을 먹고 사는 강아지랍니다. 아, 내 말을 좀 들어주세요. 왜 내 말에 끄덕 않나요. 어서 나를 당신 가슴에 안고 얼른 안락한 방안으로 데려가 주어요.
읍소하듯 아니, 호소하듯 그렇게 우는 걸로 들렸다.
오늘도 강아지는 하루내내 울었다. 십분도 쉬지 않았다.
드디어 마을사람들이 참지 못했다. 아! 아! 아이들이 먼저 비명을 질렀다. 어른들은 할머니댁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최대한 감정을 누그려 가지고 에둘러 말했다. 어디 아픈가 보네요, 식사가 마음에 안 들었을까요? 따님이 자식처럼 잘 키우셨나 보네요. 기껏 그렇게 말했지, 강아지 울음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말은 모두 삼갔다.
할머니는 마을사람들 심정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그렇다고 개를 방안에 들여 키울 수 없잖아.” 그 말만 하셨다.
옛날분인 할머니께서 그리 생각하시는 건 어쩜 당연하다.
돌아서며 우리는 한숨을 쉬었다. 그냥 누렝이 강아지라면 하루 이틀 저러다가 말겠지만 상대가 애완견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저렇게 저를 안아달라고 울어대지만 바쁜 할머니가 강아지를 안고 사신다? 그건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막막했다. 말티즈는 더욱 나은 환경을 위해 생존의 비명을 지르지만 그때문에 우리가 고통받고 있다는 걸 알리 없다.할머니가 움직이시기 전에는 하루 24시간 내내 강아지 비명과 마주해야 한다.
앙칼지게 쉬지 않고 울어댈 때엔 달려가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충동이 내안에서 일어난다. 그때마다 나는 내 안에 숨어있는 충동성을 다독인다. 점점 날은 어두워지는데 밤새도록 우는 울음소리를 또 어떻게 들어야할지 말티즈를 맡기고간 할머니의 딸이 야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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