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어린 생명 하나 내 곁으로 오다

권영상 2015. 7. 17. 10:10

어린 생명 하나 내 곁으로 오다

권영상

 

 

 

 

“아빠, 오늘 호금조가 부화할지 몰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데 딸아이가 귀뜸했다. 나는 그 말을 건성으로 들었다. 호금조가 포란을 하긴 하지만 부화시킬 능력이 없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오늘이 분만 예정일이라고?” 나는 농을 던지고 집을 나섰다.

 

 

 

호금조가 조롱 안 둥지에 산란하기 시작한 건 한 보름 전이다. 자식을 키우느라 몇몇 애완조를 길러봤지만 산란은 처음이었다. 처음 딸아이가 알을 보러 오라고 할 때 우리는 모두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아내가 둥지 속을 들여다보고 ‘다섯 개’ 하며 손가락을 펴 보이던 기억이 있다. 그 말이 믿기지 않아 나도 허리를 잔뜩 숙여 둥지 안을 들여다 봤다. 맑은 아이보리 빛깔의 알이 다섯 개. 소복하니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포란과 부화를 시키려면 가모인 십자매를 사야해.”

이 놀라운 사건을 두고 딸아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나는 대뜸 그 말을 막았다. 일파만파 일이 점점 커질 게 뻔했다. 베란다가 좁아 불만이 많은 아내도 대뜸 내 편을 들었다. 호금조 조롱에 십자매 조롱까지, 그건 안 될 말이었다. 결국 호금조에게 제가 낳은 알을 맡기기로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기존의 정보들과 달리 호금조는 수컷과 암컷이 번갈아 가며 포란을 했고, 2주일쯤 지난 오늘, 부화 예정일이 됐다.

 

 

 

볼일을 마치고, 나는 오후 늦게 귀가하기 위해 전철에 올랐다. 그때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왔다. <아빠, 첫 아기호금조가 태어났어. 축하해줘.> 딸아이가 보낸 문자였다. 미심쩍어 했는데 놀라웠다. 부화를 못 시킨다는 호금조가 첫새끼를 깨워냈다는 일이 신기했다. 애완조 안내책자대로라면 새끼를 부화시킬 수 없어야 정상인 일이 이 시각에 일어났다.

어떻든 가슴이 뛰었다. 조고만 생명 하나 태어났다는 기별만으로도 나는 설레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큼직한 사건에 비하면 사소한 듯한 그 일이 내 마음을 달뜨게 했다.

 

 

 

집에 들어서자, 딸아이는 휴대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부터 보여주었다. 쬐끄만 빨가숭이 녀석이었다. 어미 호금조가 잠시 자리를 비킨 사이 나도 둥지 안을 들여다 봤다. 꼬물대는 새끼 호금조가 또렷하게 보였다. 나는 한참동안 눈을 떼지 못한 채 그 어린 것을 바라보다가 거실로 들어서며 탁 이마를 쳤다.

“그래! 토정비결, 토정비결에 있었어!”

다들 내 말에 놀랐다.

“7월에, 가정에 식구가 늘어나는 경사가 있다 했거든.”

문득 스치듯 그 생각이 났다. 정초에 인터넷에서 무료 토정비결을 보고나서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아니, 식구가 늘어나다니! 딸아이는 미혼이고, 내 나이는 이미 때를 지났는데.......

 

 

 

“그러니까 아빠 운세를 맞추려고 태어날 수 없는 호금조 새끼가 태어난 게 아닐까.”

딸아이가 조롱 덮개를 씌워주고 나오며 정색을 했다. 정말이지 이 우주 속에 놓인 나의 운명을 위해 오늘 이 늦은 오후의 어둠길을 밟아 어린 생명 하나 내 곁에 와 식구가 되었다. 그는 예쁜 노래와 허공을 나는 날개와 반짝이는 눈을 가졌다. 우리가 일상에 젖어 피곤할 때 우리의 육신과 영혼을 맑혀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