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대지가 가뭄에 떤다

권영상 2015. 7. 11. 11:45

대지가 가뭄에 떤다

권영상

 

 

 

내일모레 비 온다는 소식이 있다. 그냥 비가 아니라 장마가 북상하고 있단다. 장마라는 말이 요즘처럼 반가울 수가 없다. 진저리 치도록 비가 내리고, 논둑을 무너뜨려 한창 크는 모를 황토로 뒤덮는 그 장마가 좀 얼른 왔으면 싶다. 그러나 그 장맛비도 하루 오고 만단다. 남해안 지방에나 오고 중부지방은 병아리 눈물 정도나 보여주고 갈 모양이다.

 

 

 

가뭄이 자심하다. 작년만 해도 이토록 가물지 않았다. 텃밭에 작물을 심어 놓으면 때맞추어 비가 와주었다. 뜰에 프렌치 메리골드 모종을 했을 때도 처음에 몇 번 물을 주고, 그 이후로는 물을 준 기억이 없을 정도였다. 그냥 저 혼자 잘 자라주었다. 지난해엔 마늘밭의 김만도 대여섯 차례나 맸다. 몇 이랑 안 되는 감자밭이지만 감자밭도 김을 매고 나면 풀이 징그럽게 났다. 그런데 올해엔 김이라 해봐야 한두 번 맨 게 기억의 전부다. 비가 오지 않기 때문이다. 비가 오지 않으니 풀조차 나지 않는다. 봄부터 두어 달에 한 두 차례, 비도 간단한 형식적인 비였다.

 

 

 

올 5월 초다. 텃밭 모서리에 고구마 네 이랑을 심었다. 그 후 모종만도 서너 차례 다시 했다. 첫 모종은 청계산 주말농장 근처 가게에서 사다 심은 쉰 포기였다. 근데 그게 열흘을 기다리는 동안 서너 포기를 남기고 다 말라죽었다. 더 이상 모종을 살 수 없자, 슈퍼에서 고구마 다섯 개를 사 집에서 순을 냈다. 그걸 안성에 데려와 심을 만한 놈으로 기르는데 한달이 걸렸다. 비는 여전히 오지 않았다. 아침 저녁으로 모종에 물을 주었지만 서울에 올라와 볼일을 보고 내려가면 서너 포기씩 자꾸 말라죽었다.

 

 

 

고구마 모종만이 아니다. 마늘은 마늘대로, 호박은 호박대로 가뭄에 시달렸다. 애호박도 6월 한철 몇 개 보여주고는 늦가을처럼 호박잎이 말라버렸다. 토마토는 더욱 처절하다. 언젠가 집을 대엿새 비우고 와 보니 바짝 마른 땅에서 어린 토마토 순이 주렁주렁 토마토를 매달고 있었다. 생존의 위협을 느낀 모양이었다.

 

 

 

 

가끔씩 내려와 가뭄에 시달리는 그들을 보면 안쓰럽다. 그게 우리만인가. 요 위 벽장골의 가뭄은 더 심하다. 논밭이 다 말랐다. 고추밭의 고추는 시들고, 목화밭의 목화는 크다가 말았다. 무엇보다 논에서 한창 커야할 모다. 모가 커야할 논이 쩍쩍 갈라져 있다. 4월부터 관정의 물을 끌어올려 간신히 모내기를 했는데 이제는 퍼 올릴 지하수조차 없는 모양이다.

“왜 이렇게 비가 안 오지요?”

고구마밭에 물을 주던 옆집 아주머니가 한숨 섞인 푸념을 했다.

“이젠 물 주기도 진력나네요.”

아주머니가 물 호스를 쥐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오늘 저녁에 온다는 장맛비를 벌써부터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그분 곁을 떠나오며 혼자 생각했다. 정말 왜 이토록 비가 안 오는 걸까. 하나라도 더 가져보겠다는 내 욕심 때문일까. 쓸데없이 너무 많이 먹고, 너무 편한 삶을 자꾸 쫓아가느라 세상의 어느 한쪽이 말라가는 건 아닐까. 나까지 안성에 내려와 농사를 짓겠다며 땅을 파헤치는 욕심 때문은 아닐까.

유기농 비료를 주고 그 빈 비료부대를 마을앞 수거장소에 버린 게 마음에 걸린다. 쓰레기 봉투에 넣으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쓰레기를 만든 것도 마음에 걸린다. 하루종일 냉장고를 돌리고, 하루종일 보온밥솥을 쓰는 나의 무심함도 마음에 걸린다. 혹 그런 것들 때문에 비가 안 오는 건 아닐까. 가뭄에 대한 대답은 내 가까이에 이미 있는데, 온난화니 엘레뇨니 하며 먼데서 답을 찾으려 회피하는 내가 마음에 걸린다.

 

 

 

아직 기상예보로 보아, 중부지방을 적셔줄 비 소식은 없다. 오래된 가뭄은 이미 7월의 중순을 향하고 있다. 제대로 크지도 못한 채 생존의 두려움을 느낀 백일홍이 꽃을 피운다. 목마른 대지가 저렇게 가뭄에 떤다.

비는 언제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