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인생버스

권영상 2015. 1. 19. 11:52

인생버스

권영상

 

 

 

 

 

시내에서 일을 보고 집으로 오는 전철을 탔다. 남부터미널역에서 내릴 때가 오후 2시.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엔 뭔가 허전하고 아쉬운 이른 오후.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5번 출구를 향해 한 칸 한 칸 계단을 오른다. 어딘가 멀리서 누가 나를 부르는 것 같다. 그 목소리를 향해 내 몸이 바람에 불려가듯 이끌려 간다.

 

 

 

계단을 다 올라서자, 내 눈 앞에 남부버스터미널이 불쑥 나타난다. 나는 또 여러 개의 계단을 올라 버스터미널 대합실에 들어선다. 긴 버스여행을 마치고 지친 모습으로 들어서는 사람들을 만난다. 버스에서 내린 여행자들은 지금 피로하겠지만 그런 그들의 피로에 젖은 모습은 오히려 나를 자극한다. 멀리, 아주 멀리로 금방이라도 떠나고 싶은 그리움 같은 욕망을 솟구치게 한다. 그들 중에는 일거리를 잔뜩 싣고 오는 이들도 있을 테고, 먼 곳에서 이미 일을 다 끝내고 돌아오는 이들도 있을 테다. 어쨌거나 그들의 여행 가방이 바닥을 울리며 달달달 굴러가는 바퀴소리는 나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버스 출발 시간을 맞추느라 가벼운 면음식을 시켜놓고 후후 불며 속을 채우는 모습들이다. 그것은 장도를 떠나려는 청춘의 모습 같아 좋다. 이 식사가 끝나면 꽤 오래 걸리는 노정에 들어설 것이다. 그들이 가는 길엔 안식만 있는 것이 아니다. 먼 길을 가는 불안과 외로움과 두려움과 그리고 알 수 없는 흥분과 기대감이 뒤섞여 마음은 지금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 혼란을 진정시키기 위해 속을 든든히 채우는 모습에 사뭇 긴장감이 돈다. 그것은 청년이 인생이라는 먼 항해를 떠날 때의 비장함과 다르지 않다.

 

 

 

나는 가끔 명절이거나 연휴 시즌이면 우정 대형 고속버스터미널에 들르곤 한다. 출발과 도착이 만들어내는 설렘과 붐빔의 분위기 속에 뛰어들고 싶기 때문이다.

대합실에 들어서면 나는 마치 먼 길을 가는 여행자처럼 매표창구 위에 붙여진 버스 출발시각과 도착지를 쭈욱 훑는다. 강릉, 고성, 통영, 서산, 보령, 장수, 구례, 삼례, 보성, 강진........

쉬지않고 출발하거나 도착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는 일은 즐겁다. 시외버스터미널 만큼 만남과 작별을, 출발과 귀환을, 설렘과 붐빔과 흥분감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곳도 드물다.

 

 

 

나는 마치 어디론가로 곧 떠날 것처럼 책 판매대 앞에 서서 꽂혀있는 책들을 본다. 내 눈에 들어오는 책들, 그 수많은 책들 중에서도 내 눈에 띄는 것들. 꿈해몽, 사주팔자, 주간잡지, 실화, 사건....... 그 중에서 야한 책 한 권을 사고 싶다. 버스가 달려가는 내내 아무 생각 없이 그런 글을 읽고 싶다. 그러는 내 머릿속에 한 순간의 일탈이 있다. 똑같은 삶을 되풀이하는, 답답하고도 뭔가 풀리지 않는 현실을 뛰쳐나가고 싶은 일탈, 그런 발칙한 일탈의 심리가 내 안에 있음을 본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떠날 수 있는 나이에 와 있다. 그런데도 선뜻 버스에 오르지 못한다. 이 손톱만한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잠시 여기를 뜬다고 해 내게 일어날 특별한 일은 없다. 내가 사는 이 도시에도, 내 가족에게도 특별히 일어날 일이란 없다. 나는 그런 존재에 불과하다.

어쩌면 남편인 내가 잠시, 아빠인 내가 잠시 부재하는 시간을 가족들은 바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 어딘가로의 여행을 감행하지 못한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일없이 시외버스터미널을 찾는지 모르겠다. 귤 한 꾸러미를 사들고, 멀미약 한 봉지를 사들고, 물 한 병을 사들고,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좀 꺼내어 지갑을 채우고, 다가올 출발 시간을 기다리는 일.

 

 

 

대합실 의자에 나도 앉아 여행자들처럼 출발시간을 기다려본다. 그들처럼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물끄러미 본다. 그들처럼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본다.

그러는 사이에도 출발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서는 사람들과 그들이 남긴 빈자리를 찾아와 다시 시간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본다. 대합실엔 오랫동안 눌러 앉아있는 사람들이란 없다. 그저 짤막한 시간들의 도막이 쉼 없이 교체될 뿐이다. 나도 일어난다. 배고프지 않으면서 우동 한 그릇을 시키고 간이의자에 앉아 우동을 기다린다.

 

 

 

언젠가 가본 적이 있는 내소사 전나무숲길이 떠오른다. 줄포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마중 나온 이들과 함께 찾았던 내소사의, 마을동네같이 나트막한 풍경과 거기에 얹혀있는 연기 설화, 붉게 익어가던 감들, 그리고 혼자 남아 갈 곳 없이 서성대던 일.

우동 한 그릇을 먹는 내내 관음봉 아래에 평면그림처럼 놓여있던 내소사를 생각한다.

가끔 먼 여행지를 그리워하는 건 어쩌면 인생이라는 것이 또 하나의 여행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까지 살아오며 여러 차례 인생버스를 갈아탔다. 부모님과 함께 동승해 오던 버스에서 내려, 오랫동안 혼자만의 여정에 나섰고, 거기에서 내려 다시 아내와 함께 하는 노정의 인생버스에 올라 여기까지 왔다. 나는 지금 운행 중에 있다. 운행을 하면서 완전히 알 수 없는 다음 기착지를 찾고 있다.

 

 

 

대합실을 돌아 나온다. 나오며 버스운행시각이 적힌 작은 안내표를 하나 집어 들었다. 이 안내표가 없어 멀리 떠나지 못하기나 한 것처럼 주머니 속에 넣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제부터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버스여행을 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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