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을 들고 텃밭을 일구며
권영상
오늘도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조심스럽게 어깨를 움직여 보았습니다. 어깨가 삐걱하며 탈이 날까봐 은근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시 허리를 쭉 펴선 좌우로 가만가만 움직여도 보았습니다. 다행히 괜찮습니다.
“아플 때도 됐는데........”
혼자 일어나 이불을 개면서 혼자 중얼거려 봅니다. 내 몸이 참 신통합니다. 벌써 사흘 동안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꼬박 삽질입니다. 오전에 두 시간, 오후에 또 서너 시간씩 고되게 일을 하는데도 몸이 삐걱거리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이만한 일을 했다면 병원에 실려가 병상에 누워있을 테지요. 그런데 긴장한 모양입니다. 아픈 데가 없어 내 몸이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한겨울에 텃밭을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봄이 온 뒤에 해도 늦지 않으련만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습니다. 내년 봄을 생각하려니 그 넉 달이 너무 멉니다. 텃밭을 만들어 이것저것 내 손으로 심어 가꿀 생각을 하면 몸이 자꾸 흥분하는 걸 어떡하나요. 웬일인지 12월이어도 냉랭하지 않고 푸근합니다. 땅도 얼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뜰에 심어놓은 잔디를, 이 집에 잠깐 들어와 살던 이가 잘 가꾸지 못했습니다. 반이 풀이고 반이 잔디입니다. 혹 잔디를 잘 비다듬어 놓았다 해도 그걸 천연히 바라보며 즐길 내가 또 아닙니다.
참다 참다 참지 못하고 사흘 전에 삽을 들고 나와 뜰 가운데를 한번 파 보았습니다. 보기보다 땅이 물렀습니다. 한 삽을 파 보고, 몸을 살살 어르며 또 한 삽을 파보고, 그러고는 어깨를 몇 번 휘둘러 봤지요. 해 볼만 합니다. 그렇게 한 삽 한 삽 시작한 삽질이 점심때를 잊고 서너 시까지 해도 힘겹지 않았습니다.
어딘가에 숨어있던 힘이 샘물처럼 몸 안 가득히 차오릅니다. 소년 시절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농사일을 거들던 내 몸의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나는 모양입니다. 그때에 삽질을 하고 괭이질을 하던 습성이 내 손에 갇혀 있다가 이제야 밖으로 나오려니 참 좋겠지요. 자동차를 멀리 하며 살다가 다시 핸들을 잡으면 금세 자연스럽게 차가 몰아지듯 삽질도 금세 손에 익는가 봅니다.
“야아, 전직이 의심스럽습니다.”
옆집 양형이 투덕투덕하는 내 삽질을 보고 다가옵니다.
내가 멋쩍게 웃자, 괜히 등허리에 파스 붙이지 말고, 요기 최씨 아저씨 기계를 쓰라고 알려줍니다. 그 말도 옳습니다. 그 생각을 나도 벌써부터 했으니까요. 왜냐하면 인생의 반을 나는 삽질과 아주 먼 직장에서 밥벌이를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니 자칫 무리하게 몸을 쓰다가는 근골을 다칠 수도 있습니다.
“할 데까지 한번 해 볼 겁니다.”
내 말에 양형이 이 일을 다 하려면 사나흘은 걸릴 거라며 도로 나갑니다.
그 일을 나는 벌써 나흘째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아침을 손수 해 먹고 뜰에 나와 삽을 들었습니다.
벌써 내가 일군 땅만도 스무 평가량은 될 듯합니다. 사람이라곤 가끔 양형이나 볼 뿐 아무도 없는 빈집의 빈 땅에서 혼자 일을 합니다. 그동안 나와 상대를 해 준 이가 있다면 여기 이 땅뿐입니다. 입도 없고 말도 없는 땅입니다. 같이 놀기로 한다면야 답답한 말상대입니다. 그 땅과 나는 나흘째, 둘도 없는 동무처럼 이렇게 들러붙어 놀고 있습니다. 재미있어서 심심할 겨를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수돗가에 라디오를 가져다놓고 거기서 나오는 음악도 듣고 이야기도 들으며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 만에 도로 거실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조용히 삽질을 하며 땅과 단 둘이 노는 것만 못했으니까요. 풀이 나오면 풀에 매달린 흙을 털어 거름더미에 던지고, 돌이 나오면 삽질을 놓고 돌을 따로 모으고, 그도 없으면 사각사각 삽질 소리를 듣는 일이 음악보다 더 좋았습니다.
도회지에서 오랫동안 머리만 가지고 살아온 몸이라 그런지 내 몸이 고된 육신노동을 좋아하여 다행입니다. 아무래도 아버지의 몸을 받아 그렇겠지요. 아버지도 평생 땅에 사셨는데 고된 신역을 싫어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꼭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의무감만으로 일을 하신 게 아닌 듯 합니다. 우리의 아버지들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느라 어쩔 수 없이 땀 흘려 일하셨다면 그건 우리 아버지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아버지의 노동을 비하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 식구들 입에 밥 한 숟갈 더 떠 넣게 하려고 일을 하셨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만 하다면 일이란 건 그저 참혹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는 아버지의 노동은 노예의 노동과 다를 게 없습니다.
“놀면 뭘해!”
열이면 열 분, 농사꾼들은 다 그런 생각으로 일을 하는 거지요. 일하는 것이 노는 것보다 더 재미있어서 한다는 말이지요. 놀아도 흙과 함께 노는 것이 그 어떤 사람과 노는 것보다 더 낫다는 뜻입니다. 농사꾼과 흙의 관계는 서로 마음을 소통하는 동무의 관계와 같고, 삶의 이치를 깨우쳐주는 소중한 스승의 관계와 같습니다.
스승 같은 친구, 친구 같은 스승이란 말이 있지요. 스승도 친구 같이 소통이 잘 되는 스승이 좋은 스승이고, 친구도 허물없으면서 스승 같이 배울 점이 있는 친구가 좋은 친구라는 뜻입니다. 거기에 딱 맞는 상대가 바로 땅이요 흙이 아닐까 합니다. 사래 긴 밭에 혼자 앉아 혼자 김을 매면서 끊임없이 서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도록 말없이 기다려주는 이가 바로 동무 같기도 하고 스승 같기도 한 땅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네 아버지들은 비가 내리든 폭양이 내리치든 하루 종일 전답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힘 가작 일할 수 있었던 거지요.
실제 닥쳐보니 그렇습니다. 사람들과 부딪히는 피곤한 도시의 직장 일과 달리 힘 가작 일해도 피곤하거나 심심하지 않습니다. 마치 벼르고 벼르던 고전을 한 권 성심성의껏 읽은 듯 하고, 좋은 영화를 한 편 메모 해가며 감상하고 난 기분입니다. 그러느라 나는 몇 번이나 점심때를 놓쳐 서너 시쯤에야 끼니를 챙겼습니다.
학교 공부라곤 티끌만큼도 못하신 아버지의 인생이 글을 배운 나보다 몇 배나 아름다우신 까닭이 바로 여기 있었던 게 아닐까요.
땅과의 묵언의 대화.
아버지는 그 대화를 위해 성인을 만나러 가시듯 매일 전답으로 향하셨던 거지요. 그리고 전답에서 나오실 때의 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너그럽고 인자하셨지요.
그 아버지를 생각하며 하루의 일을 놓고 손수 차린 저녁 식탁 앞에 앉습니다.
머리 위의 전등을 켜고 밥을 먹고, 행주질을 한 식탁 위에 다시 책을 놓고 글을 읽습니다. 그러다가 적당한 때가 되면 방에 들어가 이부자리를 펴고 반듯이 몸을 눕힙니다. 하루하루 일과가 신성해짐을 매일매일 느낍니다.
요 며칠 흙과 사는 동안 나는 흙으로부터 동무 이상의 것을 배웁니다. 그 배움이란 여태껏 내가 도시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을 버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것들을 경건하게 대하는 일입니다.
시간이 좀 나면 산에 들에 지천인 마른 풀을 베어다 밭거름을 할 생각입니다. 그것도 모자라면 남향 텃밭의 좋은 흙과 반반씩 나눌까 그 생각도 합니다. 그러고 봄이 오면 생땅을 일군 첫해이니까 들깨 옥수수 고구마를 좀 심어볼까 합니다.
눈이 내리면 봄이 멀지 않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기다리고 있으면 꼭 봄이 올 테지요. 그때가 되면 검정콩도 한 줌 심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이쯤에서 잠자리에 들어야겠군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신비한 밤이며, 그 안에서 숨 쉬고 있는 모든 생명들 또한 편안히 잠들기를 바랍니다.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를 웃게 해준 아프리카의 익살 (0) | 2013.12.16 |
---|---|
유일한 그리움의 통로 (0) | 2013.12.13 |
초등학교 취학통지서 (0) | 2013.12.04 |
초록빛 상추 한 접시 (0) | 2013.12.01 |
11월의 눈 때문에 잘못 든 길 (0) | 2013.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