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바가지에 담긴 숭고함

권영상 2012. 10. 30. 16:26

 

 

바가지에 담긴 숭고함

권영상

   

 

퇴근할 때에 보니 만리동 재래시장에 늙은 호박이 나왔다. 누런 호박을 보려니 가족같은 정이 간다. 고향집 담장 위에 버럭만하게 익어가던 호박이 눈에 선하다. 나는 채소가게 아주머니에게로 다가갔다.

“서리는 내렸습니까?”이 도시 안에 사는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선상님은 애기들만 가르치실 줄 알지 언제 서리 내리는지는 모르는 갑네. 아흐레가 상강이었으니 서리내려도 벌써 내렸지라우. 인편에 들은 말인디 강원도 정선에는 거시기 서리가 세 번이나 내렸다네요.”

내 얼굴을 대충 아는 아주머니가 나를 나무라듯 하시며 웃는다.

“아, 때가 그렇게 되었군요.”

“고지박도 벌써 다 따들일 때가 되어부렀지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는 내게 채소가게 아주머니가 덧붙이신다.

그러고 보니 때가 벌써 호박이며 고지박 따 들일 때가 되었다.

내가 아는 계절 감각이라고는 ‘덥다’ ‘춥다’ 그뿐이다. 더우면 봄이어도 여름인 줄 알고, 춥지 않으면 겨울이어도 겨울 아닌 줄 안다.

서울역으로 혼자 걸어오다 보니 민가의 전깃줄을 타고 오르는 박줄기에 큼직한 고지박이 매달려 있다. 나는 한참이나 서서 그걸 쳐다보았다.

 

서리가 두어 번 내리면 여문 고지박을 딴다. 서리 맞아 바짝 마른 고지박덩굴에 허옇게 배를 드러낸 놈. 동네 술주정뱅이 아니면 고지박이다. 술주정뱅이를 모르고 집안에 들일까봐 고지박을 딸 때는 반드시 배때기를 한 번씩 철썩철썩 때려야 한다. 그렇게 고지박을 따 뜨락에 쌓아놓으면 스무 개는 족히 넘는다.

여물기 전에는 고지박이며 박속이 된장국 맛있게 끓이는데 빠져서는 안 될 재료다. 그러나 서리 맞고 머리통이 여물면 고지박이 할 일이 따로 있다. 바가지가 될 일이다.

시간이 좀 한가하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고지박을 톱으로 켠다. 굵은 톱보다 이가 잔 톱이 좋다. 흥부네는 비록 가난해도 부부간의 금슬이 좋아 여편네랑 고지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톱질을 했다.

“슬근슬근슬근 톱질하세. 내놓으려면 금돈을 주게, 내놓으려면 듬뿍 은돈을 주게.”

그러면서.

 

 

그러나 보통 민가의 고지박이야 멍석에 주저앉아 두 발바닥으로 박을 잡고 한 손으로 톱질하면 충분하다. 그걸 아버지랑 자리를 잡고 켜는데도 한나절이 걸린다. 쪽박이 되건 됫박이 되건 물박이 되건 딱 반이 되도록 켜야 한다. 톱날이 한번 엇나가면 그 박은 그 자리에서부터 박 노릇을 못한다. 그러니 흥을 돋우워 노래를 부르며 켜기엔 옳은 노릇이 아니다.

그 많은 고지박을 다 켜고 나면 손으로 박속을 적당히 파내어 가마솥에 삶는다. 장작 한 아름을 아궁이에 넣고 괄은 불로 푹 끓여 내면 그 다음에 할 일이 있다. 놋숟가락으로 박속을 박박 긁어내는 일이다. 뜨끈뜨끈한 가마솥 물에 손을 넣고 박박박, 벅벅벅, 북북북, 복복복 긁어내는 일이란 즐겁다. 고지박의 뱃속을 깨끗이 긁어내고 나면 말끔히 씻어 처마 끝 그늘에 말린다. 하루 이틀, 집안팎을 드나드는 선선한 바람에 걸어두면 사흘이면 바싹 마른다. 그런 때에 곡간에 들어가 보라. 지난해에 마련해 놓은 바가지가 곡간 천장에 아직도 그대로 매달려 있다. 흔한 게 박이고 깨져도 그만인 게 박이지만 어머니는 깨진 박을 고쳐 쓸망정 새 박을 꺼내 쓰시지 않는다. 꼭 쓸 바가지 네다섯 개를 내놓으면 그걸로 한 해를 나셨다.

 

박은 어디에 쓰이느냐.

됫박으로 되질을 하는데 쓰인다. 다섯 홉 들이 작은되와 열 홉 들이 십성큰되가 그 됫박이다. 그 됫박으로는 명태나 북어를 쌀로 바꿀 때, 참깨나 고춧가루, 소금을 사고팔 때 쓴다. 그 외에 바가지는 부엌에서 조리도구로 쓰인다. 하나는 물박, 하나는 쌀을 퍼나르거나, 또 하나는 쌀을 씻거나 이는 이남박으로 쓰인다. 박은 속이 충분히 마르면 그 안쪽에 엠보싱 상태가 완연히 드러난다. 그 돋을무늬는 산골짜기 모양이기도 하고 산맥처럼 박꼭지에서부터 주욱 벋어나 있기도 하다. 돋을무늬가 뚜렷할수록 박은 탄탄하다. 그 엠보싱 패턴 때문에 쌀을 씻어 일면 모래가 잘 걸린다.

 

부엌에서 쓰이는 바가지의 용도는 이뿐이 아니다.

기부를 하는 도구로도 쓰인다.

예전 시골엔 동냥을 다니는 이들이 많았다.

그 시절은 모두 헐벗고 넉넉히 먹지 못하던 때였다. 물론 식구가 많은 우리 집도 넉넉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누가 동냥을 오면 어머니는 부엌에 나가 그들을 도왔다. 그들을 돕는 최일선에 바가지가 있었다. 우선 바가지를 들고 곡간으로 가신다. 가을철이면 가끔 흰쌀을, 여름철이면 보리쌀이나 감자를 그들이 내미는 동냥 자루에 담아주었다. 쌀이나 보리쌀은 바가지에 비해 조금 담았지만 감자나 고구마는 암만 큰 바가지여도 가득히 담아 주었다. 옥수수도 담아주었고, 감철이면 감도 담아주었다. 바가지는 남의 것을 약탈해오는 도구가 아니다. 오히려 내 것을 남에게 내줄 때 요긴하게 쓰이는 성스러운 도구다. 우물 곁을 지나는 목 마른 나그네가 물 한 모금을 원할 때도 그 목을 축여주던 것이 물바가지다.

 

 

 

 

박속을 파내고 나면 그 안이 둥그렇고 웅숭깊다. 그 웅숭깊은 빈자리가 자비를 베푸는 마음자리다. 바가지가 되면서부터 바가지는 제 몸안에 타인에게 요긴한 것을 채운다. 배 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담아내어주기 위해 항상 제 몸의 욕심을 비운다. 그게 빈 바가지의 아름다움이다. 흔하고 값싼 것이 바가지이지만 바가지에겐 그런 무욕과 채움의 정신이 있다. 그렇기에 바가지를 손에 들면 바가지는 그걸 쓰는 이의 자비의 구체적인 부피를 보여준다. 그가 얼마나 넉넉한 인심의 소유자인지를 여지없이 드러낸다.

그런가 하면 남의 일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남의 꿈을 밟아 으깨는 경우도 있다. 그때 희생당하는 것 또한 바로 이 쪽박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놀부 심보로 가득한 이가 있다. 남 잘 되는 걸 보기 싫어하는 자에게 이 쪽박은 심술을 부려보는 대상이 된다. 이름하여 쪽박을 깨는 일이다. 남의 쪽박을 빼앗아 엎어놓고 발로 꽉 밟는 심리. 그것의 희생자가 바로 바가지다. 이 점으로 보아 바가지는 자기 헌신이나 희생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바가지 아름다움의 극치는 버럭물에 엎어놓고 악기로 쓰일 때가 절정이다. 사는 일에 지치고, 쌓인 한을 풀어내지 못해 한숨을 내쉬는 여인들의 노랫장단을 맞추어주는 게 바가지다. 얼마나 간편하고 또 경건한 악기인가.

“문경 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 구부가 눈물이 난다.”

어두운 부엌이나 뒤꼍방에 여럿이 둘러앉아 가슴에 맺힌 것을 눈물 아닌 노래로 끄집어내는 이 음악적 행위에 물박이 있다. 손으로 물박을 두드리며 안의 서러움을 밖으로 풀어낸다.

날 두고 간다 말하지 마소. 돌아서지 돌아서지 마소. 등 돌려간다 말하지 마소. 가는 등 돌려 날 보아 주구려. 가지마소. 가지마소. 섧다 섧다 가지 마소.”

그렇게 물박을 두드려 노래 부르던 어머니가 우리들의 어머니였다.

 

마당가 담장 위에, 헛간 지붕 위에 아무렇게나 눌러앉아 크는 듯한 고지박 하나에 따지고 보면 이렇게 큰 인생이 있다. 그의 일생이 위인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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