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느티나무 숲길에 나와 서서

권영상 2023. 11. 19. 21:39

 

 

느티나무 숲길에 나와 서서

권영상

 

 

 

뜻밖에 첫눈이 내린다. 좀 전까지만 해도 하늘이 파랗고 해도 좋았는데, 마치 일기예보와 짜고 치듯 눈 내린다. 11월에 내리는 첫눈치고 예사 눈이 아니다. 나는 우산을 쓰고 아파트 후문을 나선다. 느티나무숲 느티나무들이 첫눈에 휩싸이고 있다.

눈은 오후 2시부터 내린다 했고, 적설량은 1센티미터라 했다. 그 말에 나는 ‘1센티나 내린대!’ 하며 코웃음 쳤다. 첫눈이 내리면 얼마나 내린다고 적설량 타령일까 했다. 그러나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나는 적잖이 놀란다.

 

 

느티나무 숲은 떨어진 느팃잎으로 수북하다. 그 위로 눈이 내린다. 눈 아래 잠들고 있는 낙엽들은 모두 지난봄과 여름과 가을이 만들어놓은 고단한 잔해들이다.

봄이 왔을 때 느티나무들은 숲을 연둣빛으로 환하게 만들었다. 세상의 그 어떤 빛이 순결한 느티나무 속잎만 하겠는가. 그러나 그것도 잠시. 수십 수 백 그루의 느티나무 숲 느티나무들은 사람살이보다 더 치열한 경쟁에 들어간다. 잠시도 한 눈을 팔 수 없고, 잠깐 게을러 질 수도 없다. 잠깐 사이 설 자리가 사라지는 게 숲이다.

 

 

사람 못지않게 욕망에 집착하는 게 나무들의 삶. 느티나무들은 순간순간마다 생존을 위해 날카로운 결단에 직면한 삶을 산다.

이 느티나무 숲의 나무들이 저렇게 키가 큰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나무들의 햇빛 차지하기는 치열하다. 나무들이 벋는 가지의 방향엔 햇빛이 있다.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나무는 나무의 중심을 바꾸거나 때로는 수형을 비튼다. 또한 지금 잘 쓰고 있는 가지들도 햇빛을 얻는데 소용이 닿지 않는다 싶으면 재빨리 포기하고 새 가지를 벋어 그것에 집중한다. 나무들에겐 언제나 재빠른 판단력과 날카로운 결단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생명작용이 끝난 가지는 당연히 삭정이가 되고, 삭정이는 얼마간 나무의 균형을 유지하다가 어느 비 내리는 날, 비의 무게에 못 이겨 땅 위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 무게만큼 나무는 빛을 향해 성큼 도약한다.

나무들의 삶에서 경쟁을 빼면 아무것도 없다.

 

 

장마나 강한 바람이 불고난 뒤 숲에 들어서면 태평해 보이는 숲에도 삶과 죽음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삭정이들은 떨어지고, 과도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상체가 비대해진 나무는 뿌리째 뽑혀 쓰러진다. 숲속 느티나무들은 들판에 홀로선 독립수와 다르다. 경쟁만 하다 보니 균형감이 없고 여유가 없다. 허약하다. 햇빛만 쳐다보았지 아래쪽에 눈길을 둔 적이 없다. 자수성가한 독립수처럼 바람과 눈보라를 스스로 이겨내지 못한다. 누군가 손을 내밀면 내가 살아내기 위해 그 손을 내칠 줄만 알았지 잡아준 적이 없다.

 

 

내치며 밀치며 햇빛을 차지하기 위해 모든 걸 바쳐 키를 키우지만 그들이 얻는 평수는 적다. 나무숲에 들어서서 나무 우듬지를 쳐다보면 안다. 키는 비약적으로 컸지만 정작 햇빛을 받는 우듬지는 한 평도 안 된다. 기껏 그 하늘을 차지하기 위해 나무들은 경쟁했다.

허약할 대로 허약해진 나무들이 살 길은 하나 밖에 없다. 숲이 바람에 흔들리면 함께 흔들리고, 숲이 잠들면 함께 잠 드는 일이다. 한 나무가 쓰러지면 이 숲의 모든 나무들이 쓰러질지 모른다는 위협을 나무들은 천천히 터득했다.

 

 

이것을 태연하게 화합이라 말 할 수 있을까.

첫눈 내리는 숲에서 느티나무들의 태연함을 바라본다. 솔직히 이 겨울에 이것들 외에 나무들이 마음을 맞출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교차로신문> 2024년 12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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