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을을 사랑했다
권영상
가을을 사랑했다.
그때 나는 중 2 였고, 첫사랑이었다.
우리가 만난 건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는 내가 중2 때 병명도 모르는 상태로 병원에 장기 입원했다. 아무 문제없던 나의 일상이 하루아침에 헝클어졌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시골이었고,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중심지에 있었다. 나는 학교를 마치면 집으로 오는 게 아니라 엄마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저녁 무렵 4킬로미터가 넘는 집으로 혼자 돌아왔다.
내가 가을을 만난 건 그때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만난 적은 있었지만 우리는 서로 스쳐지나가는 사이였다. 손을 잡거나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고, 무엇보다 서로에 대해 알고 싶은 궁금함이 없었다.
그러나 엄마가 입원한 그때는 달랐다. 세상의 한가운데에 내가 혼자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다. 누나도 있고 아버지도 있었지만 나는 외톨이었다. 그때 제일 처음 배운 것이 외로움이었다. 저녁 무렵. 혼자 집으로 돌아갈 때 나는 가끔 눈물을 흘렸는데 그게 내 몸으로 들어온 외로움임을 얼핏 알았다. 첫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때 늘 나를 기다려준 것이 가을이었다.
가을은 병원 앞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암말 없이 나랑 함께 걸어주었다. 어느 하루만이 아니라 늘 그랬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가을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았고, 내 마음이 조금씩 눅눅해지면서 그게 나를 위로하는 가을의 몸짓임을 알았다.
사랑의 공급처가 끊긴 나는 가을이 좋아졌고, 자연히 가을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와 함께 나란히 걷는 것이 싫지 않았다. 비록 가을이 내게 말 한 마디 걸지 않아도 4킬로미터나 되는 그 길을 가는 것이 지루하거나 전혀 외롭지 않았다. 나는 그를 보고 왜 말을 하지 않느냐, 라거나 왜 남들처럼 붙임성 있게 웃어주지 않느냐며 불만을 터뜨려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외로움을 몸소 배워가는 나를 옆에서 지켜봐주는 가을의 사랑법이 진실했고, 나는 그 진실에 빠져들었다.
가을을 사랑하면서부터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아니 생각이 좀 깊어졌다는 말이 옳겠다. 어떻든 그는 생각이 경망한 사람들과는 분명히 달랐다. 작고 힘없는 것들을 보살필 줄 아는 마음을 키워줬다. 홀로 길을 찾아가는 개미를 오래도록 지켜봐 주는 마음을, 개미 가는 길에 놓인 돌멩이를 잠시 옆으로 치워주고 싶어 하도록 내 마음을 천천히 움직였다.
풀섶 밑을 기는 달팽이를 보게 하거나 풀 아래 반짝이며 흘러가는 가는 물줄기에 눈길을 보내게 하거나 마른 풀씨 떨어지는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예민함을 일깨워 주고는 했다.
그때 가을은 엄마가 해주지 못하는 일을 내게 대신하고 있었다.
노란 은행잎이 노란 볕에 눈부시게 쏟아질 때 가을은 내게 작별이 때로는 반짝이는 것임을 가르쳐 주었다. 그 무렵 나는 날마다 병원에 입원한 엄마와 작별했다. 작별하면서도 언젠가는 그 작별이 눈부신 만남이 될 거라는 생각에 나는 작별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무려 16년이라는 수없이 많은 작별 끝에 엄마는 완쾌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지 가을은 내 곁을 떠나지 않고 나를 지켰다. 그 동안 우리는 너무나 잘 아는 사이가 됐다. 나는 가을을 사랑한 덕분에 작별도 알고 찬란한 만남도 알았다.
<교차로 신문> 2023년 11월 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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