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가을바다에서 만난 서퍼

권영상 2021. 9. 18. 17:07

 

가을바다에서 만난 서퍼

권영상

 

 

아내와 강릉행 영동고속도로에 들어선지 세 시간.

세 시간 이동 끝에 친지의 혼사가 있는 예식장에서 고향 벗들을 만났다.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오랜 단절 이후의 안부를 서로 물었다. 웃고 담소하고 악수하는 이 기쁨도 오늘 내가 용기를 내어 내려오지 않았으면 못 누릴 일이다.

예식이 끝나자, 아내와 나는 강릉에서 그리 멀지 않은 조용한 사천 해안을 찾았다. 대관령에서 내려다보이던, 끝도 없이 파랗게 펼쳐진 낯익은 바다가 우리는 맞는다. 하늘 역시 바다처럼 푸르다. 휴대폰 카메라에 들어오는 바다와 하늘이 코발트빛이다.

 

 

그러나 해안은 아니다. 바다가 해안에서부터 파도로 돌변하여 끊임없이 밀려온다. 거칠다. 마치 한 떼의 배고픈 들짐승들의 질주처럼 일시에 하얗게 소리치며 몰려와서는 비스듬한 백사장을 철썩 덮친다. 먼데서 보면 초원 같지만 자세히 보면 바다는 두렵다.

태풍이 동해안을 지나가고 있다는 기상예보가 생각났다.

어쩌면 지금쯤 그 태풍이 보이지 않는 먼 곳을 지나가며 바다를 쑤석대는지 모른다. 그냥 바라보면 그저 멋있기 만한 가을바다가 더없이 거칠다. 태풍의 위력 앞에 더는 바닷가로 나가지 못하고 이쯤 모랫벌에 선 채 그 격렬하게 요동치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때다.

 

 

누군가 그 바다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가고 있었다.

웻슈트에 서핑보드를 세워든 젊은 여자였다. 그는 격랑치는 바다 앞에 잠시 멈추어 서더니 숨을 고르려는 듯 그 바다를 바라본다. 그의 발목엔 서핑보드와 연결된 생명줄과도 같은 리쉬코드가 묶여져 있다. 그걸 보자, 내 마음에 비장감이 돌았다. 바다와 마주 서 있는 서퍼의 몸에서 어떤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바다로 뛰어들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심장의 박동소리가 내게로 쿵쿵쿵 울려오는 듯 했다.

그녀가, 껴안고 있던 서핑보드를 드디어 바다에 던졌다. 그리고는 그 위에 올라타고 바다를 밀고 나갔다.

 

 

“오오!” 하는 탄성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돌아보니 나뿐 아니라 몇몇 이들이 바닷길 펜스를 잡고 서퍼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거친 바다를 헤치며 앞으로 나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파도를 찾아 그 파도를 향해 나갔다. 그는 수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보기 좋게 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 파도에 맞서다가 파도 속에 파묻히고, 파도가 지나간 뒤에 보면 서핑 보드에서 떨어져 나가 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서퍼가 파도를 타거나 보드와 함께 파도에 뒤집어지거나 파도 속에서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 지치지 않는 힘이 내게는 없거나 너무 부족하거나 이제는 사라졌거나 하였기에 오래도록 서퍼를 지켜봤을지 모른다.

바다 가운데에 서퍼를 두고 우리는 일어섰다.

 

 

늦은 저녁쯤 주문진 해안가에 예약해놓은 숙소를 찾아갔다. 노을 지는 가을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숙소의 창문을 열었다. 창문턱까지 숨찬 파도 소리가 여전히 밀려온다.

“낮에 본 그 젊은 서퍼,  지금도 그 바다에 있을까.”

아내가 말했다.

거친 파도를 타던 그녀의 모습이 아내의 머리에 깊은 인상을 남긴 모양이다. 내 머릿속 역시 서퍼는 돌아 나오지 않고 아직도 그 험난한 바다와 싸우고 있었다.

서울을 벗어난 것만도 대단한 용기인 줄 알았는데, 거친 자연과 맞서 싸우는 서퍼의 용기에 비하면 우리의 용기라는 것은 너무 왜소하다.

 

<교차로신문> 2021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