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전화기, 너를 어찌할까?
권영상
“전화기 없앨까?”
뜬금없이 아내가 전화기를 없애자는 거다.
“무슨 전화기?” 당연히 나는 그렇게 되물었고, 아내는 저기 저거! 하며 등 뒤 김치냉장고 쪽을 가리켰다. 그 구석진 자리에 유선전화기가 있다.
생각할수록 유선전화기의 인생이 구차하다.
한 때는 거실 좋은 자리에 앉아 호사를 누렸다. 전화벨 소리로 식구들의 시선을 독차지 했고, 누군가 통화하면 그 곁에 모여 함께 통화하는 기쁨을 나누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전화벨이 울리면 다들 자리를 피했고, 통화는 더욱 사적이고 은밀해져갔다.
그 무렵 휴대폰이 등장했다. 유선전화기는 찬밥 신세가 되어 집안 구석으로 밀려나 끝내는 존재감마저 잃었다. 아니 집밖으로 쫓겨나가 폐기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쓰지도 않으면서 요금만 꼬박꼬박 낸다구.”
다달이 16,800원의 요금을 내고 있단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일 년 가야 전화기 한번 안 쓴다. 몇 번 받은 적은 있다. 선거 시즌마다 걸려오던 성가신 여론조사다. 어디에 좋은 땅이 나왔다며 ‘사장님, 투자 정보 알려드리겠습니다’ 하는 그야말로 사장님, 어쩌구 하는 전화가 있다. 또 있다. 친척분들한테서 오는 전화다. 어쩌면 그쪽에서도 ‘녹슬지 말라고’ 가끔 쓰는지 모른다.
“그럴 거면 빨리 끊어야겠네 뭐!” 나는 큰소리쳤다.
식구마다 비싼 휴대폰 요금 내면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유선전화기 요금까지 내는 일은 뭔가 부당하다.
“내일에 내가 알아봐야겠어!”
나는 내일을 들먹였다. 그러면서 폐기할 연락처를 휴대폰으로 찾고 있었다.
그때였다. 띨릴릴리이, 오래 되어 발신음조차 신통찮은 유선 전화기 벨이 울렸다.
“무슨 선거가 또 있나?”
나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수화기 저쪽에서 아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어, 혹시 거기가 권영상 선생님댁 아니신가요?”
남자 목소리였다. 그렇다는 내 말에 저, 혹시 광수라고 기억하세요? 그랬다. 연광수였다.
40 여 년 전, 강원도 어느 산골학교에 잠시 근무할 때의 술친구 연광수였다. 그때 총각이었던 나는 그에게 술을 사주어가며 유화를 배웠다. 그 후, 그는 캐나다로 살러갔고, 20여 년 전 귀국하여 우리 집 전화로 나를 찾았는데, 또다시 20여년이 지난 오늘 우리 집 전화로 나를 찾았다.
잠시 귀국했다며 혹시 우리 집 전화번호가 바뀌지 않았나 하고 전화를 했단다. 그러고 보면 그는 내가 아니라 우리 집 전화번호를 살려나가기 위해 전화를 하는 듯했다. 한번 보자는 내 말에 목소리만 들어도 반갑다며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통화를 끊었다.
어느 소설에서다. 배를 저어 친척이 있는 해주에 건너갔다가 휴전에 막혀 돌아오지 못한 강화도 남편이 있었다. 그를 기다리는 아내는 남편이 돌아오면 그 옛날의 집을 못 찾을까봐 이사도 수리도 못하고 산다는 내용이다. 유선 전화기를 끊지 못하고 사는 우리 마음에 혹시 기다리고 있는 누가 있는 건 아닐까.
유선전화기를 끊겠다며 뻥뻥대던 내 마음이 슬며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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