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초롱꽃을 보러가야겠다
권영상
아침에 카톡을 열었다. 간밤 누군가가 보내온 카톡이 있었다. 무슨 긴급한 일일까 하면서도 그냥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지난밤의 카톡이 궁금했다. 휴대폰을 열고 카톡방에 들어갔다.
대학을 함께 다닌 고향 친구의 카톡이다. 구룡령 근처에서 찍었다는 자주색 금강초롱꽃 다섯 장이 와 있다. ‘드디어 오늘 금강초롱꽃을 상봉했습니다.’그런 멘트도 달려 있다. 드디어 상봉했다는 걸 보면 금강초롱꽃을 보려고 벼르고 별러 구룡령에 간 모양이다. 구룡령은 강원도 양양에서 홍천으로 넘어가는 1013미터나 되는 높은 고갯길이다. 그 험한 고갯길에서 만난 금강초롱꽃이었으니 그 감동을 품에 안고 하룻밤을 넘기기는 어려웠을 거다.
볼수록 곱다. 빗속 고갯길에서 찍은, 채 하루도 안 된 꽃 사진이라 꽃빛이 깨끗하고 예쁘다. 휴대폰을 흔들면 초롱꽃 향기가 날려 나올 것 처럼 생생하다.
옛날 강원도 어느 산골에 오누이가 살았단다. 동생은 아픈 누나의 병을 고치려고 깊은 산속으로 약초를 캐러 다녔고, 그러던 중에 한 노인을 만났다. 사연을 들은 노인 왈, 달 속에 사는 계수나무 열매를 먹으면 누나의 병이 낳으리라, 했다. 동생은 금강산 비로봉에 올라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찾았다. 그때 마침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 선녀를 보았다. 그도 얼른 그 사다리를 타고 달에 올라 옥토끼를 만나고, 계수나무 열매도 얻었다.
그럴 무렵, 암만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동생을 찾으러 초롱불을 켜 들고 금강산에 간 누나는 하늘 사다리에서 떨어져 죽은 동생을 발견하고는 슬퍼하다가 죽었다. 누나가 죽은 자리에서 꽃 하나가 피었다. 누나가 들었던 초롱을 꼭 닮았다.
금강초롱꽃은 중부 이북 고산지대에 산다. 세계적으로 2종뿐이 없다는데 그들 모두 우리나라에 자생한다는 매우 고귀한 식물이 금강초롱꽃이다.
벌써 가을이 저쯤 보이는 장맛비 끝 무렵, 설악에서 보던 금강초롱꽃이 생각난다. 십여 년 전이다. 비 내리는 설악이 그리워 울컥 하는 마음에 배낭을 챙겨 버스에 올랐다. 수렴동계곡 물소리를 따라 걸어오르다가 마타리와 노루오줌풀꽃이 드문드문 나타나는 곳에서 오세암 가는 길로 들어섰다.
오세암에서 점심을 해결한 뒤 일어섰다. 비가 내렸다. 나는 가야동계곡 대신 초행인 마등령 길을 택했다. 비가 심상찮았다. 우비를 쓰고 오세암 뒷등을 탔다. 오세암에서 마등령까지는 한 시간 반 거리. 돌무더기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있을 때다. 머리 위에서 번개와 천둥이 울며 비는 점점 거세게 내렸다.
더는 못 가고 바위 아래 비를 피하고 있을 때였다. 나와 달리 내 무릎 앞에 유유히 피어있는 꽃 한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뜻밖의 금강초롱꽃이었다. 설악에 금강초롱꽃이 거처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런 데서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너무도 몰랐다. 빗방울에 흔들릴 때마다 비 냄새와 함께 아련히 풍겨나던 꽃향기.
비가 잦아들어 다시 산을 오르며 보니 산비탈이 온통 금강초롱꽃으로 물들어 있었다. 산이 아니라 먼 우주를 가다가 만나게 된 또 다른 낯선 세상 같았다. 이윽고 마등령 너머에서 밀려오는 산안개가 천천히 산비탈을 감싸 안으면서 나무도 꽃도 산도 사라졌다.
나는 그때의 그 일이 신비로워 그 해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설악을 찾았다. 가급적이면 대청봉보다는 마등령을 탄다. 그건 순전히 오세암 뒷등에 피던 금강초롱꽃 때문이다. 근데 설악을 찾지 못한 지 이태가 됐다. 비 그치고 9월이 오면 홀로 금강초롱꽃을 보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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