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들려주는 동시이야기

가랑잎

권영상 2017. 9. 27. 18:13

  

 

가랑잎

김정일

 

 

가랑잎은

귀도 참 밝다.

바람이 조금만

스쳐 지나가도

바스락 소리를 낸다.

 

가랑잎은

눈도 참 밝다.

바람이 살짝

지나가도

쪼르르 따라간다.

    

 

 

바람이 좀만 불어도 가랑잎은 달달달 구릅니다. 바람이 가는 길을 따라 나서지요. 가랑잎이 그럴 수 있는 건 누군가 가랑잎에게 바퀴를 달아주었기 때문이지요. 가랑잎은 달달달 바퀴를 굴려 풀섶 아래로, 골목 그늘로 접어듭니다. 밤 늦도록 찬 바람에 가랑잎 굴러가는 소리를 문틈으로 듣는 겨울밤.

그런 밤이 가고 난 아침에 길을 나서면 그늘진 구석에, 움펑 빠진 작은 구덩이에 가랑잎들이 소복소복 모여있지요. 어쩌다 가랑잎을 뒤져본 나는 깜짝 놀랐지요.

, 세상에나!”

발발발 떠는 민들레꽃이 옹크리고 있었습니다. 가랑잎이 밤새도록 달달달 구르며, 넘어지며, 쓰러지며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그것입니다. 민들레꽃이 얼까봐 이불 대신 감싸주러 온 거지요.

구석지고 움펑진 곳엔 바람에 불려온 작은 풀씨들이 있고, 아직 겨울준비를 못한 채 서성이는 어린 벌레들이 떨고 있지요.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작고, 힘없고, 쓸쓸한 것들이라서 누가 보살펴주지 않으면 추운 겨울을 견디기 어렵지요.

가랑잎에 바퀴를 달아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지요. 어디든 굴러가 힘없는 것들을 덮어주고 감싸주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가랑잎은 작은 소리에도 귀가 밝고, 자신을 원하는 곳이라면 달달달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는 거지요.

(소년  2017년 12월호 글, 권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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