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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로가 사라졌다 23회- 기파화랑

이야기 바다에 빠지다 19. 기파화랑  신라를 동경하다  신라로 가고 싶다.천년이 걸리든 천오백 년이 걸리든그곳으로 가그곳 살구나무 아래 모여사는 마을에서, 이야기꾼 가득한 골목에서, 보리가 파랗게 자라는 들밭에서, 꽃을 키우는 뜰에서, 바위를 타고 고기를 잡는 바다에서,닭 울음에 귀기울이던 계림 숲에서신라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그들을 만나면 나는 먼저 인사할 테다.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그들의 손을 잡고 반가워요, 반가워요. 할 테다.경주 남산에 올라 머리에 깃을 꽂은 화랑을 만나고, 화랑 중에서도 빼어나고 빼어난기파 화랑을 만나겠다.그를 만나면 그가 얼마나 멋진 화랑이었는지그의 의리가, 그의 우정이 얼마나 사람들을 감동시키는지그가 얼마나 겸손했는지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신라의 나무들이며 풀들이며, ..

젤로가 사라졌다 22회- 궁수 거타지

이야기 바다에 빠지다 18. 궁수 거타지 기울어가는 신라  “사신의 임무를 다하고 돌아오겠나이다.”아찬 양패가 진성여왕에게 고했다.“내 그대를 지켜줄 궁수 50명을 줄 터이니 임무를 다하고 오라.”여왕이 대전 바깥까지 따라 나왔다.당나라 사신으로 가는 아찬 양패는 여왕의 막내아들이었다.여왕은 한참 동안 아들 일행이 가는 행렬을 지켜보았다.궁수 50명여명이 따르는 행렬인데도 왠지 초라했다.그 찬란하던 신라도 숱한 반란으로 기울어져 가고, 여왕도 정치에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사신 일행이 완도 앞바다에 이르렀을 때다.따르던 시종이 말했다.“완도에 후백제 군사들이 머문다 하니 뱃길을 군도로 바꾸는 게 좋겠나이다.”일행은 그의 말을 따랐다.배가 군도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날씨가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거친 바다는..

젤로가 사라졌다 21회- 화랑 사다함

이야기 바다에 빠지다 17. 화랑 사다함  반란 “마마, 반란이 일어났나이다!”전령이 다급하게 대전으로 달려들어왔다.진흥왕은 침착했다.“숨을 가다듬고 말하여 보라. 대체 어디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거냐?”전령이 또박또박 사실을 말씀드렸다.“멸망한 가야 땅에서 가야의 잔여 세력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하옵니다.”전혀 예견 못한 일은 아니었다.그들이 백제와 왜의 힘을 빌어가야를 되찾기 위해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음모는 일찌기 들은 바 있었다.그것이 현실이 되었다.이 해가 562년. 9월.“속히 이사부 장군을 부르라.”반란 소식에 갑자기 대전 안이 바빠졌고, 신라가 분주해졌다.이사부 장군이라면 백전노장의 명장이다. 가야나 백제 고구려가 신라 변방을 쳐들어오거나 울릉도 섬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킬 때 장군은 달려가 그곳..

젤로가 사라졌다 20회- 수로부인

이야기의 바다에 빠지다  16. 수로부인  헌화가 봄날강릉길이 열렸다.강릉태수로 떠나는 순정공 일행에게 있어해안길은 멀고 험하다. 말을 탄 순정공이 맨 앞에 섰다.그 뒤에 순정공의 부인 수로가 가마를 탔다.그리고 호위 병사, 책과 옷을 실은 수레가 뒤따랐고강아지며 고양이가 뒤따랐다. 강릉길이 이제야 열린 데는지금 가마를 타고 가는 수로부인 때문이기도 하다.얼굴이 너무 고왔다.하늘도 넘볼 만큼 땅도 넘볼 만큼 예뻤다.하루를 걷고 그 이튿날 벼랑길을 돌아갈 때다.“여기서 쉬었다가 가리라.”순정공은 부인을 빼앗길 염려가 없는 높은 벼랑을 등에 지고 피로한 발길을 쉬고 싶었다.그러나 그게 문제였다.높은 벼랑 위에 핀 봄날 철쭉꽃이수로부인의 마음을 빼앗았던 거다.부인은 서슴치 않고 말했다.“누가 저 꽃을 꺾어 주..

새별오름, 이보다 멋진 풍경

새별오름, 이보다 멋진 풍경권영상  오늘이 제주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다.송악산과 대정 오일장을 둘러보고 제주공항으로 가는 길에 곶자왈 도립공원과 새별오름을 들르기로 했다. 좀 무리지 싶었다.웬걸, 아침에 차로 이동하면서 삼방산에서 송악산까지 걸어가기로 한 사계 해안 길을 포기했다. 어제 카멜리아힐의 동백꽃 길을 너무 많이 걸은 탓이다. 사계 해변 대신 송악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잠깐 송악산을 걸어 오르기로 했다. 절벽에 일제가 남겨놓은 해안 진지와 산기슭 진지를 만났다. 해가 들지 않는 북향 탓인지 절벽에 남아있는 상처들이 음울해 보였다. 우리는 역사의 아픈 흔적을 한번 들여다보는 것으로 뒷사람의 소임을 다한 것인 양 부끄러움 없이 돌아내려 왔다.  차를 몰아 모슬포항을 바라보며 대정 오일장에 들렀다...

젤로가 사라졌다 19회-원효

이야기 바다에 빠지다 15. 원효 길 위에서 깨달음을 얻다 물 한 그릇  원효는 당나라 유학길에 나섰다.의상과 함께 하는 두 번째 도전이다.그때가 661년 문무왕이 왕위에 오른 해였다.당나라엔 유명한 고승 삼장법사 현장이 있었다. 그분은 제자 40명과 함께 온갖 난관을 헤쳐 부처님이 태어나신 인도에 도착했다. 그후 날란다 대학에서 불법을 공부하고 돌아왔다.많은 나라 젊은이들이 이 새로운 공부를 위해 현장 스님을 만나러갔다.“의상, 나는 무지렁이 백성들을 위한 불법을 배워올 걸세.”“원효, 자네의 총명함이 빛날 때가 곧 올 거네.”두 사람은 신라를 위한 진정한 공부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긴 여정 끝에 당항포구가 나오는 길목에 들어섰다.찌뿌둥하던 하늘이 끝내 비를 뿌리더니 날도 저물었다. ..

젤로가 사라졌다 18회- 이차돈

(월요 이야기동시 연재) 이야기 바다에 빠지다 14. 이차돈  천신을 섬기다  법흥왕은 불교를 들여오길 원했다.막연히 천신의 명을 받아 살아가는 신라가 아닌사람의 힘으로 이끌어가는 신라를 만들고 싶은 뜻이기도 했다.그러나 그때마다 6부의 귀족들은 참지 못했다.“아무리 왕이라 하여도 천신의 명을 어기면 아니 되옵니다.”“불법(부처님의 말씀)도 천신을 이길 수는 없나이다.” “궐을 짓거나 우물을 파는 일도 천신에 여쭈옵고, 하늘로부터 그 답을 받아 행해야 하는 법, 불법은 가당치 않나이다.”열을 올리는 부족장들에게 왕이 나직이 물었다.“천신이 사람의 일을 어찌 알며, 사람이 천신의 대답을 어찌 듣는단 말이요?”그러자 사량부 족장이 대뜸 나섰다.“천신은 점괘로 그 대답을 내리나이다. 왕께서 손을 씻으시거나 헛..

11월의 폭설

11월의 폭설권영상   간밤에 아내를 서울로 보내놓고 잠을 설쳤는데 자고나니 뜻밖에 눈이 오네요.세상에! 아직 11월인데, 11월의 첫눈치고 느닷없이 왔고, 그 양도 많네요. 나는 창문을 열어놓고 우두커니 눈을 내다봅니다.길 건너 고추밭이며 마을 집들, 한때 무성하던 나무들이 이미 눈 속에 다 묻혀버렸네요. 데크에 쌓인 눈을 보아하니 10여 센티는 될 것 같습니다.아직 설레는 마음이 있어 휴대폰 카메라로 눈 풍경을 찍어 아내에게 보내고, 지인들에게 선물인양 보냈지요. 달려간 카톡은 이내 기쁘게 돌아왔죠. 그쪽에도 지금 한창 눈이 내린다는 소식입니다.  아침을 먹고 다시 창문을 여니 상황이 돌변했습니다.치고 들어온 눈이 친 만큼 또 쌓였습니다. 펄펄이 아니라 펑펑입니다. 하늘이 점점 검어지며 침묵이 깊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