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로가 사라졌다

젤로가 사라졌다(29회) 괘릉과 무함

권영상 2025. 3. 29. 18:25

 

 

<월요 이야기동시 연재>

이야기 바다에 빠지다

 

25. 괘릉과 페르시아인 무함

 

하늘이 돕다

 

 

자식 없이 선덕왕이 홀연 세상을 떴다.

몇몇 귀족들이 긴급하게

차기 왕위에 대한 회의에 들어갔다.

회의는 쉽게 끝났다.

선덕왕의 가까운 친척 김주원을 왕으로 세우기로 하고

3일 뒤 대신회의를 열기로 했다.

그때 김주원은 알천 북쪽 20리나 되는 곳이 살았다.

근데 대신회의가 있기로 한 날 새벽부터 비는 거세게 내렸다.

알천 물이 빠르게 불었다.

그날 김주원은 알천을 건너지 못했다.

“하늘이 그를 돕지 않는 게 분명하오이다.”

“누구도 하늘의 뜻을 거스를 순 없소.”

그치지 않는 비를 내다보며 대신들이 김주원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제 생각도 그러하오이다. 그분 대신 지금 여기 계신 상대등 김경신은 어떠하오? 돌아가신 왕의 사촌 동생으로 덕망이 높고 인품이 깊소이다. 상대등 김경신을 왕으로 추대함이 어떨는지요?”

대신 아찬이 좌우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아찬의 말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시면 김경신 상대등을 선덕왕의 차기 왕으로 결정하나이다.”

결정은 그렇게 났다.

회의를 마치고 어전을 나오자, 비는 그치고 기다렸다는 듯 해가 쨍 났다.

“만세! 만세! 만세!”

모두 만세를 불렀다.

이렇게 하여 상대등 김경신이 김주원을 물리치고

신라 38대 원성왕이 되었다.

 

왕의 고민

 

 

왕은 왕이 되지 못한

김주원이 불편해 경주로부터 멀리 떨어진 명주 군왕으로 보냈다.

그러나 경주엔 왕에게 불만을 가진 그의 장성한 아들이 셋이나 있었다. 그리고 김주원을 따르는 대신들과 귀족들도 많았다.

그때 왕의 눈에 들어온 이가 있었다.

왕의 호위대인 페르시아 사람 무함이었다.

그는 페르시아 사람들로 구성된 해금서당의 일원이었다.

워낙 특별해 왕의 눈에 띄었다.

붉은 곱슬머리에 부라리듯 불거진 눈, 파란 눈빛, 우뚝한 코, 얼굴을 뒤덮는 턱수염, 떡 벌어진 양어깨와 터질 듯이 불끈 솟은 팽팽한 팔뚝과 굵은 주먹.

그러나 들여다볼수록 여리고 착했다.

왕이 그를 가까이 불렀다.

“구서당에 들어온지 몇 년이나 되었는고?”

구서당이란 옛 백제 사람, 옛 고구려 사람, 옛 말갈 사람,

신라에 퍼져 살던 페르시아 사람들로 구성된 왕의 호위대다.

왕의 말에 무함이 정중히 대답했다.

“10년이 되었나이다. 마마.”
목소리가 우렁우렁했다.

“그대를 짐의 호위대장으로 명하노니. 짐의 안위를 그대에게 맡기노라.”

대신들은 이 외래인에게 호위대장을 임명하는 왕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왕은 그가 필요했다.

궁궐 안에 이리저리 끈이 닿아있는 내부 세력보다

그들과 거리가 먼 무함이 믿음직했다.

 

 

한쪽엔 무함, 한쪽엔 독서삼품과

 

 

기어이 일이 터졌다.

불안 불안 하던 김주원의 둘째 아들 김헌창이 왕의 자리를 넘보는 난을 일으켰다.

이른바 ‘김헌창의 난’이었다.

그러나 왕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왕의 곁에는 무함이 있었다.

무함은 호위대를 이끌고 가 가벼이 진압하였다.

이듬해, 셋째아들 김범문이 또 난을 일으켰다.

이른바 ‘김범문의 난’이었다.

아버지의 빼앗긴 왕좌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왕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왕의 곁에는 무함이 있었다.

무함은 충직했고, 가벼이 난을 진압하였다.

 

어느 해는 우박이 내렸고, 어느 해는 가뭄이 들었고, 어느 해는 지진이 났고,

어느 해는 일식이 있었다.

791년 10월엔 눈이 3척이나 왔다.

이에 왕은 6만석의 곡식을 내어 백성들의 배고픔을 달랬다.

왕은 나라를 새롭게 일으켜 세우기 위해 독서삼품과라는

신라 최초의 과거제를 실시했다.

주로 논어 문선 예기 효경 등의 유학을 제대로 공부했는지를 평가하여

때묻지 않은 새로운 관리들을 뽑았다.

왕은 정치 싸움에 물든 낡은 인물들을 멀리 하고

젊은 관리들과 자연히 나랏일을 의논하였다.

이제 왕은 한쪽으로는 ‘색목인’ 무함과, 한쪽으로는 독서삼품과로 뽑힌

새 인물들과 불안한 나라 분위기를 헤쳐나갔다.

 

 

무함이 괘릉을 지키다

 

 

왕은 장남 김인겸을 태자로 정하였다.

그러나 태자가 세상을 떴다.

둘째아들 김의영을 다시 태자로 봉하였다.

그 역시 세상을 떴다.

셋째아들 김예영을 다시 태자로 봉하였다.

불행히도 그 역시 세상을 떴다.

왕은 장남 김인겸의 아들 준옹을 태자로 봉하였다.

 

그리고 798년 12월,

왕은 즉위 13년만에 무함과 독서삼품과로 나라를 잘 다스린 끝에

아쉽게도 세상을 떠났다.

“저 세상에 가신 왕을 제가 끝까지 지켜드리겠나이다.”
무함이 나섰다.

대신들이 의로운 무함의 충절에 대해 의논했다.

왕을 괘릉에 모시고

무덤 앞에 호위대장 무함을 돌로 세워

만세토록 왕을 지키게 해 주었다.

붉은 곱슬머리에 부라리듯 불거진 눈, 파란 눈빛, 우뚝한 코, 얼굴을 뒤덮는 턱수염, 떡 벌어진 양어깨와 터질 듯이 불끈 솟은 팽팽한 팔뚝과 굵은 주먹.

그러나 들여다볼수록 여리고 착한 무함.

무함은 그렇게 무인석이 되어 살아서도 죽어서도 원성왕을 호위하며

괘릉을 지키게 되었다.

나쁜 마음을 먹은 그 누구도 범할 수 없도록

세세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