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그 놈의 술이 뭐길래

권영상 2016. 9. 21. 18:18

그 놈의 술이 뭐길래

권영상




지금도 그 기사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온다.

3.40대 남성 셋이 응급구조헬기에 올라가 장난을 쳤다. 술 한 잔씩을 하고 내친 김에 대학 병원 헬기에 뛰어올라 즐겁게 놀았다. 뛰어놀기만 한 게 아니라 프로펠러에 매달려 그네를 타듯 재미나게 놀았다. 얼마나 잘 놀았는지 프로펠러 구동축이 다 휘어졌다.

9시가 넘은 밤, 그들은 철없는 아이들처럼 좀 특별하게 놀았다. 그 바람에 헬기 수리비 25억을 물어내게 되었다.



그들 중 한 명은 현직의사이고, 둘은 일반직장인이란다. 그러니까 이들 모두 세상 물정쯤은 충분히 알만한 어른들이다. 그들도 집에 가면 아이의 아버지거나 아내의 남편임이 분명하다. 그들도 누가 헬기 위를 뛰어다니면 제지할 줄 아는 이들일 테고, 응급구조헬기가 뭔지 다 아는 이들이다.

그런 그들이 이 풍진 세상일을 까맣게 잊고 천진난만하게 놀았다. 거추장스러운 현실을 다 잊고 놀 줄 아는 그들이 오히려 재미있게 느껴지는 건 뭣 때문일까. 이건 결코 그들을 조롱하거나 비웃거나 비아냥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리 술을 마셨대도 그렇게 한순간 철없는 아이들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알고 싶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일을 가지고 “술에 취해 장난했다”고 했다. 거기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를 했거나 숨바꼭질이나 매달리기 시합을 했을지도 모른다.

실로 술은 위대하다. 냉엄한 현실을 딱 잊게 만든다. 그리고 위엄 있는 아버지를 한순간에 장삼이사와 같은 평범한 인물로 만들고, 뭇사람을 배꼽잡고 웃게 만든다.





예비군 훈련장은 주로 산속 외진 곳에 있다. 훈련을 마치고 떴다방 주점에서 한잔씩 술을 걸친 두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며 시골길을 흥겹게 달렸다. 뒷자리에 앉은 친구는 박수까지 쳐가며 노래를 불렀다. 얼마쯤 달려왔을까. 조용했다. 돌아다보니 친구가 없어졌다.

달리는 오토바이에서 사람이 떨어졌다면 크게 다쳤을지도 모른다. 허겁지겁 오토바이를 돌려 오던 길을 되돌아 달려갔다. 한참 만에 오토바이에서 떨어진 친구를 길옆 들깨 숲에서 찾았다. 돌부리에 채어 오토바이가 들썩, 할 때 위로 날아올라 들깨 숲에 떨어졌다. 그걸 알 리 없는 술취한 친구는 거기가 오토바이 뒷자린 줄 알고 여전히 엉덩이를 들썩대며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더란다.



내가 근무하던 직장에 술을 좋아하시는 분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그분을 잘 아는 학생 하나가 사무실로 달려와 소리쳤다.

“저기 육교에 수학선생님이 잠자고 있어요.”

그곳으로 달려간 우리는 그가 잠자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육교 난간에 윗도리를 벗어 가지런히 걸어놓고, 신발이며 양말도 벗어 얌전히 옆에 놓고 그리고 바르게 누워 자고 있었다.

나중에 그분이 정신을 차렸을 때 물었다. 왜 하필 거기서 잠 잤느냐고? 그분이 말했다. 자신의 아파트가 2층인데 2층에 올라왔으니 거기가 집인 줄 알았다는 거다. 그러니까 집에서 하던 대로 아내에게 혼날까봐 옷을 벗고 신발을 벗고 누워 잤던 거다.



내가 술 한 잔을 하고 전철에서 내려 흥얼흥얼 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누가 나를 보고 ‘참 보기 좋네요.’ 그랬다. 얼핏 정신을 차려보니 아내였다.

‘보기 좋지?’하고 되묻자 아내가 실소했다.

“이렇게 윗도리를 뒤집어 입고 전철을 타고 왔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보기 좋았을까?”

그 밤에 나는 술자리에 벗어둔 옷을 뒤집어 입고 집까지 왔었다.

술 한 잔이 만들어낸 철없거나 어처구니없는 장난이 아니고 뭐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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