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도시는 연인처럼 나를 슬프게 한다

권영상 2015. 10. 15. 16:12

도시는 연인처럼 나를 슬프게 한다

   권영상

 

 

 

 

도시가 당신을 즐겁게 하는가? 나는 선뜻 대답한다. 그렇다. 도시는 아름답다. 햇빛 좋은 날, 문득 강남대로나, 압구정동을 걸으면 나도 모르게 그런 느낌에 사로잡힌다. 어느 한가한 일요일, 도심의 거리를 걸을 때면 내가 이국의 수도를 걷는 착각에 빠진다.

하늘로 치솟은 빌딩들과 그들이 내뿜는 위용, 그들은 나른한 내게 늘 짜릿한 긴장감을 안긴다. 그래서 내가 팽팽해진다. 길이 터지도록 붐비는 사람들, 빌딩에 박힌 현란한 엘씨디 전광판과 그 위를 스치듯 달려가는 광고물들. 그런 도회를 걸을 때면 커피가 그립다. 달콤한 커피보다 정신을 날카롭게 하는 자극적인 커피 한 잔.

 

 

 

나는 커피솝 문을 밀치고 든다.

컬러풀하게 머리를 염색한 청춘들, 콧대를 높이고 광대뼈를 깎고, 어느 잘 나가는 배우를 연상케 하는 얼굴의 젊은 여자들과 섞여서 커피를 먹는 일은 즐겁다. 발칙한 이 시대 문화의 한축에 서 있다는 짜릿함에 사로잡힌다. 내가 입은, 찢어진 청바지의 교묘한 패션을 드러낼수록 흥미 있어지는 커피솝 분위기가 나는 좋다. 너절한 내 상의, 보기좋게 껍질이 벗겨진 구두, 무거운 첼로협주곡이 흐르든가 첼로가 끝난 뒤, 난데없이 묵은 정신을 확 깨는 째즈가 귀를 쑤셔도 좋겠다. 커피 한잔을 놓고 흐리멍텅한 눈으로 창밖을 본다. 젊은 사내가 젊고 섹시한 연인을 껴안고 그의 이마에 키스를 한다. 그들의 솔직하고 자유로운 입술에서 나는 눈길을 떼지 못한다.  

 

 

 

커피를 마시고, 스마트폰을 연다. 진하고 뜨거운 포옹이 있는 느와르 영화 한편을 예약한다.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배우가 등장한다면 좋겠다. 혹 낯익은 배우가 등장한다 해도 좋다. 컴컴한 극장 안에서 나도 스크린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총질을 한다. 비명을 지른다. 그러고 쿨하게 영화관을 나설 때 알맞게 휴대폰이 운다.

 

 

 

술 한 잔을 하자는 전화다. 도시는 알맞춰 술을 마실 수 있어 좋다. 나는 달려가 그들과 어울린다. 마누라가 어떻고, 인생이 어떻고, 공부 싫어하는 아들이 어떻고, 외제차가 어떻고, 골프가 어떻고...... 나는 이제 나와 전혀 상관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안주삼아 그들과 말을 섞는다. 그런 안주 끝에 나오는 막장 안주가 있다. 강원도 어느 산장에서 누가 성접대를 받았다는 이야기들로 마감을 친다. 

술이 끝나면 노래방으로 달려나가 ‘봄날은 간다’를 소리쳐 부르는 사이 바깥엔 봄이 깊숙이 들어온다. 술을 깨운다며 일부는 찜질방에 가고 나는 집에 들어와 술에 젖은 잠을 잔다.

 

 

 

도시가 당신을 슬프게 하는가? 그 말에 나는 선뜻 대답한다. 그렇다. 도시는 나를 즐겁게도 하지만 또 나를 우울하게도 한다. 

나는 도시가 만들어내는 모방과 소비성에 휘둘린다. 스마트폰이 나를 편리하게 해 주지만 나는 그가 인도하는 대로 친구들과 마음에 없는 대화를 한다. 나는 도시가 만들어내는 욕망을 쫓으며 산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보다 바깥의 현란한 문화에 눈을 빼앗긴다. 도시는 연인처럼 나를 즐겁게도 하고, 때로는 나를 한없이 슬프게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