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었느냐
권영상
교대역에서 잠실 방향 2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인파에 묻혀 통로를 따라가고 있었다. 아침이 늦은 시간인데도 환승역답게 북적였다. 나도 그들 대열에 끼어들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다. 갑자기 행렬의 걸음이 느려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저쯤 대열 앞에 길을 멈추고 서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느린 행렬이 그들을 사이에 두고 두 갈래로 나뉘어지더니 다시 빠르게 이동했다.
두 사람이란, 얼핏 보아도 알 수 있는 늙수레한 아들과 그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있는 구순은 되어 보이는 노모였다.
나이 많은 아들은 이 붐비는 인파속에 우두커니 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그분의 늙은 어머니는 아들의 손을 잡고 걱정스레 그 아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그 두 사람 옆을 막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길을 잃었느냐?”
나이 많으신 어머니가 늙수레한 아들에게 물었다.
인파 속이었지만 노모의 목소리가 내 귀에 똑똑하게 들렸다.
“어딜 가려는데 그러시죠?”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두리번거리는 아들에게 물었다.
중절모 아래에 비친 그분의 나이가 얼핏 보아 일흔은 되어 보였다.
“이 사람이 그만 길을 놓쳤다오.”
나이 많으신 어머니가 손을 꼭 잡은 아들을 가리켰다.
그제야 아들이 ‘거시기, 사당으로 가면 아들놈이 나온다 했는데, 했다.
여기서 사당이면 내가 가는 길과 반대 방향이다. 방향을 알려 드리기만 해서는 찾아가실 수 없을 것 같았다. 치과에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는 길이니까 크게 바쁠 것 없는 나는 그분들이 걱정 없이 타실 수 있도록 사당행 승강장까지 모셔다 드렸다.
“아, 이거 초면에 고맙구려.”
나이 일흔의 아들이 중절모를 벗더니 허리를 굽혀 내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그 늙으신 어머니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노모가 아들의 등 뒤로 얼굴을 내밀어 나를 보았다. 나는 그분에게, 그분의 아들이 내게 하신 것처럼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리고 돌아섰다.
거기서 돌아와 잠실행 전철에 올랐다.
다행히 자리가 있어 앉으려니 인파 속에 서 있던 그 구순 노모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들의 손을 꼭 잡고, 걱정스런 눈으로 그 아들을 쳐다보던 노모는 그 늙은 아들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길을 잃고 선 아들이 걱정이었을 테다. 아들이 나이가 많아 일흔을 먹었대도 어머니에게 있어 아들은 철없는 아들이다.
지상과 달리 여기는 방향감도 어둡고, 길도 낯선 곳이다. 그런 길 앞에서 믿었던 아들이 길을 잃고 멈추어 섰을 때, 그때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할까. 나이 어릴 때부터 아들에게 살아가는 길을 가르쳤고, 나이 들어 든든히 제 길을 헤쳐 가는 아들을 보며 마음을 놓았을 텐데 지금은 아니었다.
이제 이 낯선 도시에서 그 어머니가 늙은 아들에게 가르쳐줄 길이란 없다. 그 때 나는 어머니의 눈에 어리던 걱정과 근심의 빛을 보았고, 그 빛이 어쩌면 나를 멈추어 세웠을지 모르겠다.
지하전철의 바깥, 바람 많은 지상에도 지금 갈 길을 잃고 선 늙은 아들들이 많다. 오랜 옛날, 배고프고 가난한 고향을 떠나 자신의 길을 헤쳐 왔으나 이미 나이를 먹을 대로 먹은 분들이 그들이다. 인생을 여기까지 살아온 수많은 그분들이 이제 갈 길을 잃어버린 채 망설이고 있다. 자살률 중에서도 6,70대가 가장 높다는 것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길을 잘 가고 있느냐?”
눈을 감고 가는 내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낯익은 목소리다. 아버지다. 예전, 아버지만큼 나이를 많이 먹은 내게 아버지가 바람처럼 허전한 목소리로 물어 오신다. 아버지 보시기에 나이 육십을 넘긴지 오래된 나의 걸음걸이가 여전히 위태롭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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