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강아지를 품에 안은 그녀

권영상 2015. 10. 3. 12:05

강아지를 품에 안은 그녀

권영상

 

 

 

아침 시간이다. 동네산에 오르기 위해 샘물터쯤 갔을 때다. 줄을 맨 강아지를 데리고 모 교육원 방향의 산길로  타박타박 걸어가는 여자가 있었다. 내가 아는 그쪽 방향엔 그 교육원 이외에 강아지를 데리고 갈만한 곳이 없다.

나는 이 낯선 풍경에 놀라 멈추어 선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단정한 뒷모습만으로도 그녀가 20대 중반, 미혼임이 느껴졌다. 다들 한창 출근을 하느라 길 위에서 허둥대고 있을 아침 시간. 그 시간에 그녀는 강아지를 데리고 한가한 걸음으로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갈림길에서 나는 그녀와 헤어졌다.

 

 

 

요 며칠 전에도 이 산에서 그녀를 만났었다. 그때에도 말끔한 웃옷에 요즘 젊은 여자들이 즐겨 입는 핫팬츠에 한눈에 띄는 가방을 메고 있었다. 그날은 오늘과 달리 강아지를 데리고 산언덕에서 샘물터 쪽으로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뒤를 따라 걷는 내 눈에 그녀의 종아리가 보였다. 풀모기에 물렸는지 종아리 여기저기에 긁은 자국이 붉게 나 있었고, 그녀의 천천히 걷는 발 앞엔 하얀 애완용 강아지가 주인의 걸음을 맞추고 있었다.

 

 

 

샘물터쯤에 이르자, 그녀는 먼지투성이 강아지를 가슴에 안았다. 그러더니 샘물터 운동기구에 기대어 섰다. 가야할 곳을 잃어버린 듯 했다. 이미 이 산 입구에도 저녁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를 벗어나면 버스 정류장인데 그녀는 그만 거기에서 멈추고 말았다.

이쯤 오다가 흘낏 돌아다봤지만 그녀는 거기 덩그런 운동기구 옆 샘물터에 아직도 홀로 서 있었다. 강아지를 안은 채.

 

 

 

그 무렵,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품에 안은 하얀 강아지뿐인 듯 했다. 강아지를 놓는 순간, 아니 강아지를 잡고 있는 줄을 놓는 순간 그녀는 이 세상에 홀로 남는 섬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건 그녀가 거기 샘물터에서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를 기다리는 집이야 있겠지만 어쩌면 그곳은 잠시 정박하는 곳. 이미 그녀의 정신은 이 세상의 보편적인 관념이나 상식에서 떠나 먼 곳을 떠돌고 있는 듯 했다.

 

 

 

 

얼핏 보아도 알지만 그녀는 말쑥했다. 젊은 여자들이라면 부러워하는 날씬한 다리맵시와 늘씬한 키, 그리고 잘 받쳐주는 반듯한 얼굴. 세간의 젊은 여성들이 비용과 시간을 투자하여 가꾸어가는 몸을 다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이 부족한가. 세상이 주는 스트레스를 견뎌내지 못한 듯 했다. 과도한 학벌주의에 내몰리고, 경쟁주의에 휘둘리느라 받은 스트레스, 그 스트레스가 가한 충격에 잠시 정신의 끈을 놓쳤을지 모르겠다.

 

 

 

사위가 점점 어두워가는 가을 저녁이었다.

나는 나의 처소를 찾아가느라 남부순환로의 건널목을 건넜다. 이 길을 건너면 나도 밥벌이를 위해 고단히 직장을 쫓아다니던 그 엄혹한 땅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 길을 건너지 못하고 망설이는 20대 젊은 그녀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사람과 부딪히며 섞여 사는 일이 사회생활이며 그게 곧 당연한 사람살이가 아니냐고 말할 이들도 있겠지만 그런 쉬운 일도 힘에 버거워하는 이들이 있다. 술 마시는 세상의 행복을 노래하는 이들도 있지만 술 한 모금으로도 괴로워하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 사람 중에는 ‘그 까짓것’ 하는 작은 충격에도 온몸으로 쓰러지는 이들이 있다.

그때 나는 그녀와 그렇게 만났다가 헤어졌다.

 

 

 

한 바퀴 산을 돌고 부지런히 내려올 때다. 비가 내렸다. 남부지방에 돌풍을 동반한 비가 내린다던 그 비가 지금 여기에도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비를 맞으며 산을 내려오다 운동기구가 있는 샘물터에서 다시 그녀를 만났다. 그녀도 강아지를 품에 안고 비를 맞고 있었다. 퇴근도 아닌 이 비 내리는 아침 시간, 산속에서 더 이상 머물 곳이 없어 그녀도 여기까지 내려온 모양이다. 갈 곳을 잃은 사람처럼 그녀는 빗속에 서 있었다.

 

 

 

나는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돌아와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요새 그런 애들 많아.”

아내는 서른 살 딸을 둔 직장 동료의 고통스런 일을 이야기를 했다. 동료의 딸도 하루 종일 제 방에서 인형과 이야기하고 인형하고만 밥을 먹는다는 이야기였다.

사람 사는 세상이 다 그런 거지, 하고 넘기고 말면 말 일이지만 마음이 착잡했다. 대체 국가라는 것이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건지, 경제성장이라는 명분으로 밤낮없이 사람을 경쟁시키고 좌절케 하고 분노케 만드는 건 아닌지........

 

 

 

일어나 창밖을 내다본다.

오랜만에 오는 비지만 반갑기 보다는 마음을 번잡하게 한다. 이쪽 세상으로 오는 길을 건너지 못하고 망설이던 그녀가 혹시 오늘 이 시대 청년들의 우울한 모습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