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18억 로또복권의 비극

권영상 2012. 8. 24. 08:54

 

 

 

 

18억 로또복권의 비극

 

 

모 일간지에 ‘비극으로 끝난 로또 인생역전’이라는 기사가 났다. 너무도 뻔한 비극일테지만 또 궁금했다.

역시 슬프지만 뻔한 줄거리다.

 

 

38살의 남자가 23억 로또에 당첨됐다. 세금을 뺀 18억을 쥔 남자는 쭉해 오던 식당문을 닫고 유흥업에 손을 댔다. 하는 족족 실패했다. 사기도 당했다. 그 바람에 본디 가지고 있던 재산까지 날리고도 모라자 주변에 손을 벌려 돈을 빌리기 시작했다. 마침내는 가정불화로 부인과 이혼, 자녀들과 별거. 그 후, 동네 목욕탕에서 자살했다는 내용이다. 로또에 당첨되어 하루아침에 돈벼락을 맞았지만 결국 그 돈벼락에 의해 당첨되기 이전보다 못한 비극에 빠지고 말았다. 1년에 300여 명씩 1등에 당첨된단다. 그들의 당첨인생은 어떠할까?

 

 

내게 만약  1억이 생긴다면 우선은 좀 낡은 컴퓨터를 바꿀 거고, 숲에서도 글을 쓸 수 있는 노트북도 하나 장만하고 싶다. 집사람에게 옷이라도 몇 벌 사주고 싶고, 해외여행도 나가고 싶다. 그러고도 남으면 고향 친척들의 학비를 대어주었으면, 하고 싱거운 공상을 해본다.

그런데 만약 18억을 한꺼번에 손에 쥔다면 그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요 몇 달 전이다.

이웃학교에서 일어났다는 로또 복권이야기가 술자리에서 나왔다. 그 학교도 방학식을 마치면 가까운 교외에 나가 점심을 먹고 그간의 노고를 풀고 헤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런 이유로 여름 방학식이 끝나자, 버스 한 대를 빌려 가까운 교외로 친목행사를 떠났단다. 바로 그 버스 안에서였다. 마이크 줄을 풀어 돌아가며 앉은 자리에서 노래도 부르고, 또 우스개 이야기도 하면서 모처럼의 해방 시간을 즐길 때였다.

기분이 좋아진 친목회장이 일어나 마이크를 잡고 익살을 떨었다.

 

 

“분위기도 무르익고, 또 그간에 아이들을 가르치시느라 수고도 하셨으니 저 친목회장이 선생님들께 1억원씩 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킬킬거리며 천 원짜리 즉석 로또복권을 돌렸다. 근데 문제는 거기서 터졌다. 복권을 열어보니 버스에 탄 28명 중에 무려 4명이 백만 원 이상에 당첨이 됐다는 거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많게는 2천만원 당첨도 있었다. 갑작스레 일이 생겨 대리로 온 운전기사에게도 심심하실 테니 한 장 받아보시라고 드렸는데 그마저 당첨이 되었다.

 

 

처음엔 와! 와! 환호를 지르며 다들 기뻐했다. 근데 그도 잠시,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점점 얼어붙기 시작했다. 말썽많은 ‘큰돈’이 난데없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당첨이 된 4명과 당첨되지 못한 24명.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버스 안의 분위기는 묘해져 갔다. 목적지에 다다라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다시 학교로 돌아왔고, 기분좋게 헤어진 게 아니라 교무실로 가 밤 늦게까지 회의에 들어갔단다. 이 뜻밖의 돈벼락 때문에.

 

 

“친목회비로 산 복권이니까 당첨된 사람은 당첨금의 50퍼센트를 친목회에 기부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 합니다. 친목회원이면서 학교 사정으로 함께 동행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서도 그게 마땅할 것 같습니다.”

로또복권을 돌릴 때는 기분좋게 1억원씩 드리겠다고 떵떵거렸던 친목회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회의를 시작했다.

그러자 버스기사가 대뜸 당첨금 백만 원 중 오십만 원을 내놓겠다고 했다. 5백만 원에 당첨된 두 분의 교사도 각각 반액을 내놓겠다고 했다. 근데 2천만 원에 당첨된 교사가 문제였다. 당첨금의 반액이라면 그이는 천만 원을 내놓아야 했다.

 

 

“전직원이 다 참여하든 안 하든 이건 제게 온 행운입니다. 반환할 수 없습니다.”

갑론을박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회의가 길어질수록 당첨된 사람이나 안 된 사람이나 당첨금에 대한 집착만 커져갔다. 내는 게 좋겠다, 낼 수 없다. 복권을 산 사람이 친목회장이니 그의 행운도 고려해야 하지 않느냐? 아니다. 친목회장이 샀다는 그 돈은 친목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낸 친목회비다.

오랜 회의 끝에도 2천만원에 당첨된 분은 끝내 기부를 거부하고 말았다.

 

 

모임을 끝내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내내 내 생각은 즉석복권에 가 있었다. 당첨된 그 행복한 순간에 반액을 요구했다면 그분도 선뜻 냈을지 모른다. 당첨이 된 후 점심을 먹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은 너무 길었다. 그 시간 동안, 당첨금으로 낡은 냉장고를 개수하고, 벼르고 별렀던 좋은 옷 한 벌을 사고, 아이 학원비를 내고, 해외여행을 가고.....

그 사이 그 2천만원 쓸 데가 다 계산 되었다. 어쩌면 당첨금 2천만원이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태에서 ‘내 손의것’ 천만 원을 내놓으란 요구는 잔인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로또복권으로 얻은 횡재라 해도 천만 원을 기분좋게 ‘여기!’ 하고 내놓을 수 있는 일이 과연 쉬울까.

 

사람이 돈 앞에서 그렇게 나약해짐을 본다. 그런데 2천만 원도 아니고 18억을 한꺼번에 손에 쥔 사람의 심정은 어떠할까. 아내도 버리고 자식도 버리고, 자신의 목숨조차 버리고 간 한 로또복권 당첨자의 비극적 인생을 오늘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