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창공원에서 만난 뭉게구름
권영상
오후 4시 20분.
교문을 나서자 문득 효창공원이 생각난다. 퇴근길을 바꾸어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효창공원은 학교 근처에 있다. 십여분 거리다. 만리시장의 끝길을 걸어올라 골목길을 타고 다시 내리막길을 간다. 경사가 완만해 걷기가 좋다. 길갓집들 대문 위에 얹어놓고 기르는 화분을 보며 걷는다. 옥잠이며 철쭉, 가시오가피나무, 용설란, 채송화..... 파란 대문집 담장 위엔 금낭화가 예쁘게 피고 있다. 길을 멈추어 분홍 금낭을 일없는 사람처럼 하나, 둘, 서이, 너이, 다, 여.... 하며 세어본다.
“뭐 그런 것까지 시어 보시느라고.”
그 집 늙으신 주인 할머니가 나를 쳐다보신다. 대문 앞 계단 위에 앉아 풋마늘을 맨손으로 까신다.
“참 예쁜 꽃입니다.”
내가 인사삼아 입을 열었다.
“그놈이 산중에서도 깊은 산중, 맑은 물가에서 피는 것인디 당연히 곱잖구요.”
할머니 말씀이 참 옳다.
“거 뭣이냐. 볼 거라믄 그것보담 저기 저것이 볼 것이지요.”
몸은 서울에 와 앉았어도 할머니 말마디에 남도의 사투리가 배어있다. 나는, 마늘 한 통을 쥐고 가리키시는 할머니의 손끝을 봤다. 할머니가 앉아 계시는 맞은 편 집 3층 옥상 위다. 옥상 빨랫줄에 벌써 어린 조롱박들이 소낙비 끝의 빗방울처럼 조롱조롱 매달렸다.
“아유, 참 잘 생긴 조롱박이네요! 말씀대로 참 볼만합니다.”
나는 할머니 말씀에 맞장구를 쳐드리려고 좀 들뜬 목소리로 놀라워했다.
“아, 조롱박은 무신!”
뜻밖에도 할머니가 내 말을 내무지르신다.
“그럼, 그 볼 거라는 게 뭐지요? 어르신.”
나는 좀 무안했다. 그러나 떠나지 않고 오히려 허리를 낮추어 할머니 곁에 다가갔다. 그리고는 할머니가 가리키셨던 그 3층 옥상 위를 쳐다보았다.
“제가 좀 둔해서 그런가요? 그 볼만하다는 걸 못 찼겠습니다.”
나는 좀 장난스런 목소리로 다시 여쭈었다. 옥상 위에 있는 건 기껏 그 하얀 무명천의 빨래와 조롱박순과 조롱박뿐이다. 있다면 둘둘 말아 세워놓은 비닐 장판지와 나무막대기뿐.
“여기 이 늙은이 곁에 앉아 좀 올려다 보시우.”
할머니가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리신다.
나는 할머니가 앉아계신 대문 계단에 엉덩이를 대고 앉았다. 답을 찾지 못해 쩔쩔매는 아이마냥 옥상 위를 살폈다. 할머니는 고개를 숙여 마늘을 까며 혼잣말을 하듯 나를 타이르신다.
“그 너머 흰 구름과 빨래가지들이 어쩜 그리도 잘 어울리는지 한번 보시우. ”
“아아!”
그제야 나는 보았다.
빨랫줄 너머 하늘에 뭉게구름이 뭉게뭉게 피고 있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바람에 나붓대는 흰 빨래와 부풀 듯이 솟구쳐 오르는 뭉게구름. 나는 뒷통수를 맞은 듯 했다. 할머니는 그걸 보고 계셨는데 나는 조롱박 타령이나 했으니 부끄러웠다.
“거 뭐, 늙은이가 볼만 하다는 게 뭐 별 거 겠수.”
할머니는 마늘통을 가지러 대문 안으로 다시 들어가셨다.
나는 거기 앉은 채 나풀거리는 무명빨래와 뭉게뭉게 피는 뭉게구름을 보다가 일어나 발길을 옮겼다.
효창공원 후문에 들어섰다.
오른쪽으로 난 오솔길을 나도 따라 걸었다. 이 도회에 들어와 산 지 꽤 오래됐다. 오래 살면서 잊으며 산 게 있다. 하늘을 보는 일이다. 하늘 보는 일을 오래도록 잊고 살았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번듯번듯한 빌딩이나, 현란한 광고, 음식점이나 외국브랜드의 커피점 간판, 그것도 아니면 언제나 차들로 가득가득 차 있는 길거리. 내 눈은 그런 것에 시선을 빼앗기며 사느라 정작 바라보아야 할 하늘을 아예 잊고 살았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흰 무명 빨래와 뭉게구름.
사람의 시선을 빼앗을 만큼 빼어난, 그야말로 ‘볼만한 게’ 아니다. 모던하지도 않고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들도 아니다. 지나치자면 그냥 지나치고 말 것들이다. 오랫동안 이 도시에서 살아오느라 나는 그런 것에 눈을 둘 겨를이 없었다.
그런 저런 생각으로 오솔길을 걷는다. 가뭄 탓에 발을 내디딜 때마다 먼지가 뽀작뽀작 인다. 오솔길 초입에 조릿대숲이 있다. 그 곁을 지나고, 무명용사의 비를 지나고, 때죽나무 숲길을 지났다. 대한노인회 회관 건물을 지나 산뽕나무 아래를 걸어 내 발은 그 위쪽 김구선생 묘소 앞에 섰다.
십 분 거리에서 이 분을 만날 수 있다는 게 행복 중에 행복이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점심을 먹고 잠깐 들러가기 좋은 곳이다. 여기에 와 잠깐 서 있다 가는 것만도 머릿속이 깨끗해진다.
묘소 주변의 도래솔과 그 너머의 소나무들이 초록으로 짙어간다. 나는 묘소 이쪽에 있는 오래된 팽나무 그늘 끝에 앉았다. 두 팔을 뒤로 하고 편하게 허리를 젖혔다. 그때 내 눈에 뻥 뚫린 하늘이 들어왔다. 아까 그 할머니 댁 대문 앞에서 보던 뭉게구름이 숙명여대 건물 위로 피어오르고 있다. 목화솜처럼 희고 부드러운 구름이 파아란 하늘을 밀어올리며 부풀어 오른다. 도심 속에서 만나는 고향의 아득한 풍경이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려니 가슴에서 그리움이 인다.
‘아, 이 그리움이었구나.’
나는 중얼거렸다.
그 할머니께서 볼만하시다는 것은 어쩌면 뭉게구름이 아니라 그리움이었을지도 모른다. 볼만하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 그 너머의 세상살이의 아쉬움과 서러움과 허전함이 깔려 있을 때 더욱 목말라지는 법이다. 보이는 것은 서울 하늘의 구름이지만 그 뒤에는 더욱 큰 고향의 향수어린 하늘이 있었을 것이다.
바람도 없는데 풀 마르는 냄새가 난다.
둘러보니 잔디를 깎은 흔적이 있다. 여기저기 깎여난 풀이 남아 있다. 풀 마르는 냄새가 좋다. 예전 고향에서 아버지가 쇠꼴을 베어와 마당에 말리실 때 맡아보던 그 향깃한 풀냄새다. 고향은 여전히 잘 있을까? 거기 호수를 끼고 살던 사람들이며, 호수 위로 날아오던 철새들이며, 사철 푸른 소나무들이며, 긴 사래를 타고 감자김을 매던 들판이며, 정금이, 신해, 덕자, 종무, 명순이는 지금 어떤 여자가 되어있을까.
풀 마르는 향기가 다시 사라진다. 일어나 코를 벌름거리며 여기저기 걸어본다. 바로 여기다. 이쯤 이 허공에서 다시 마른 풀냄새가 난다. 냄새 기둥이 연한 바람에 이동을 하는 모양이다.
그때, 가방 속에서 휴대폰 문자메시지 수신음이 울린다.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연다.
“서귀포 바다위로 피는 뭉게구름, 방금 서울로 올려 보냈습니다.”
가끔 유채꽃 소식이며, 추자도 보리밭 소식을 사진으로 글로 보내주는 제주에 사시는 시인이다. 참 반갑다. 여기 이 공원 잔디에 앉아 그 먼데 있는 제주의 뭉게구름 소식을 들을 수 있다니! 나는 지난 해 올레 7길을 걸으며 바라보던 서귀포 앞 바다를 떠올린다. 바다를 끼고 도는 소나무길과 바다속에 저만큼 꿈처럼 머물러있는 밤섬과 작은 다른 섬들. 그리고 그 먼 남태평양으로 열려있는 바다 위로 뭉게뭉게 솟구쳐오르던 뭉게구름.
“뭉게구름 고맙게 잘 받았습니다.”
나는 더듬거리는 손으로 메시지를 적어 ‘전송’을 눌렀다. 지금쯤 그이의 휴대폰에 내 문자가 도착했다는 수신음이 울리고 있겠다. 그걸 상상하며 김구선생 묘소를 나선다.
이쪽, 효창운동장 쪽의 하늘로 오후의 뭉게구름이 피어오른다. 서귀포에서 방금 보내준 그 뭉게구름이지 싶다.
소나기라도 한 줄금 왔으면 좋겠다. 도시가 너무 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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