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김륭
아파트 단지로 쳐들어온 트럭에서 군인들이 통통 뛰어내렸어요.
꾸벅꾸벅 졸고 있던 경비 아저씨 허겁지겁 뒤를 쫓지만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용감한 군인들의 포로가 되었어요. 번쩍,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어요.
화단에 핀 해바라기와 나팔꽃도 파르르 겁게 질렸어요.
눈 깜빡할 새 아파트를 점령한 군인들이 807동 504호 우리 집까지 쳐들어 왔어요.
투항하라. 투항하라! 너희들은 독 안에 든 쥐다!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던 엄마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어요.
피-웅 피-웅 하늘에서 불화살 쏘아 대던 태양마저 백기를 들었어요.
수박이 왔어요! 달고 시원한 수박이 왔어요!
아파트 단지 구석구석 생쥐처럼 숨어 있던 여름이 몽땅, 잡혀가요.
-동시집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