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류병숙 시인 동시집 해설

권영상 2025. 9. 8. 11:59

<류병숙 시인 동시집 해설>

 

 

 

시는 시인의 삶의 방향을 가리킨다

권영상

 

 

길 건너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네요. 밤이어도 충전해 놓은 등불처럼 환합니다.

기울어 가는 가을, 류병숙 시인의 동시집 <모래알이 쫑알쫑알> 원고 48편을 노랗게 익어가는 은행잎처럼 만났습니다.

가을을 음미하듯 천천히 시편을 읽어나갑니다. 담담히 밀려오는 어떤 에너지의 힘 때문인지 내 안이 환해지는 걸 느낍니다. 이게 단지 은행나무의 노란 가을빛 때문일까요.

3년 전쯤 된 일 같네요.

그때 류 시인께서 보내주신 첫 번째 동시집 <모퉁이가 펴 주었다>를 다 읽고 났을 때도 어떤 에너지에 감염된 듯 내 몸이 더워지는 걸 느꼈습니다. 지금도 그때 그 3년 전의 일을 나는 또렷이 기억합니다.

보통, 시인들이 보내주시는 동시집을 받으면 ‘고맙습니다’ 하고 문자 메시지는 보내고 마는데 그때는 달랐어요. 류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죠.

시의 발상이 참 좋다. 시의 마지막 부분을 잘 마무리한다면 더더욱 좋겠다. 첫 동시집으로 자만하실까 봐 전화를 걸었다. 선배로서 이런 축하 인사를 드려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주제넘은 전화 같았어요.

한데 그렇게 전화를 드릴 수 있었던 데는 또 다른 인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서울 어느 초등학교에서 ‘작가와의 만남’ 요청이 있어 찾아갔는데 그 교실이 문학 공부에 몰두하시던 류병숙 선생님 반이었지요. 참 묘한 ‘작가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그 후 류 시인은 2004년 <한국수필>에 수필로 등단하셨죠. 2016년엔 <오늘의 동시문학>에, 2019년엔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각각 당선되셨지요.

“오늘 밤은/ 말 영양제 ‘잘’/ 세 알// 축구하러 가는/ 발에게 먹여야지.// 잘 뛰고/ 잘 자고/

잘 넣으라고.”

이 시는 첫 동시집 <모퉁이가 펴 주었다>에 실린 「말 영양제」입니다.

류 시인은 그때 벌써 ‘말’에 대한 관심을 시로 형상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 부사 ‘잘’이라는 말은 상황에 맞게 잘 쓰면 언어소통 이상의 능력을 가지는데 그런 유의 말들이야말로 ‘말 영양제’와 같다는 인식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은 에너지를 가진다. 대상을 변화시킨다, 상대를 빛나게 한다, 춤추게 한다, 행복하게 한다, 이렇게 보았던 거지요.

실제 류 시인은 <모퉁이가 펴 주었다> 머리말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나’, ‘몸’, ‘말’을 자주 시의 소재로 삼은 걸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어린이가, 어린이 몸이, 어린이 말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쪽으로 제 생각이 기울어 있었다고요.

에너지원이었던 말 ‘영양제’가 <모래알이 쫑알쫑알>에서는 어떤 에너지로 발전해 갈지 그게 내내 궁금했더랬지요. 시인의 시의 물줄기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는지를 쭉 지켜보는 일은 분명 흥미롭고 호기심 넘치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1. 햇빛 반짝 에너지

 

 

햇빛은

통장이 필요 없겠다.

 

빌딩 유리창

강물 위

고양이 눈에

 

쪼개어

나눠주면 되니까.

 

받은 것들이

반짝거리고 찰랑이는

그게 햇빛의 통장이다.

 

    - 「햇빛의 통장」 전문

 

제1 동시집 <모퉁이가 펴 주었다>에서 긍정적인 힘이 되어주었던 ‘말 영양제’가 <모래알이 쫑알쫑알>에서 ‘햇빛 통장’으로 변형되어 나타납니다. 긍정적인 말의 영양제가 그렇듯 햇빛은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명 활동에 긍정적으로 관여하는 강력한 에너지원입니다.

햇빛은 따로 통장을 가질 필요가 없지요. 햇빛이 통장이 필요 없는 이유는 누구든 그 햇빛을 독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지요.

햇빛은 무한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공평하게 가 닿습니다. 까마득히 먼 곳에서 반짝이는 별빛도 실은 별빛이 아니라 햇빛이지요. 작든 크든 멀든 가깝든 우주에 머무는 모든 것들은 햇빛을 쓸 만큼 나눔으로써 그 질량을 유지합니다. 그것이 빌딩의 유리창 안이든 강물의 수면이든 심지어 고양이 또랑또랑한 눈망울이든 모두에게 알맞게 저장되어 생명 활동을 합니다. 누군가가 지금 반짝이거나 찰랑인다면 그건 모두 햇빛 통장을 간직하고 있다는 신호일 테죠.

읽을수록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또한 풍요롭거나 정신을 윤택하게 하네요. 이 시가 그런 힘을 발산하는 건 서로 알맞게 나누는 긍정 에너지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2. 쿠푸쿠푸 날아오름 에너지

 

 

사육상자 안

자잘한 이슬 닮은

배추흰나비 알들

 

쿠푸쿠푸 라파라파 꿈을 머금었어요.

 

사그락사그락 먹은 잎

애벌레에서

번데기,

어른벌레로

 

쿠푸쿠푸 라파라파 꿈을 준비했어요.

 

첫나들이 하늘 길

하얀 드레스 위에

실크스카프

 

쿠푸쿠루 라파라파 꿈을 입고 날아가요.

 

*헤르만 헤세의 수필 <나비>에 나오는 말로 나비가 날아가는 모습, 훨훨

 

    - 「쿠푸쿠푸 라파라파」  전문

 

다시 읽고 싶구나, 하는 충동이 일어나네요. 지친 몸이 홀가분해져 나비처럼 날아오를 것 같네요. 시는 이슬, 배추흰나비 알, 애벌레, 번데기, 어른벌레, 하얀 드레스, 실크스카프 등의 작고 가벼운, 초록이거나 하얀 이미지를 품고 있어요. 거기다가 ‘쿠푸쿠푸 라파라파’라는 나비가 훨훨 날갯짓하는 반복 이미지와 반복 운율, 또한 ‘꿈을 머금었어요.’, ‘꿈을 준비했어요.’, ‘꿈을 입고 날아가요.’와 같은 각운을 각 연의 끝에 반복 배치하여 시각적인 효과와 더불어 소리내어 읽는 운율미를 자극하네요.

‘쿠푸쿠푸 라파라파’가 무슨 뜻인지 모르고 읽는다 해도 좋고, 그게 말레이 부족들의 나비를 일컫는 말이거나 나비가 팔랑거리는 모습이라는 걸 알고 읽어도 더욱 좋은, 우리의 상상 거리를 말레이까지 날려 보냈다가 돌아오게 하는 활동은 또 얼마나 즐거운가요.

이 시가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지요.

시 속 나비가 처해 있는 상황이 우리가 처한 상황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우리가 현실이라는 갑갑한 벽에 갇혀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듯 나비 역시 ‘사육상자’ 안에서 태어나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꿈을 품고 있다는 점입니다. 꿈이란 부조리한 억압과 현실적 한계가 만들어 내는 고독한 에너지입니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의미의 깊이가 느껴지는 시입니다.

 

 

3. 말의 으쓱 에너지

 

 

살짝 파마하고

교실에 갔는데

 

-멋지다, 얘

-잘 어울려

-아이돌 닮았어

-늘 그렇게 하고 다녀

 

머리에

연달아 씌워지는

말 모자들

 

무거울 줄 알았는데

으쓱해지네.

 

   - 「말 모자」  전문

 

 

예쁘다, 사랑스럽다, 신나다, 달콤하다, 깨끗하다, 멋지다, 싱그럽다, 귀엽다, 보드랍다, 또랑또랑하다, 상큼하다, 소중하다, 빛나다…. 이런 말을 들으면 온몸이 통통 튀어 오르거나, 두 눈이 별처럼 반짝일 테지요.

배운 것 없이 들판에서 자라나는 풀이나 나무, 오소리들조차 이런 말을 들으면 생기있는 하루를 보내게 될 테지요. 앞의 동시집 󰡔모퉁이가 펴 주었다󰡕에서 류 시인이 오랫동안 천착해 온 말의 힘을 다시 만납니다.

위의 시 「말 모자」 역시 긍정적인 말이 우리에게 날아올 때 우리의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잘 보여주네요.

살짝 머리 모양만 바꾸었는데도 아이들은 ‘멋져요’, ‘잘 어울려요’, ‘아이돌 같아요!’ 그러네요. 그런 날의 호들갑스러운 교실 풍경이 한눈에 쏙 들어오네요. 이런 말을 하는 아이들이라면 모르긴 해도 엉덩이를 달싹이거나, 두 팔을 흔들거나, 달각달각 필통을 흔들거나 책상을 두드리면서 요란을 떨 테고, 선생님은 기분이 아주 좋아져 ‘오늘은 아이스크림을 쏘겠어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말은 귓바퀴에 내려쌓이면 무겁기는커녕 오히려 몸을 으쓱하게 하지요. 경쾌한 목소리로 말할 때 생기는 말의 에너지는 상대방의 행동을 멋지게 바꾸어 놓죠.

 

 

4. 경험 축적의 쫑알쫑알 에너지

 

 

2박 3일 무인도 체험하고 오자

머리 발 가방 옷에 숨어 있던 모래들

현관 거실 안방 부엌으로

뛰쳐나와

 

그 섬에

모래집 여러 채 지어놨다고

바다가 푸른 마루였음 좋겠다고

물 들어오자 설거지했다고

 

온 집안에 쫑알쫑알

나보다 먼저 이르느라

쫑알쫑알

 

    - 「모래알이 쫑알쫑알」 전문

 

읽을수록 재미난 시이지요. 그냥 재미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달달달 구르거나 퐁퐁퐁 튀어 오르거나 곤두박질치거나 미끄러지거나 놀이하듯 신이 나네요.

이 시가 운동성을 갖는 까닭은 방금 ‘무인도 체험’에서 돌아왔기 때문이죠. 무인도 체험, 그것은 호기심을 넘어 전혀 모르는 세계에 대한 신비함과 환희 또는 공포, 두려움 그리고 언젠가는 이 두려움도 끝날 것이라는 유한한 결말의 날 때문에 그 감동은 한껏 부풀어 오를 테죠.

신비한 체험을 통해 축적된 에너지는 ‘모래알’을 흥분하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집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모래알들이 가방에서 뛰쳐나옵니다. 그러고는 무인도에서 일어난 일들을 쫑알쫑알쫑알 이야기하네요. 모래집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푸른 들마루 같은 바다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바쁩니다. 이렇게 쫑알거리는 그는 누구일까요? 정말 모래일까요? 아니죠. 잠시 뒤로 물러나 자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나’이지요. 지금 내 마음이 모래알 같다는 걸 부산한 모래의 말과 행동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네요.

만약에 ‘모래’ 대신 그 자리에 ‘나’를 넣는다면 달뜨디 달뜬, 이 진정시킬 수 없는 흥분감을 이토록 재미나게 전할 수 있을까요. 류병숙 시인의 시적 기량이 느껴지는 시입니다.

 

 

5. 집적된 시간, 기다림의 에너지

 

 

2년 동안 교정했어

아래 뻐드렁니,

 

석 달 걸렸지

짧았던 머리카락,

 

4년 걸려 고쳤을 걸

말할 때 으으 하는 버릇,

 

지금의 나를 위해

길고 짧은 기다림들이

징검돌처럼 엎드려 주었어.

 

그거, 한 발자국씩

딛고 온 거야.

 

    - 「지금의 나」  전문

 

류병숙 시인이 방금 「지금의 나」를 읽었다면 아마 잠깐 숨을 고르고 난 뒤 어린 독자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을 것 같네요.

“얘야, 기다림을 배워야 한단다.”

이 세상에 기다림 없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는 건 없지요. 만약 기다림이 없이도 원하는 것을 얻었다면 그것은 우리 몸에 그 어떤 머무름의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겁니다.

위의 시에서 시인은 세 개의 에피소드 - 뻐드렁니, 짧은 머리카락, 으으 하는 버릇-을 제시하면서 각각 2년, 석 달, 4년이라는 기다림 끝에 내가 바라던 ‘지금의 나’가 되었음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25년간 교실에서 선생님으로, 그리고 오롯이 시인으로서 얻은 삶의 자세가 아닐까 합니다. 시간을 들여 성근 자신을 고치고 깁고 다듬고 구부린 시간의 이쪽 언덕에 겸손한 한 분이 서 있네요. 그분이 언뜻 류병숙 시인의 모습을 닮아있군요.

 

 

지금 창밖에는 11월의 눈이 내리고 있네요.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익어가던 가을 자리에 이렇게 첫눈이 내리고, 류병숙 시인의 동시집 원고 <모래알이 쫑알쫑알>도 이제 마지막 페이지를 덮습니다.

<모래알이 쫑알쫑알>에는 말 – 햇빛 – 날아오름 – 비약 – 경험 축적 – 집적된 시간 에너지 등의 시들이 적잖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들이 한결같이 발전해 가는 방향은 하나입니다. ‘지금의 나’를 향하고 있는데 그것이 곧 시인의 삶의 방향이 아닐까 합니다.

동시집 󰡔모래가 쫑알쫑알󰡕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류 시인의 시의 행보가 자기완성에 이르는 단단한 징검돌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류병숙 시인 동시집 <모래알이 쫑알쫑알> 2025년 8월 출판사 청개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