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고백에 시를 담다 -조성국 동시집 해설

권영상 2025. 12. 3. 18:23

 

<조성국 동시집 해설>

고백을 시에 담다

권영상 (아동문학가, 전 한국동시문학회 회장)

 

 

숨이 턱까지 헉헉 차오르는

마당

한쪽 구석

수돗물을 틀면

숨이 차오르는지 파파박, 파박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조성국 시인의 동시 「달동네」다.

사람도 헉헉대며 오르고 수돗물도 ‘파파박, 파박’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는 곳이 달동네다.

이 동시집 「들키고 싶은 비밀」 45편 중 이 동시가 오래 머릿속에 남는다. 조성국 시인에 대한 은유랄까. 출발점이랄까. 시인은 헉헉대거나 숨이 차 ‘파파박’거린다. 조시인의 시를 만나 읽는 나도 여름내 헉헉댔다.

숲에서 만나는 나무를 일일이 다 알 수 없듯 나도 조성국 시인을 내가 모르는 나무처럼 만났다. 한창 폭염이 기승을 부릴 때였다.

상상 출판사로부터 조성국 시인의 동시들을 읽어줄 수 없느냐는 부탁을 받았고, 토마토 농사를 끝내고 쪽파 심을 자리를 마련하느라 헉헉대던 나는 이만한 일도 하는 데 뭘 못할까 싶어 선뜻 그러겠노라 대답했다.

그러고 그날 저녁, 이 메일로 들어온 조시인의 시를 꺼내 읽었다.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났고, 1990년에 『창작과 비평』에 시를, 2015년에 『문학동네』에 동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분이다. 『슬그머니』 등의 시집과 동시집 『구멍 집』을 내셨다. 신춘문예니 신인상이니 하는 등단 절차 없이 그냥 시를 발표하는 걸로 시인이 된, 아주 간편한 삶의 태도를 가지신 분이다.

동시 45편을 읽으면서 역시 그럴만한 경험의 무게가 시에 실려 있구나, 했다. 그분의 동시엔 대체로 사는 일의 무게가 무겁게 얹혀있다. 무엇을 하건 거기엔 헉헉대는 삶이 있고, 가쁜 숨을 몰아쉬는 팍팍한 현실이 있다.

‘시인의 말’에 쓰여진 대로 ‘생활을 유쾌하게 뒤틀고 뒤집는 상상을, 정겨운 심술보와 막무가내 호기심을, 누구와도 맛설 수 있는 용기’를 드러내는 다양한 시들을 만났고, 그런 시들에서 약간의 가뿐함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어쩐지 조성국 시인의 헉헉대거나 ‘파파박, 파박’거리는, 사느라 숨가빠하는 시들에 더 마음이 갔다. 시인의 생애가 거기에 녹아있는 것 같았다. 좀 거칠기는 해도 진솔하고, 진정성 있고, 낯설고 투박한 정서가 나를 끌어당겼다.

 

 

1. 모성과 부성

 

 

주인아줌마가 물으면

머뭇머뭇 다섯 살이라고 대답했던 목욕탕

 

나도 모르게 여덟 살이란 말이

불쑥 튀어나온 목욕탕

 

초등학생 미만 어린이는 요금을 받지 않는 목욕탕

 

공짜로

머리 감고 때 벗기며 몸 씻는 값을 주게 생겼다며

엄마한테

알밤을 된통 얻어맞은 목욕탕

 

    - 「대중목욕탕」 전문

 

조성국 시인의 다른 시 「엄마개」를 보면 시인이 엄마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알 수 있다.

‘....../총 쏘는 시늉을 하며/ 빵 소리치면/ 곧바로 나자빠지던 흰둥이/새끼를 낳자/ 연분홍 벌거숭이 그 새끼들/ 한번 만져보려고 손을 갖다 대면/ 목털 잔뜩 세우고 으르렁거린다/ 송곳니를 삐쭉 드러내며/째려본다’

목욕탕에 들어갈 때 다섯 살이라 해야 할 일을 자신도 모르게 여덟 살이라 했다. 잠깐만 거짓말을 하면 공짜로 목욕할 수 있는데 그걸 못해 목욕비를 낸 것이 엄마는 분하다. 나는 그 때문에 엄마로부터 알밤을 된통 얻어맞는다. 이 시가 시인의 어린 시절 경험이든 지금도 목욕탕이 있는 어느 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든 이것이 조시인이 이해하는 모성이다.

목욕비를 아끼기 위해 자식의 머리에 알밤을 된통 먹이는 엄마지만 내 ‘새끼’에 손대면 으르렁거리는 것이 이 시에 드러나는 엄마다.

그 모성의 배후엔 엄마가 책임져야할 고단한 현실이 놓여 있다. 그런 까닭에 엄마는 거칠고, 으르렁대고, 때로는 인정사정 없는 현실주의자가 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땅 색깔이 검어서

새 날개도 검고

사람 머리도 검다는

선생님의 말씀

알아들었다

 

흰머리만 자꾸 생기는

아빠가

왜 검은 염색을 하시는지

이제야

알아먹었다

 

    -「보호색 공부」 전문

 

다시 읽어도 우스꽝스런 시다.

선생님의 보호색에 대한 논리도 그렇고 아빠가 머리에 검정 염색을 하는 이유도 그렇다. 거기다가 ‘알아들었다’라거나 ‘알아먹었다’는 표현도 우스꽝스럽다.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약간의 익살이라거나 연민이 깃들어 있다.

보호색이란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거나 주변과 같은 색으로 위장하는 생물들의 생존 기술을 말한다. 그런데 한 가족 안에 당당히 존재해야 할 아빠가 자신을 보호하거나 위장하기 위해 검정 염색을 한다면 그 천적은 누굴까.

현실주의 엄마의 으르렁거림에 비겁해지는 아빠가 언뜻 보인다. 그 모습이 화자가 바라보는 이 시의 부성이다.

 

 

2. 일과 노동

 

 

누나,

이제 그만하고 가자

 

외쳤더니

 

바짝 엎드려 바지락 캐던

등 너머

해가,

수평선에 닿을락 말락 하던 해가

바다에

똑같이 비치며 대답한다

누나 대신

 

 

      -「저 물 녘」 전문

 

 

이 시엔 갯벌이 있고, 일몰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배경으로 보이지 않는 누나와 누나라고 부르는 보이지 않는 ‘나’가 있다.

내용으로 보아 일몰의 시간에 뻘에 엎드려 바지락을 캐고 있을 누나와 이젠 그 일에 지쳐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누나의 동생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시의 프레임 안에는 이 두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지는 없고 목소리만 존재한다.

’누나, 이제 그만 하고 가자!‘ 는 말에 그 대답도 누나가 아닌 수평선에 닿을락말락한 해가 대신 한다. 해는 누구인가. 이 두 오누이의 노동을 하루종일 지켜보고 선 엄한 존재다. 그 엄한 존재의 대답이 저물녘에야 ’응‘ 하고 떨어진다.

아주 독특한 상황이다. 이들이 실제의 모습 대신 목소리로만 존재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시 속 아빠가 존재감을 숨기거나 위장하기 위해 ‘보호색’을 쓰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사촌이 놀러 왔다

 

야단맞고 있는데

 

얄밉게

자기는 아무리 못해도 언제나 삼 등은

꼭 한다고

뽐내는 걸 쳐다보더니

배시시 웃는다

 

전교생이 세 명뿐인 시골 학교 다니는 사촌이

놀러와서

 

화내다 마는 엄마를 따라 나도

슬쩍 웃었다.

 

    -「자랑」 전문

 

엄마도, 누나도, 힘들어 헉헉거리거나 ‘파파박 파박’ 소리내어 켁켁거리면서도 건강한 이유는 유머 때문이다. 공부를 못한다고 야단맞고, 밖에서 놀고 들어올 때도 ‘엄마 눈치가 보이는’(「윤기」) 내겐 웃게 해주는 ‘사촌’이 있다. 사촌은 아무리 공부 못해도 전교에서 삼등은 한다며 약 올리거나 자랑질이다. 알고 보면 그는 전교 세 명뿐인 학교에서 꼴등인 삼등이다. 그러면서도 삼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사촌은 그런 유머로 나와 나의 강성한 엄마까지 배시시 웃게 만든다.

현실이 아프고 고단해도 조시인의 시는 다른 한쪽에서 웃음을 준비한다.

이 짤막한 시는 조성국 시의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푸른 숨소리다.

 

 

3. 사랑

 

 

팬히터를 틀자

교실 안이 후끈 달아오르며

김이 무럭무럭 서린다

 

유리창에 쓴 낙서들이 점점 드러난다

 

그중

맨날 시끄럽게 떠든다고

선생님께 일러바치는 반장에게

퍼부은 욕은

얼른 지우고

인상 버럭 쓰고 째려보는 것 같아

또 한 번 문질러 닦고

 

단짝 이재연한테

얼굴 화끈 달아오르며

말 못 했던 하트 표시는

그냥 놔두었다

 

    -「들키고 싶은 비밀」 전문

 

동시집 『들키고 싶은 비밀』의 표제시이다.

암만 봐도 좀 별다른 사랑을 보여주는 시다. 대체로 사랑의 감정을 고양하자면 부드러운 분위기가 필요하다. 근데 이 시의 분위기는 도발적이면서도 후끈 달아올라 있다.

이 감정은 최고조의 정점을 향해 치달아 가다가 결말 없이 툭 그치고 만다. 그 이후 ‘나’는 단짝 이재연의 마음을 얻었는지 거절당했는지 알 수 없다.

이 시엔 이재연을 좋아하는 두 남자가 있다.

‘나’와 반장이다. 반장은 내가 시끄럽게 떠든다며 맨날 선생님께 일러바치고, 나는 유리창에 손글씨로 그런 그를 향해 ‘욕을 퍼붓는다’. 팬히터를 틀면서 나의 은밀한 소행은 드러나고, 나는 반장이 두려워 욕 글씨를 지우지만 이재연을 향한 내 마음의 하트 표시는 지우지 않는다. 좋아하는 마음을 들키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거나 경험한 종래의 통념적인 사랑의 방식과 전혀 다른, 너무나 낯선 방식의 사랑법이다. 거칠고 생명성이 후끈 달아오르는,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 수 없는 긴장한 상태로 시는 그친다.

그렇다면 아빠의 사랑법은 어떤가.

 

악어가 산다 아빠의

호주머니에는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과 신용카드와

명함을 먹는 악어가 산다

 

빳빳한 종이돈을 즐겨 먹는 악어가 살고 있다

 

이따금 내가 상을 받아 오는 날이면

활짝 웃으며 용돈 내주듯이 꽉 다문 입을

쫙 벌려도

그다지 무섭지 않다

 

    -「악어 지갑」 전문

 

아빠는 내가 상을 받아오는 날이면 나를 사랑해서 용돈을 주신다. 근데 그 아빠가 꺼내는 용돈이라는 이름의 사랑은 악어 입 속에 있다. 그 악어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아빠의 호주머니 속에 있다. ‘나’는 아빠가 사랑을 꺼내기 위해 쫙 벌리는 악어의 입을 보면서도 이제는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는다.

나에 대한 사랑은 악어의 입속에서 나온다. 사랑이라지만 그 이면엔 항시 두려움이 있다. 그게 아빠의 사랑이다.

다시 생각해 볼 것은 동시 속의 엄마는 언제나 자상해야 되고, 아빠는 언제나 따뜻하고 친근한 인물이어야 하는가? 꼭 그래야 한다면 우리는 그걸 문학이라 할 수 있을까.

 

 

4. 사는 법

 

 

누구한테 찰싹찰싹 얻어맞았는지

잔뜩 멍만 들었어도

비단짱뚱어 갯지렁이 낙지 농게 바지락 꼬막을 키우며

 

잘 살았다!

 

    -「개펄」 전문

 

썰물이 다 빠져나가고 빈 개펄이 드러난다.

개펄은 찰싹찰싹 치는 파도에 온몸 멍이 들었어도, 그 몸으로 비단짱뚱어도 키우고, 갯지렁이도 키우고, 바지락 꼬막도 키운다. 그러면서도 그걸 불평하거나 그 일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받아들인다.

‘잘 살았다!’

이건 시인의 말이다.

이런 긍정의 힘이 조성국 시의 힘이다.

그 점에서 여기 담긴 동시들은 때로 뭉클하고 건강하다.

 

 

5. 상상의 멋짐

 

 

그러니까

공룡이 살던 시대부터 쭉 살아남은 나무에서

떨어진

노란 구린내는

분명 공룡이 싼 똥이 잔뜩 묻어서

풍기는 냄새일 거다

 

    -「은행나무 화석」 전문

 

상상이 만들어낸 절묘한 시다.

이 상상의 동기는 은행나무 열매의 ‘노란 구린내’다.

은행나무 열매에서 왜 구린내가 날까. 여기서 움트기 시작한 상상은 은행나무와 중생대를 함께 산 공룡에 가 닿는다. 이 둘은 아득한 1억 5천만 년 전 그 시절,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다. 그러니까 지금 은행나무 열매에서 나는 이 노란 구린내는 그때 가끔 놀러오던 공룡의 똥이 묻은 까닭이라는 상상은 너무나 그럴 듯하다. 유쾌하거나 명쾌하거나 익살스럽다.

가을날,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걷다가 떨어진 은행을 밟을 때면 이제 우리는 단번에 공룡의 누런 똥과 그 똥 냄새를 떠올리게 될 판이다.

여기서부터 조성국 시인의 시는 신산한 유년의 과거에서 벗어난다. 그의 시는 앞으로 더 빛나고 더 재미있어질 게 뻔하다. 「은행나무 화석」과 같은 시 한방으로 독자들의 갑갑한 현실을 산뜻하게 날려줄 테니까.

 

 

여러 차례 말했지만 조성국 시인의 시는 독특하다.

독특하다는 말은 우리가 그간에 읽어온 수많은 시들과 분명히 다르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기존의 통념이라든가 고정관념에서 멀리 벗어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시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며 나는 조시인의 시를 읽었다. 그러면서도 시가 통념에 사로잡혀 안주하는 게 아니라 끝없이 그 벽을 허무는 작업이라는 대답에 이르는 나를 보았다.

모든 엄마가 다 인자한 게 아니고, 모든 아빠가 다 성실하거나 가정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준 적은 없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 역시 그렇다. 조성국 시인에게 그런 단단한 통념은 거추장스럽다.

이 동시집이 조성국 시인의 솔직한 고백서이며, 새로운 동시의 문을 열어나가는 새 출발점이라는 사실 또한 분명해졌다. 그 길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조성국 동시집> 상상출판사 2025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