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

대구행 북 콘서트, 민낯을 사랑하는 일

권영상 2025. 12. 3. 17:47

 

대구행 북 콘서트, 민낯을 사랑하는 일

권영상

 

 

북 콘서트를 위해 동대구행 KTX 표를 구매했다.

11월 20일. 서울역 발 오전 8시 40분 표다.

동대구역에서 김성민 대표와 11시에 만나기로 했다. 북 콘서트는 수성구에 있는 물레책방에서 갖기로 했단다. 이건 별안간에 만들어진 행사다. 내 산문집 <민낯을 사랑하는 일>은 김성민 대표가 운영하는 ‘브로콜리숲’에서 출간했고, 물레책방 주인은 나름대로 대구 문화계를 좀 아시는 분이라 했다.

 

 

산문집은 <뒤에 서는 기쁨>(2010년 좋은생각) 이후 15년 만이다.

그동안, 그러니까 정확히 2008년부터 생활정보지 ‘교차로’에 16년간 발표한 칼럼을 <민낯을 사랑하는 일>로 정리했다. 마침 표제 글이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이제 다시 내 생애에 산문집을 내게 될까, 하는 ‘늙은 나이’가 작용했다. 매주 1편씩 16년 동안 칼럼을 썼으니, 어림짐작으로 600편은 될 분량이다. 이걸 한 권으로 엮으려고 보니 첫 작품과 2023년에 쓴 마지막 작품의 시차가 너무 컸다.

 

 

고민 끝에 시차가 큰 작품을 제외했다. 사회와 시대를 꼬집는 작품 역시 제외했다. 그러면서 수필 문학의 맛을 내는 이들 작품은 챙겼다. 대중가요든 클래식이든 음악과 관련된 글, 미술과 관련된 글, 시를 인용하거나 시인을 거론한 작품, 영화 감상평이거나 영화와 관련된 글, 여행과 등산에 관한 글 등이다.

그리고 또 하나, 독자들이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나의 성장기가 필요했다. 책 전체를 이해하는 데 있어 좀 먼 오래된 이야기이긴 해도 모든 글은 실상 거기에서 출발했거나 거기에 닿아 있다고 봤다. 그 부류의 글을 맨 앞 1부에 넣었다.

 

 

그러고 보니 칼럼과 비 칼럼 사이에 큰 괴리가 있었다.

아무리 내가 쓴 글이라 해도 원고료를 받고 쓴 글이 자유로이 쓴 글보다 제약받는 건 당연하겠다. 그쪽 성향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글은 매수의 제약이 있었고, 까칠한 독자를 의식해야 했다. 칼럼을 쓰면서 나는 여러 차례 독자의 클레임을 받았다. 야하다, 당돌하다, 부정적이다. 은유가 많다…. 등.

누가 뭐라든 내 방식대로 쓴다고 했지만, 그런 문제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 쓰면 그만이지만 독자를 의식하는 글쓰기도 작가의 당연한 임무이며 그걸 통해 더욱 단단한 자신의 글을 만들어 가는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241페이지 분량의, 볼륨이 괜찮은 산문집 <민낯을 사랑하는 일>이 세상에 나왔다. 속 그림은 아내의 도움을 받았다.

뜻밖에도 호응이 좋았다. 호응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잘 내준 김성민 대표를 찾아가 점심 대접을 해드려야지, 하고 대구로 전화했다. 그때는 또 내가 제1회 ‘고구려아이문학상’을 받은지 50일도 채 안 되는 때라 그 후속 축하의 자리로 연일 불려 나갈 때였다. 그사이에 간신히 빈 날짜를 잡았다. 11월 20일.

‘점심 대접’을 하고 싶다는 나의 청이 김성민 대표에 의해 하루 만에 ‘북 토크’로 바뀌었다. 이 뜻밖의 제안에 응하긴 했지만 찾아오실 분이 몇 분이나 될지 내심 걱정이 됐다.

11시. 동대구역에서 김성민 대표를 만났다.

점심 식사 후, 김 대표는 나를 대구 간송미술관으로 데려갔다. 간송 전형필 선생께서 소장하신, 문인화의 영역을 넓힌 윤두서의 <심산지록>과 길 건너 대구미술관의 서동균 김진만 황기식의 수묵 회화전을 보여줬다. 김 대표와 단둘이 늦가을의 미술관 정취를 온몸으로 느끼며 커피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김현숙 시인과 현경미 시인을 먼저 만났다. 그리고 6시 30분 토크쇼 장소인 ‘물레책방’으로 향했다.

 

 

이미 권영욱, 박승우, 이재순 시인 등이 와 있었고, 문경에서 장동이 시인이 와 주셨고, 임수현, 곽영옥, 권기덕, 등 대구분들이 한분 한분 자리를 같이 해주셨다. 내 오래된 동시집이며 동화집 산문집을 들고 와 사인을 받으신 물레책방 사장님,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분이 자리를 가득 채워주셨다.

토크쇼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때 우리는 모두 진지했다. 이 뜻밖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늦가을 밤의 정취 때문일까. 밤이 깊어져 갈수록 나는 말하기의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매리 카의 자서전 쓰기 서적 ‘당신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를 내가 하려는 이야기에 곁들였다. 수필이란 결과적으로 자전적인 문학이니까. 내 소년 시절의 자서전적 이야기로 말머리를 풀어갔다.

저녁 식사 자리에선 뭔가 다 풀지 못한 아쉬움을 다시 이어갔다.

 

 

그 후, 숙소 근방에 있는 맥줏집 봉구비어에 다시 들렀다. 나는 이 아늑하고 천정이 낮은 맥줏집에 들어서면서 여기서 밤을 새워 마시면 좋겠다 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자정이 넘어있었다.

불현 떠오른 게 상경을 위한 ktx 열차표였다.

휴대폰으로 구매를 시도했는데 표가 매진이라 했다.

“하루 더 계시다가 모레 올라가세요.”

그때까지도 자리를 지키며 나를 챙겨주시던 김현숙 시인이 무슨 걱정할 거 있냐며 느긋해 하셨다. 나는 한창 술맛을 느끼는 권기덕 시인을 졸랐다.

드디어 취소 표 한 장이 나왔다.

이제는 오늘이 된 아침 7시 14분발 표를 샀다.

 

 

그제야 봉구비어에 모였던 이들의 술도 끝났다. 숙소에서 무서워 혼자 못 잔다는 나 때문에 김성민 대표가 동행했다.

6시, 내가 부탁한 모닝콜이 울렸고, 나는 곤한 잠에 빠진 김성민 대표를 두고 숙소를 나와 서울행 열차에 올랐다. 미명의 대구역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이번 생애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북토크의 날이 다시 올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환대해 주신 대구분들의 정성이 정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