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실베니어에서 날아온 전화
권 영 상
토요일 아침이다.
일찍 일어나 베란다 화분에 물을 주고 있는데 내 방에서 휴대폰이 울었다. 늦잠 자는 아내를 깨우지 않으려고 발 끝을 세워 달려갔다. 내 방에 미처 이르기도 전에 뚝 끊겼다. 한발 돌아서는데 또 울었다. 집어들고 보니 006으로 시작되는 낯선 전화번호다. 받을까 말까 주저하다가 전화기만 귀에다 대고 저쪽 말을 들었다.
“담임 선생님, 저에요. 어제 아침에 지각한.”
뜸금없는 전화다.
내가 교편을 잡고 있는 건 맞지만 담임을 안 한지 2년이나 됐다.
“누구라고? 장난치지 말고 끊어!”
그렇게 말하고 보니 저쪽 목소리에 나이가 실려있다. 내가 머뭇대고 있는 사이 전화 속 목소리가 웃었다.
“나야, 나! 재택이. 여기 펜실베니어야.”
그래도 나는 반신반의 했다.
며칠 전, 그는 친구를 통해 알아낸 내 주소로 이메일을 보내왔었다. 그 후 몇 차례 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런 그가 뭣하러 전화까지 걸어올까 했다. 그렇게 머뭇대는 내 머릿속에 아득히 40년 전, 옛 친구의 목소리가 아련히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창고에 보관해둔 먼지에 묻은 기억과 같았다.
“초당에 살았던 재택이? 재택이 맞어? 엊그제 메일한?”
나는 그제야 그를 기억해내기 시작했다.
“여기는 저녁 7시야. 힘들게 자네 전화번호 알아냈다네. 아침잠 깨운 건 아니지?”
그는 내 잠을 깨웠을까 걱정하며 극적인 해후에 몸을 떨었다. 아이들 혼사는 시켰는지, 건강은 어떠한지, 식사는 잘 하는지 등을 떨리는 가슴으로 서로 물었다. 이미 이메일을 주고받아 알 건 다 알았으면서도 그건 또 그거였다. 열 번을 그런 식으로 알았다 해도 이렇게 다른 채널로 만나면 또 묻고 물을 수밖에 없겠다. 40여년 동안 우리는 서로 돈절하고 살았으니 돈절된 시간을 그렇게 이어맞추어야 했다.
“이봐. 어떻든지 아프지 말고 건강해야 해. 건강하게 살다가 한번 만나세.”
이런저런 통화 끝에 그가 나에 대한 자신의 우정을 실어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이른 아침, 전화를 끊고 나자 괜히 눈물 한 줄기가 두르르 흘러내렸다.
재택이, 그는 나의 고향 친구다.
내가 그의 초등학교 한 해 선배지만 나이는 그가 나보다 한 살 많다. 우리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정 형편으로 두세 해씩 놀았다. 그러고 난 뒤에 다시 같은 해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나중 내가 서울에 올라와 살고 있을 때 그는 결혼을 하여 하와이로 이민을 갔었다. 그러던 그가 요 얼마 전 내게 메일을 보냈었다. 나는 그의 메일을 받고 놀랐다. 30여년을 미국에 건너가 산 그의 편지에 온통 고향냄새가 배어있었다. 고향의 산이며 들판이며, 옛 풍습이며 고향말들, 그리고 잊고 있었던 이름들, 남구, 정덕, 남순, 옥진, 덕자, 종무......
나는 고향의 것들을 다 잊어가고 있는데 수만 리 떨어져 사는 그는 그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제는 고향을 그리워할 나이인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가슴 뭉클했던 이유는 반가워서만은 아닌 듯 싶었다. 그나 나나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고향의 친구가 그리워 토요일 아침, 친구의 아침잠을 깨울까 걱정하면서도 그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전화를 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 남은 인생이 촉박하다는 뜻이 아닐까. 그 점이 나를 울컥하게 만든 것 같다. 오, 인생이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산다는 게 잠깐이여!’ 하던 어른들의 말이 참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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