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불행의 차이
권 영 상
작은형이 운명했다.
일흔일곱. 갑작스럽게 다가온 암이 작은형의 목숨을 앗아갔다. 암 선고를 받자, 나는 작은형을 보러 강릉으로 내려갔다. 형은 사천에 있는, 잘 알려진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조카도 내려와 병석을 지키고 있었다. 형은 환자라기 보다 늘 지켜보던 그 모습 그대로 건강했다. 단단한 이마와 반듯한 얼굴 윤곽, 농사일로 다져진 균형잡힌 체격과 험하지만 탄탄한 손.
달라진 모습이 있다면 옆구리에 차고 있는 호스였다. 호스 끝에는 담즙을 뽑아내는 비닐주머니가 죽음의 그림자처럼 매달려 있었다.
“그러지 말고 서울로 올라가 한번 치료를 받아 봐요.”
나는 그 말을 했다.
내가 형을 찾아간 것도 실은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옮겨와 좋은 치료를 받아보자고 권하러 간 거였다. 큰 조카도 서울에서 제법 탄탄한 직장을 가지고 있고, 또 나도 있고, 작은누나도 있고. 작은형이 올라온 대서 부담을 느낄 일은 전혀 없었다.
“얼른 결정을 해요. 하루가 급한데.....”
나는 또다시 재촉했다.
내가 또 하나 재촉하는 데는 작은형이 평생을 밝은 세상을 보지 못하고 살아 왔다는 점이다. 형은 일곱 살 때에 실명을 하여 너무도 힘든 세월을 살았다. 눈 뜨고 사셨다면 일흔 일곱이란 나이를 서럽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형에게 있어 일흔일곱은 눈 뜨고 산 일 년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내게 있었다.
작은형은 실명의 몸으로 아들 둘과 딸 둘을 키웠다. 그 자식들을 출가시킬 때마다 눈이 멀다는 이유로 적잖이 마음 고생을 했다. 얼마나 그 고충이 심했냐면 형이 내게 어느 밤 전화를 해왔었다.
“혹시 서울에 내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병원이 있는지 좀 알아봐 주게.”
그러는 형님의 목소리에 눈물이 배어 있었다.
예순을 넘긴 형의 눈을 고칠 수 있는 병원이 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사리에 밝은 형이 그 일을 모를 리 없었다. 나는 그러마, 하고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실명 기간이 너무 오래되어 재생이 어렵다는 말만 들었다. 내가 알기에도 작은형은 오래 전에 빛을 포기하였다. 그렇지만 가정사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 문제는 작은형을 괴롭혔다.
그런저런 고충을 겪으면서도 작은형은 조카들을 훌륭히 키워 모두 출가시켰다.
“남들 다 병 나면 서울로 올라가는 데 작은형은 뭘 망설여요.”
나는 다시 작은형의 결심을 재촉했다.
“애써 가며 목숨을 연명하고 싶지 않네.”
형은 나의 재촉에 뜻밖에도 그런 대답을 했다.
작은형의 내부에 도대체 어떤 빛깔의 마음이 깃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말이 일흔일곱이지 형은 쉰 나이 못지않은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 조카들도 남부럽지 않게 출가를 잘 시켜경제적인 어려움도 없다면 없는 편이었다.
나는 작은형과 함께 작은형이 좋아하는 가까운 바닷가 횟집에 갔다. 거기서 기분좋게 형은 회를 몇 점 들었다. 그러면서도 속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웬만하면 내게 이런 저런 일에 대해 물어보길 좋아하고, 무엇보다 남의 말 듣는 걸 좋아했다. 헤어질 때 작은형의 손을 잡고 해안길을 잠시 걸었다. 그때에도 나는 부담을 느낄까봐 가벼이 다시 수술받기를 권유했지만 작은형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작은형은 그렇게 석 달을 더 살고는 그만 원하던 대로 운명했다. 그 사이에 한두 번을 더 만났지만 형은 담담했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고, 살아온 삶에 대한 애증도 없어 보였다.
형을 보내면서 나는 그간의, 내가 아는 형에 대한 추억 때문에 슬펐다. 작은형은 일곱 살 이후, 한 치의 빛도 다시 못 보고 떠났다. 자식들이며 손자들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떠나는 형 때문에 살아있는 우리들이 실은 더 괴로웠다.
먼저 올라온 나는 삼오제를 마치고 나중에 서울로 돌아온 조카에게 위로의 전화를 걸었다. 내 전화를 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조카가 아버지가 운명하기 전 날, 제게 했다는 말을 전했다.
“제 손을 잡고 그간 행복하게 살았다, 그 말씀을 하셨어요.”
그랬다.
너무도 뜻밖이었다.
우리가 작은형과의 작별을 괴로워하고 있을 때 작은형은 그런 작별의 말을 준비하고 있었다. 식물은 모질고 아픈 긴 성장 끝에 향기를 뿜는 꽃을 피워낸다. 그러나 그 향기나는 순간이란 대체 얼마나 짧은가. 어쩌면 그 향기를 감미로워하는 순간 꽃은 지고만다. 작은형도 어쩌면 ‘그간 행복하게 살았다’는 말을 자식들의 심장에 향기롭게 남기기 위해 암 선고 이후의 석달을 고통스럽게 견뎠을지 모른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빛없이 살아온 작은형의 인생이 조금은 불행했을 거라 생각했던 나는 혼란스러웠다. 그렇다면 불행이란 또 뭘까. 작은형은 그 질문들을 살아남은 우리에게 던져놓고 떠났다.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달리는 휴대폰 문자 메시지 (0) | 2012.08.16 |
---|---|
공부가 무서워요 (0) | 2012.08.16 |
펜실베니어에서 날아온 전화 (0) | 2012.08.16 |
흥분하는 '오빤 강남스타일' (0) | 2012.08.15 |
아버지의 낡은 시계 (0) | 2012.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