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2월에 만나는 올똘댁 할머니

권영상 2023. 2. 7. 18:07

 

2월에 만나는 올똘댁 할머니

권영상

 

 

코로나19가 힘을 잃어가자, 결혼식 초대장이 심심찮게 날아온다.

오늘은 조카의 딸 혼사가 있는 날이다. 다행히 혹한을 이어가던 날씨가 풀렸다. 예식을 마치고 바깥에 나오니 예식장의 넓은 뜰이 봄처럼 뽀얗다. 나는 고향 분들을 배웅하려고 그분들이 타고 올라온 전세버스로 향했다.

고향을 떠나온 지 40여년.

버스 곁에 서 있는 나를 보고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준서 삼촌이시죠?”

중년의 중후한 남자가 내 앞에 와 인사를 했다. 머뭇거리는 내게 그가 대뜸 말했다.

“저, 자름집 막네이입니다.”

그는 자신의 고향집 택호를 얼른 댔다. 그제야 나는 ‘아, 자름댁!’ 하며 반겼다. 그 순간 그 옛날 자름댁 어른이신,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중년의 남자의 아버지가 떠올랐다. 얼굴에서 그 어른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나는 그 분을 눈앞에서 뵙듯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저는 안고갯집 큰아들 성규예요.”

그 곁에 선 비슷한 중년의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앞 모텡이요! 했다. 윗마을 그의 집이 떠올랐다. 안고갯집이라는 택호는 그의 어머니가 안현리에서 출가해 오셔서 붙여진 이름이다.

“저는 모안리 사는 준규 동생 인규고요.”

나는 대뜸 알았다. 우리 논배미가 모안리 골에 있었다. 거기서 일하다가 아버지를 따라 그 집 마당에서 누님이 가져온 곁두리를 먹던 일이 생각났다. 모안리는 호수에서 놀던 오리들이 저녁이 되면 골짜기로 날아와 깃든다고 해 붙여진 마을이름이다. 그 집 울담엔 복숭아나무가 있었는데, 푸른 잔솔들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던 복사꽃이 붉었다.

 

 

서 있던 사내들이 버스 출발시간이 좀 있어 그런지 내게로 와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유행정집 아들이구요. 저는 수릿골집 둘쨉니다. 저는 날밀집 맏이고요. 저는 겡금집 셋째예요. 아버지 함자가 기자 주자고요.

겡금댁은 우리랑은 같은 일가친척이다. 겡금댁 어른은 나보다 항렬이 썩 낮아 어린 나를 보면 ‘할아버지, 어딜 가세요?’ 하며 농을 하시곤 했다.

 

 

그이들 중에 기억에 오래 남는 이가 있다.

“올똘집 둘째딸이에요. 봄니라고.”

“아! 올똘댁! 어머니가 월호평서 출가해 오신!”

올똘댁은 우리 집에서 보리밭 들을 지나면 바로 만나는 집이다. 그 댁엔 머릿결이 하얀 올똘댁 할머니가 계셨다. 그 댁 울타리엔 작은 살구나무가 있었는데 아픈 엄마를 위해 그 꽃을 따다가 그만 가시에 찔려 울고 있을 때였다. 그때 올똘댁 할머니가 나오셔서 내 이야기를 듣고는 꽃가지 하나를 꺾어 2학년이던 나를 집까지 데려주시던 일이 기억났다.

 

 

“올똘댁 할머니 지금도 생존해 계시는가?”

나는 그 옛날의 자상하시던 할머니를 생각하며 안부를 물었다.

“오래 전에 떠나셨어요.” 그러는 그 중년 여인의 눈에서 살구꽃빛 눈물이 그렁 맺혔다.

그이나 나나 그 짧은 한 순간, 수 십 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 있었다.

고향 분들을 태운 대절 버스가 떠나고도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서서 그 버스가 떠나간 곳을 바라보았다. 뜰 한 모퉁이에 봄까치풀 꽃이 피고 있을 것 같은 2월이다.

 

 

'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은 3월이 적격이다  (0) 2023.02.21
호박과 자유와 오래 된 오해  (0) 2023.02.13
벌써  (0) 2023.02.01
설거지 그리고 배추꽃 사과  (0) 2023.01.28
내가 들은 설 이야기  (0) 2023.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