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유난히 고운 뜰안의 배롱나무꽃

권영상 2021. 7. 27. 09:04

 

유난히 고운 뜰안의 배롱나무꽃

권영상

 

배롱나무 꽃이 한창이다.

진한 분홍이다. 10년생 나무를 심어 가꾼 지 8년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뜰안이 꽃으로 환했다. 지나가는 이들이 길을 멈추어 꽃 이름을 물을 정도였다.

“아, 배롱나무요! 꽃빛이 참 곱네요.”

다들 그랬다.

 

 

배롱나무는 여름 꽃이다. 계절이 초록으로 지쳐갈 무렵 꽃나무가 벌이는 어쩌면 꽃들의 마지막 축제다. 이후로 꽃 피우는 나무는 내가 알기로 없다. 뜨거운 여름의 축제답게 꽃이 화려하다. 그러나 절대 야하지 않다. 오히려 격조 있다. 병산서원 경내의 배롱나무며. 밀양의 표충사, 선운사 절마당의 배롱나무 꽃 역시 곱고 품격 있다.

 

 

고향 조부님 댁에도 사랑채 밖에 오래된 배롱나무가 있다.

젊은 날, 여름방학을 얻어 백부님을 뵈오러 갈 때면 배롱나무꽃이 사랑채 밖에 그윽하게 피어 있었다. 사랑방에서 백부님을 뵈옵고 나면 뭐 줄 게 있어야지, 하시며 보란 듯이 미닫이문을 활짝 여셨다. 그때 마치 영화의 화면이 바뀌듯 붉게 핀 배롱나무 꽃가지들이 넘실거리며 사랑채 마당을 건너 방문 가득 밀려왔다.

백부님은 특별히 그 배롱나무를 아끼셨다. 보름달이 배롱나무 꽃 사이로 뜨는 밤이면 모기가 방에 들어도 문을 열어놓고 주무신다고 했다.

 

 

세월이 가면서 조부님도 백부님도 아버지도 다 가셨다. 이제 옛사람들은 다 가고 나만 혼자 남았다. 나는 가끔 내가 그분들이 사시던 과거를 사는 듯 해 놀랄 때가 있다. 안성에 굳이 집을 얻어 뜰안에 배롱나무를 심은 것도 그렇다. 나는 그걸 심어놓고 옛분들의 자취를 기억하듯 달뜨는 밤이면 배롱나무를 소중히 대해 왔다.

 

 

그런데 지난겨울이다. 배롱나무가 냉해를 입고 말았다.

냉해를 입은 건 그만이 아니다. 두어 해 전에 심은 감나무며, 여러 해 동안 단맛을 보여주던 포도나무도 추위에 당했다. 서울보다 위도가 낮은 데도 안성은 별나게 춥다. 안성에 감나무를 심겠다고 하면 나무시장에서도 그것만은 팔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웃 동네 담장에 붉게 익어가는 감을 보고 억지를 무릅쓰고 심었다.

초겨울이면 혹시 나무들이 냉해를 입을까봐 해마다 넉넉하게 볏짚을 구해 나무싸개를 해주었다. 그랬건만 지난겨울 추위는 너무도 냉혹했다. 냉해의 저점이 어느 한 순간을 고비로 그만 쿵, 하고 떨어진 모양이다.

 

 

냉해는 감나무와 배롱나무를 그냥 두지 않았다. 푸른 5월이 와도 말을 잃은 사람처럼 기척이 없었다. 옆집 할머니 말로는 나무 싸개를 너무 일찍 풀어주어 얼었다는 거다. 3월이 다 되어 풀어주었는데, 바로 그때 냉해가 극심했다는 거다. 배롱나무도 얼고, 포도밭의 포도나무며 측백나무가 얼었다는 소문이 마을을 휘돌았다.

6월이 되어서야 그들 나무에서 간신히 새 움이 텄다. 가지들은 기어이 죽었고, 싸개를 넉넉히 해준 나무 둥치에서 불티만한 움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나무가 차츰 기운을 내면서 죽은 가지로 물을 밀어 올리는 모양이었다. 나무 모양이 우스워졌지만 절반쯤 살아났다.

 

 

그렇게 살아난 배롱나무에서 꿈결같이 꽃이 핀다.

사지에서 겪은 뼈아픈 고충과 절망을 딛고 일어나 그렇겠다. 여느 해보다 꽃몽오리가 유난히 통통하고 꽃빛이 한없이 붉다. 옛분에 대한 기억이 살아나는 듯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