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감자씨를 품은 텃밭을 지키다

권영상 2018. 4. 5. 13:24

감자씨를 품은 텃밭을 지키다

권영상

 

 


텃밭에 감자씨를 심고 나니 안성을 떠날 수 없다. 아내를 먼저 서울로 보내고 나는 여기 홀로 남았다. 감자씨만이 아니라 씨토란이며 마도 심었다. 이들을 밭에 내고 싶은 마음에 겨울이 길어지는 게 싫었다. 감자는 몇 해 심어봤지만 토란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그야말로 일면식 없는 작물이었다. 우연히 종로 5가 종묘가게 주인의 권유로 심었는데 그 멋이 일품이었다.


 

키가 나를 능가했다. 넉넉하고 둥그스레한 초록잎, 그리고 늦여름이면 피어주는 카라를 닮은 멋진 꽃.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릴 줄 아는 유연함과 폭양을 가려주어 그늘, 비 내리면 들려주던 토란잎 노래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다 좋았다.

비는 언제쯤 오려나.”

토란을 심어놓고 나는 긴 여름 내내 그렇게 비를 기다리며 살았다.

추석을 앞두고 드디어 토란을 캤다. 그때에야 알았다. 내가 가꾼 것이 알토란이라는 걸. 잘 익은 야자덩이만한 알토란이 땅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오래 관계를 한 지인들에게 그걸 보냈다. 나도 모르는 토란 요리법을 읽은 대로 적어 함께 보낼 때의 그 기쁨이라니.



올해에 새로 찾은 품종이 마다. 꼭 식탁 위에 올리자는 뜻으로 선택한 건 아니다. 낯선 작물과 만나고 그들의 심성을 살려나가는 재미 때문이다. 늘 새로운 작물을 키워보지만 처음 재배할 때만큼 잘 된 적이 없다. 그만큼 몰입하기 때문이다. 마는 가을에 수확할 수 있는 성숙한 둥근마의 절편을 심기로 했다. 석회 거름을 좋아하는 마를 위해 뜰안의 메리골드 해바라기 백일홍 돼지감자 마른 꽃대를 모아 태운 재거름을 준비했다.

이제 한 이틀 지나면 심으려할 때였다.



남도에 사는 친구가 불렀다. 동백이 한창이라고, 오늘 다녀왔는데 절정이라고, 안 오면 올해도 의미없는 봄을 보내고 말거라고. 그러니 다 버리고 내려오라고. 그 말에 내 마음 어디에서 찡, 금이 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살면서 한번이라도 그 무엇을 위해 다 버린적이 있었던가. 그 생각을 하니 눈시울이 조곰 뜨거워졌다. 내가 가진 걸 다 버려도 좋을 만큼 동백이 애틋한 건 아니지만 나는 차를 몰아내려갔다. 그냥 직접 갈 것을, 강릉을 거쳐 경주 진해 하동 광양, 거기서 돌산도로 향했다. 경비를 계산하는 약은 수에 놀라지 않았는가. 그러느라 닷새를 매화와 벚꽃과 동백에 다 바쳤다.



돌아오는 대로 여독을 물리치고 둥근마 절편과 감자씨와 씨토란을 들고 안성에 내려왔다. 나는 이랑을 타고 아내는 심었다. 밭귀퉁이엔 제주산 방풍씨를 넣고, 머위 뿌리 한 움큼은 수돗가에 심고, 밭미나리 물주고. 그러고 아내는 서울로 가버렸다.

나는 혼자 남았다. 저들을 혼자 두고 나마저 떠날 수는 없다. 나는 몇 번이나 텃밭을 걸음하며 흙속에서 봄을 시작하는 그들의 출발을 지켰다. 왠지 지켜주어야겠다는 그런 설명할 수 없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어쩌면 그들은 온전한 육신을 버리고절편이라는 낱조각으로 땅속 이랑에 뛰어들었다. 이제 그 몸으로 다시 깨어날 수 없다면 그들의 생은 그것으로 끝장날 만큼 절박하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이 고요한 텃밭 안에서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다.



나는 식물들의 그런 사생결단의 삶을 사랑한다. 그들에게는 지금 이 밤을 지켜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게 나라고 믿었다. 자식들이 냉혹한 세상을 홀로 흔들리며 다닐 때 그들이 중심을 잃지 않도록 집을 지켜주었던 사람은 모두 부모들이었다.

깊어가는 밤, 문을 열고 나가 그들이 안심하도록 헛기침을 한번 하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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