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세상의 소음에 귀를 닫고 살다

권영상 2018. 3. 23. 09:45

세상의 소음에 귀를 닫고 살다

권영상

  

  


아침을 먹느라 라디오를 켠다. 혼자 밥 먹을 땐 라디오를 들으며 먹는 게 좋다. 말동무가 되니까. 그는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내 관심사와 먼 음악을 들려준다. CD를 갖고 있으면 좋아하는 음악만 듣지만 라디오 음악 채널은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어서 좋다. 그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다른 채널 방송이 소음처럼 생각된다는 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오늘 라디오는 소음이 많다. 토요일에 건전지를 새로 갈았으니 소음없이 들을 수 있겠구나 했는데 암만 해도 소음은 여전하다. 아날로그 다이얼 기종이라 주파수를 맞추는 손이 민감해야 한다. 소음이 사라지지 않아 라디오의 방향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안테나 줄을 빼어 창턱에 올려놓고 비타민 병으로 눌러놓는다.

그래도 여전하다. 전원을 끄려다 그냥 둔 채 식사를 한다. 오늘따라 소음에 관대해지는 나를 본다. 소음을 왜 소음 취급하느냐며 연주 도중 피아노를 무대 밖으로 밀어내 쾅 부서지는 소리를 들려주던 백남준이 불현 생각나서다.



방송과 타 방송이 엉킨다. 충주 나들목쯤, 거기에서 말소리는 사라지고 소음이 나타나고, 이어 커다란 파이프가 길에, 거기서 또 끊기고 소음은 계속 된다. 소음은 안개처럼 말소리를 삼키고 뱉고 한다. 그러나 나는 잘린 말을 빠르게 연결해 간다. 충주 나들목 쯤 커다란 파이프가 길위에 떨어졌다니 보나마다 차들이 정체한다는 이야기일 테다. 이어지던 소음 속에서 30년 근속상을 아빠가 받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또 타 방송과 엉키더니 지지직댄다.



어쩌자고 나는 그 지직거리는 라디오를 끌 생각을 않는지. 그 상태로 아침을 마치고 설거지를 시작한다. 고문을 당하듯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래도 내가 어디까지 인내하는지 참아본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몰라 그렇지 잡음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오랫동안 잡음과 함께 살아왔고, 그 속에서 용케 내가 듣고자 하는 소리에만 집중하며 사느라 소음을 못 느낄 뿐이다.



예전, 시골 친구가 긴급한 일로 나를 찾아 서울로 온 적이 있었다. 그때 그와 그의 볼일을 보느라 함께 길을 걸으며 이것저것 상의를 했었는데 친구가 끝내 고통을 호소했다. 자신의 귀가 갑자기 잘못 됐는지 내 말이 들리지 않는다는 거다. 놀라운 건 달리는 자동차 바퀴 소음이 내 말소리를 방해한다는 거다. 나는 웃었다. 자동차 바퀴소리가 왜 귀에 들리는데? 그러며 그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지극히 정상이었고, 내 귀가 비정상이었다. 들으려는 소리만 가려듣고 다른 소리들을 못 들으니 비정상일 수 밖에.



나는 나의 방식으로 훈련된 두 귀로 도시를 살아왔다. 구세군 앞을 지나면서도 그가 울리는 종소리를 못 들었고, 굶주려 우는 남쪽 어느 나라 아이들의 울음소리도 듣지 못했다. 학원가기 싫다는 딸아이의 하소연도 물론 못 들었다. 내가 바라지 않는 것들을 나는 소음 취급하며 살았다. 그러니까 나는 타인의 희미한 목소리에 귀를 닫으며 여기까지 왔다.

기침소리, 텔레비전의 잡음, 스파크 소리,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 소리까지 연주음으로 끌어들이던 백남준이 갑자기 이쯤에서 그리워진다. 그 소리들은 정말 잡음인가. 소나무가 아닌 싸리나무, 오리나무, 물푸레나무, 아카시나무 들은 실체가 분명한데도 정말 잡목인가.



소음이 심한 라디오를 드디어 끈다. 아내한테서 전화가 온다. 아침에 오이김치 보낸 거 그거 먹잖구! 한다. 아니, 오이김치 보냈어? 내가 되묻는다. 도대체 내가 말할 때 뭘 듣는 거야? 아내가 기어코 한 마디 한다. 한두 번이 아니다. 아내가 반찬박스를 들려보낼 때 오이김치 무르니 얼른 먹으라고 말 한 게 이제야 생각난다. 아내의 말을 소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음 심한 라디오를 듣고나 그런지 오늘따라 세상의 소음에 귀가 열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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