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나무가 쓰는 산문

우정을 가꾸는 나무심기

권영상 2017. 3. 29. 22:53

우정을 가꾸는 나무심기

권영상

 

 


일요일 동네 산에 올랐지요. 봄이 완연합니다. 생강나무 꽃도 폈고, 진달래도 폈고, 귀룽나무 잎도 눈이 어리도록 파랗게 폈습니다. 바람이 조금 분다 해도 추운 기운 하나 없이 몸에 딱 맞습니다. 이 동네 산에 발을 대고 사는 나무들도 내 몸 같겠지요.

산을 내려오는데, 저쪽 산 입새에 아이들 대여섯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습니다. 길바닥에 금을 그어놓고 무슨 놀이를 하는가 했는데 아닙니다. 가까이 내려와 보니 아이들 셋에, 젊은 엄마 둘이 길 가장자리에 소나무 두 그루와 느티나무 네 그루를 심고 있습니다. 식목이 처음인가 봅니다. 상추 모종을 하듯 촘촘히 심네요.



아니, 거기 가운데 나무 둘은 뽑아다 여기에 심어! 여기에!”

할머니 한 분이 그들 뒤에 서서 아이들 엉덩이 뒤쪽을 가리킵니다.

“5년 뒤면 이 아이들이 중학생이여! 나무도 애들처럼 클 텐데 좁아터져서 살겄어!”

지나가시던 할머니인지, 함께 온 할머니인지 할머니가 나무를 넓게 심으라고 종용합니다. 그런데도 옮길 수 없다는 듯 엄마와 아이들은 심어놓은 묘목 둘레를 손으로 꼭꼭 누릅니다. 5년 뒤에 중학생이 된다는 걸 보니 이 아이들이 지금 초등학교 1학년인 모양입니다.



어여, 내 말 들으라니까 그러네!”

할머니가 나무 삭정이를 집어들고 옮겨 심을 자리를 콕콕콕 찍어댑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들은 할머니 말씀을 들을 태세가 아닙니다.

“2030년은 생각하고 나무를 심어야지! 안 그러우?”

할머니가 이번에는 잠깐 길을 멈추고 서 있는 나의 도움을 청합니다.

아이들의 사이좋은 관계를 벌려놓고 싶지 않은 모양입니다.”

나는 그 대답을 하며 웃었습니다. 누구 편을 들거나 잘잘못을 말하기가 그랬습니다. 젊은 엄마들은 옹기종기 심어놓은 묘목을 떨어뜨려놓기 싫어하고, 할머니는 2,30년을 내다보고 넓게 심기를 권하지만 그 자리도 그 먼 훗날을 내다보기엔 너무 좁습니다.



엄마들의 식목 방식도 분명 잘못 됐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나는 그들의 소중한 생각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겐 식목일이 가까운 어느 날 자신의 아이들이 친한 친구랑 이 산에 나란히 나무를 심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할 테지요. 5년이 지나 중학생이 되어도 오늘의 우정이 변치 않기를 바라는 그 애틋한 심정을 누가 말릴 수 있겠나요.

나무라는 게 백 년을 사는데.......”

할머니는 그 말을 하고 가던 길을 가셨고, 나도 오던 길을 걸어왔습니다.



식목일이 가까이 다가와 있습니다. 올해는 새 나무를 심기보다 생각 없이 심어놓은 나무들을 이식해야할 것 같습니다. 3년 전, 뜰보리수나무 양옆에 자두나무와 살구나무를 심었는데 뜰보리수나무 가지가 그렇게 크게 벋을지 몰랐습니다. 옆의 두 나무를 간섭하는 바람에 나무 꼴이 우습게 됐습니다. 3년 전만 해도 나무에 대한 상식이 별로 없어 오늘의 일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할머니 말씀대로 2,30년을 내다보지 못했던 거지요.

어쨌거나 옮겨 심을 때 또 옮겨 심더라도 어린 자식들의 우정을 지켜주기 위해 나무를 심던 그 젊은 엄마들과 아이들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들의 우정이 영원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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